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강의를 마치고 안산 지하도로를 지나
초지역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 지점을 스치
는데 한 가득 눈물이 차오른다.
병원 근처 고잔역을 통해 어머니가
처음 대중 교통으로 아들을 만나러 오셨던 기억, 지하도에서 만나 함께 걸었던 부근이다.
이제는 감정의 결이 좀 정돈되고 담담한
마음으로 추억하는가 싶다가도 특정 지역이나 장소를 스칠때면 자동으로 눈물이 난다.
입원일 수, 백 이십일을 두 번 가까이 채웠다.
주기적으로 보험사에 보냈던 입원 일수의
수치가 또렷하다.
그 많은 날 머물렀던 대학병원을 지나 칠 때,
마지막 입원인 줄도 모르고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갔던 상록보건소 앞을 지날 때,
그의 육신이 마지막 머물렀던 장례식장을
지날 때면 특히 밀고 올라오는 눈물을 어찌할 수
가 없다. 특정 장소뿐만이 아닌 특정 상황이 될
때도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인의 딸내미가 시댁 스트레스에 힘들어
하자 그댁 남편이 딸을 위로하려 준비했다는 이벤트 스토리.
우리 딸내미의 아빠도 그리했을텐데 하는 생각에
또 울컥했다.
오늘은 좋아하는 가수의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비교적 만족스러운 느낌의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초지역을 안내하는 티맵 여자의 목소리에
차오르는 눈물, 이 주변을 향한 무의식의 반응이겠지.
얼만큼의 슬픔이 어디에 그리 많이 매장
되어 있는걸까!
한 낮의 저 푸르고 넓은 하늘처럼
늘 감사와 맑음 마음으로 잘 살고 있음에도
내 무의식의 공간은 슬픔의 바다가 일렁이고
있는가 보다.
수 십년 함께 하며 통과했던 시간속에
울퉁불퉁 스쳤던 감정과,
까시럽게 대립했던
순간들도 인생게임 종료
휘슬에 함묵할 수밖에 없다.
함께의 시간은 불시에 정지 되고
감정의 부유물들을 세월의 흐름에
흘려보낸 시점이 되어 보니 오롯이
존재 자체의 그가 참 그립다.
뭘 잘하고 못하고
이렇게 해야되고 말아야 되고...
이런게 다 부질 없는데 말이다.
그 사람이 떠난지 벌써 3년이 되었다.
그가 자기 스케줄을 꼼꼼히 적어 놓은
2021년 탁상용 카렌더는 침대 머리맡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인생이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이후의 시간은 결코 내 것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표로 그대로 두었다.
담담히 이렇게
살다가 또 어느 시점에 울컥하겠지!
그러면 눈물 한방울 또 흘리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