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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자 Oct 27. 2024

오늘도 맑음

흐리면 또 흐린 대로 


우리 아이는 재미난중학교 입학 전 국공립초등학교를 6년 다녔다.


아이가 일반초등학교를 입학하고 학부모 첫 모임이 있었다. 23명의 엄마가 전원 참석했다. 초등1학년의 위엄이다. 첫째가 입학한 엄마들은 대부분 긴장한 얼굴이고 둘째 또는 셋째인 엄마들은 다소 여유가 있어 보였다. 우리 아이는 집 근처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고 원래 낯을 좀 가리는 편인 나는 딱히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어 주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맥주도 한잔씩 마시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아이이름, 엄마이름, 엄마나이, 연락처를 쓰는 종이가 한 바퀴 돌았다. 이로써 서로의 호칭이 정리되었다. 누구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누구 엄마는 나랑 동갑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종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일명 족보파괴자 ‘빠른 년생’이므로 한 살을 올려서 적어야 하나 고민했다. (마흔이 넘어서도 내가 이렇게 나이에 집착하며 살 줄은 몰랐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학교에 대한 여러 정보가 많았다. 다른 반은 ‘클래스팅’이라는 앱으로 매일 담임선생님이 사진을 올려 주신다며 하루에도 몇 십장씩 사진이 올라온다고 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처럼 클래스팅을 안 하는 선생님은 이 학교에 한 분도 안 계신다고. ‘클래스팅’이라는 앱의 존재도 몰랐던 나는 옆의 앉은 엄마에게 물었다. 


“우리도 담임선생님한테 한번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 반도 만들어달라고.” 


그 말을 들은 주변 엄마들이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나만 몰랐지 우리 반은 꽤 유명한 말하자면 꽝인 제비를 뽑은 셈이었다. 안 그래도 재잘재잘 오늘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는 타입이 아닌 아이인지라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지 재미는 있는지 친구는 잘 사귀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다른 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괜히 심술이 났다. 왜 우리 반만 사진을 안 올려 주시는 거야? 바로 다음날 나는 선생님에게 문자를 한통 보내 보았다. 답장은 이랬다. ‘우리 반은 클래스팅을 하지 않습니다. USB를 보내주시면 사진은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바로 아이 편에 USB를 들려 보냈다.


아이 편에 돌아온 USB를 받아 들고 적은 양의 사진이지만 꽤나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선생님은 USB을 보내지 않아도 가끔씩 나에게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주시곤 했다. 그 적은 정보로 최대한 학교 생활을 유추하며 지냈다. 후에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랬다. 사진을 올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학부모도 있고 왜 우리 아이는 사진이 이렇게 적나라고 이야기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선생님입장에서는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긴 할 것 같았다.


재미난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네이버카페만 들어가도 특히 초등 저학년은 2주에 한 번씩은 수업하는 모습, 나들이 모습 등등 글 하나에 100개가 넘는 사진들과 동영상이 올라온다. 카페멤버의 경우 모든 학년의 게시판을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른 학년들의 나들이 사진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학교에서의 표정과는 사뭇 다른 아이들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주변에 몰랐던 좋은 나들이 장소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하며 열심히 글을 읽고 사진을 보다 보면 나도 가고 싶어 져 주말이 바빠진다는 것이 함정이다.


일반 중학교에서는 교사와 아이들의 단체 카톡방에서 학교공지가 이루어져 부모가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중등의 경우, 네이버카페에 공지사항이 올라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직접 자신이 쓴 글을 올리기도 하기 때문에 수업내용뿐만 아니라 글을 쓴 아이의 캐릭터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글들을 보고 있으면 학교에서의 생활도 알 수 있고 아이들 관계를 그려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더구나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와 생활교사가 함께 하는 반모임이 있다. 네이버카페를 꼼꼼하게 보지 않는다고 해도 반모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학교 생활을 알 수 있다. 한 달 동안의 수업내용과 잘잘한 에피소드까지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솔직히 학교생활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림체는 졸라맨이다.)

우스갯소리로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중2가 무서워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중학생들의 일상적 사진이나 그들이 직접 쓴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부모로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초등학교 때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내는 걸까 궁금해서 친한 엄마와 서로 한탄하며 농담으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우리 애들 필통에 볼펜형으로 생긴 녹음기 넣어서 보내 볼까?”


“모르는 볼펜이 필통에 들어있다고 담임선생님한테 가져가면 우린 끝장이야.”


지금은 아이가 학교에 가도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 지내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가 궁금하고 다소 불안해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런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서로 잘 풀어낼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고 믿고 있다. 스스로 배우는 과정은 아직 아이가 할 몫이 남아있지만 따뜻한 돌봄만큼은 넘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 왜 이제야 재미난학교에 왔냐고 묻는다.


답은 하나다.


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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