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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자 Oct 27. 2024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

이제와 짤막한 자기소개

결혼해서 살다 보면 절대로 서로 맞춰지지 않는 부분들이 점점 도드라져서 올라오게 된다. 그런 것들을 모아서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이 노력이라는 부분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혈액형, 별자리, 요즘은 MBTI가 해당하겠다. (갑자기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문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라든지 따뜻한 인성이라든지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강인함이라든지 그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서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포기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회생활에서도 똑같이 대입된다.


나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B형과 P들에 둘러싸여 살아오고 있다. 내 주변 P들은 주로 시간개념이 나와 전혀 다르기 일쑤였는데 말하자면 6시가 약속시간이면 P들은 6시 되기 5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하곤 했다. J인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들에게 “너는 내 시간을 훔치는 시간 도둑이야!”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었다. 가족 또는 친구들 심지어 회사에서도 이런저런 고함을 치며 지냈다. 하지만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달라진 것은 나였다. 


그들과 길게는 50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문고판 책이라도 들고나가 책을 읽으며 기다리거나 요즘은 스마트폰이라는 와이어리스 바보상자가 항상 내 곁을 지켜주니 한결 기다림의 시간이 쾌적해졌다. 이제는 상대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 하루에 약속을 두 개, 세 개 더 잡았다고 한들 당황하지 않는다. 주어진 업무가 늘어지는 것에 대하여 화를 내도 아니면 달래 본다고 한들 그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여태까지 쌓아온 수많은 기다림 속에서 나 역시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늦을 때도 생기곤 한다. 그런 나와 마주할 때면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이것이 인간의 성장이나 성숙이라는 면에서 어떻게 자리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은 다소 편해졌으므로 평화라는 점에서는 크게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거꾸로 보자면 그들에게 나는 너무 박하고 틀에 맞추고자 하는 인간으로 비칠 수 있다. 어떤 날은 V넥 니트를 입은 친구의 목라인이 너무 밑으로 내려가 몇 번 올려주었더니 “너의 목에만 집중해 주겠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딴에는 좀 더 예쁘게 옷라인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 친구는 오히려 불편했던 것이다. 나의 의도와 상대의 의중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살아온 지도 벌써 반백 년이 되어가는데 나는 이제야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치고 있는 중이다. 


오쿠다히데오는 ‘결혼이란 청춘이 끝나고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었다. 또 강상중은 ‘청춘이란 한 점 의혹도 없을 때까지 본질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청춘이 끝나고 인생이 시작된 지 제법 오래됐는데 나의 B형 남편은 굉장히 질문이 많다. 처음에는 ‘그래, 그런 궁금증도 있을 수 있겠다.’라는 이해의 감정에서 점점 ‘그만 좀 물으면 안 될까?’라는 질림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40년 넘게 삶의 본질을 찾아가고 있는 남편에게도 조금씩 마음의 평화를 가져가게 될 즈음 상당히 강력한 P가 나타났다. 


정말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였다. 


누군가 출산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바뀌고 나는 주연에서 조연이 되는, 소설로 치자면 제2막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편도 분명 조연일 텐데 왜 이렇게 대사가 많은 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소설의 2막 주인공은 외계생명체에 가깝다. 나도 몰랐지만 내 소설의 장르는 SF였던 것이다. 한때는 순수문학을 희망했던 제1막의 주인공은 이렇게 맥없이 SF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다. 중꺾마도 놀랄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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