가시밭에 사랑을
‘소음레벨이 90dB에 다다랐습니다. 약 30분 동안 이 레벨이 노출되면 일시적인 청각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봄 여행 중 중학교 담임교사 연두의 애플워치에 뜬 메시지이다.
연두는 우리 반에서 가장 시끄러운 아이들 옆방에서 자는 극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아이들 중 하나는 우리 집 아이다. 진심으로 면목이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연두의 귀에서 피가 나는지 입에서 불이 나오는지 모른척하며 마냥 즐겁게만 지내고 있다. 연두는 그런 중등아이들을 이렇게 평했다.
‘모두 착하지만 시끄럽다.’ 심지어 ‘아이들과 여행 후 아이들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고. 반의법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예전과는 달리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존경의 의미를 잃은 지 오래고 어떤 곳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재미난학교에서의 선생님이란 때로는 내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는 조금 어른 같은 친구이기도 하고 같이 웃고 농담을 주고받는 찐친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6년 간 국공립학교를 다녔던 아이는 연두샘이라는 호칭에서 연두라고 부르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정말 무섭도록 빠르게 적응한다.
중학생이라고는 해도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여행을 가는 것에 걱정이 많았던 아이는 봄여행을 앞두고 연두에게 자신의 이런 불안한 마음을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일반 학교에서 아이가 선생님과 서로 웃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먼저 찾게 되는 존재였던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현실이 나는 특별히 슬프거나 이상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나에게 역시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늘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미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의미에서도 학원에게 밀려버렸고 사회성을 기른다는 명목을 붙이기엔 학폭문제가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타성적으로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모두 학교라는 ‘건물’에 아침에 등교를 하고 오후가 되면 귀가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대안학교는 현실적으로 많은 벽이 있다. 대안교육법이 제정되었어도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학교의 공통적인 문제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교육부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커리큘럼의 자율성을 얻은 대신 정부의 보조금이 적어진다. 이는 교사의 처우로 이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만큼 굳은 신념을 갖고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며 거꾸로 말하면 신념을 꺾이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으면 재정적으로는 여유로워지지만 하고 싶은 교육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내부에서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순간 이는 수업료 인상으로 직결될 수 있으니 쉽게 꺼낼 수 있는 화두도 아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환경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리 교사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신념을 의심할 여지없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어도 버거울 수업준비를 매 학기 어떻게 다르게 풀어갈지를 고민하며, 여행 전에는 사전답사를 가서 하루 2만보씩 걷고 돌아오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는 갯벌 바닥일지라도 최상의 각도를 찾아 누워서 진흙을 묻히더라도 진심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어준다. 어떻게 들으면 하찮은 고민거리도 웃지 않고 정성을 다해 상담해 주며 잘못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따끔하게 이야기도 해주는 마음들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욱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개개인의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보다 정당한 보상으로 실현되어 흔들림 없이 우리 아이들 곁을 지켜주는 존재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