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알못의 진화기행
'요알못’인 나는 오랜 기간 평일은 친정 엄마께 주말은 남편에게 요리를 ‘맡겨왔다’.
‘요알못’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이 나를 얼마나 구원해 주었는지 모른다. 그전까지는 여러 사람에게 나는 요리도 ‘하지 않는’ 다소 의무감이 결여된 인간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친정 엄마가 있다니 전생에 꽤나 좋은 일을 했을 거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주말에는 “남편이 밥을 한다니 진짜 복을 타고났구나.”라고 남의 속도 모르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렇게 나는 주방에서 요리를 제외한 식사 전 세팅, 설거지, 뒷정리,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등을 담당하며 내 나름대로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내 역할을 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대안 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우리 가족은 오랜 기간 살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의 학교 적응이나 나를 포함한 남편의 출퇴근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떠올랐지만 나의 머릿속에 크게 자리한 부분 중의 하나는 ‘저녁밥 어떻게 하지?’였다.
시간적으로는 남편보다 나의 퇴근 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나는 물리적으로 저녁밥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친정엄마의 각종 반찬들이나 다양한 밀키트들도 물론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장터’의 존재가 새로운 마을에서 나의 밥걱정을 많이 덜어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체 채팅창인 ‘장터’ 방은 100명 가까운 사람이 있어 학부모나 교사 등이 아닌 사람이면 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심지어 대부분이 별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더욱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아는 사람들의 아는 사람들로 엮인 이 공간의 사람들은 그 엮인 인연만으로 반찬도 내다 팔고, 고향에서 수확한 좋은 작물들을 내놓기도 한다. 마을의 좋은 프로그램을 안내해 주기도 하고 쓰던 물건들을 나눔 하기도 한다. 먹을 것의 경우에는 수량에 제한이 있다 보니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서로의 유쾌함과 나눔으로 즐거운 결말이 나곤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도움으로 요알못은 오늘 저녁도 열심히 밥을 하고 있다. 반찬세트가 올라오자마자 티켓팅에 성공하여 정말 밥만 하고 그럴듯하게 한 상 차려본다. 오늘 밥에는 잡곡도 섞어 넣어 이 밥상은 날림 아니냐는 공격에 대한 방어를 수줍게 해 본다.
또 한 가지 이곳에서는 ‘당근’을 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필요 없어진 책, 의류, 가구 등등을 소소하게 당근에서 사고팔고 했었다. 하지만 장터방에는 이런 물건 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눔으로 내어 준다. 그동안 당근으로 소소하게 용돈을 벌며 당근 온도를 올려가던 재미를 붙였던 나는 갑자기 나의 당근 온도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당근앱을 사용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물론 아니다. 다만 이왕이면 이곳에서 내가 받은 온기만큼 나누는 마음도 가꿔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처음에 장터방에 초대될 때 “알림이 많이 울릴 수 있으니 꺼두시는 것도 추천드려요.”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나는 절대 알림을 끌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우리 집 밥상을 (수줍게)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