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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I Oct 18. 2024

8. 감사의 다육이

1인가구 고독사, 화분주는 할머니

8. 감사의 다육이     


2016년 지하에서 이사해서 지상으로 올라갔던 첫 집의 안방 창은 옛날 집이라 밖으로 튀어나온 창이었는데, 거기엔  화분마다 예쁜 다육식물들이  놓여 있었다. 아침 햇살이 비추는 사이로 초록 초록한 자태를 뽐내는 그것을 보고 있으면 '반려 식물이란 말 참 잘 지었다!' 하고 공감의 감탄을 하곤 했다.


혼자 지내다 보면 식물도 내게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고, 울어주며, 대답해 주는 같이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고 애정하게 된다. 나는 이 다육식물들을 키우기 전까지는 집에 멀쩡한 모습으로 선물 들어온 식물들 사망하게 만들어 내보내는 능력을 가졌었다.


내 한글 회원이었던 박순례 할머니께서 주신 선물, 다육식물을 집에 두기 시작한 게 벌써 3년이나 되었다. 그 사이 받았던 다육이들은 그간 우리 집에 들어왔던 식물들과는 많이 달랐다. 잘 자라며 커지니까  지인들이 분양도 해 갔고, 그래도 또 쑥쑥 너무 잘 자라줘서 그저 예쁠 따름이었다. 이 다육이 들은 물만 주면 따로 밥을 달라고 하지 않으니 지금 백수인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반려자, 아니 식물이었다.


아무 계획도 없이 학습지 회사를 나온 뒤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고용센터에 들러 구인란을 뒤적거리고, 차라리 뭘 배워볼까? 학원 홍보지도 뒤지며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이었다. 주말이면 아들도 데리고 와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사 먹이고, 옷이며 신발이며, 필요한 것들도 사야 하는데, 당장 나올 월급이 없으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예전에 운동할 때 알던 언니에게서 오랜만에 안부 전화가 왔다.


아들이 돌 막 지났을 무렵 살을 좀 빼 보겠다고 아장아장 걷는 애를 데리고 동네 스포츠 센터로 운동을 하러 다녔던 적이 있다. 오전 에어로빅반을 했는데, 내가 워낙 흥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신나는 음악에 몸을 흔들어대는 게 너무 신이 났다. 육아스트레스며 작고 큰 짜증들까지 어찌나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았던지 당시 에어로빅 아주 열성적으로 다녔다.


운동 시작 전에 아들 간식이랑 장난감을 챙겨 눈에 보이는 곳 한쪽으로 앉혀놓고 운동하는 회원들 끝머리쯤에 서서 누가 보던지 말던 지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다닌 지 한 6개월쯤 돼서는 우리 아들도 방방 뛰며 신나게 춤을 추고, 어떤 동작들은 비슷하게 따라 했다. 당연히 꼬맹이 춤신동 아들 덕에 센터에서 우리 모자는 아주 유명했었다.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 센터에 다닐 때 알던 언니가 내가 최근에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언니는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생각보다 재밌고, 돈도 제법 번다면서 나에게도 설계사 교육을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걸 잘 못하는 편에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그 직업에 두려움이 컸기에 별로 당기는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해 보자! 마음먹고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가족이며 친구며 있는 인맥은 다 끌어모아서 시작하게 되는 게 이 일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나름 이것저것 설명을 해서 필요한 걸 권하려는 건데,  다들 상품의 좋은 면보다는 인정에 이끌려 작은 거 한 개 두 개 들어주는 정도 말고는 대부분 훈계를 늘어놓기 십상이고, 나의 과거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나랑 맞는 직업이다, 아니다 해가면서 지적질을 해 대는 분들도 많다. 심지어 어떤 친척분은 보험 팔려면 다신 얼씬대지도 말라고 문전박대하기도 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내가 그동안 신뢰가 이렇게 없었나? 하는 생각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간병인 보험이 신상품으로 나왔다. 나는 이게 지금 누구에게 가장 필요할까? 생각해 보았다. 한차례 친척들과 친구들 지인은 모두 만나보고 온지라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 와서 잠이 들기 전까지 고객 명단을 들고, 고민하고 내일은 누굴 찾아가 봐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창쪽에 줄지어선 다육이들이 추워지는 날씨에 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것들을 방안에 들여놓아야 할지, 그냥 둬도 될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 다육이들을 선물하신 박순례 할머님 생각이 났다.


나는 할머님께 그간 안녕하시냐고 문자를 보내고, 보험회사에 다니게 되었다고 알렸다. 할머니는 문자로 심장이 좀 안 좋아서 보험 들고 싶었다며 집으로 한 번 놀러 오라고 답장을 셨다. 문자를 한참을 찍으셨는지 몇 시간이 지나온 답장은 정말 어쩜 말이라도 이렇게 예쁘게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정말 보고 싶어 졌다.


하지만, 보험사의 교육일정과 선약이 있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우선 챙기고 할머니와 약속을 잡으려니 당장은 만나기가 빠듯했다. 이왕 그리된 거  넉넉하게 한 달 뒤쯤 약속을 잡아두었다.


실적도 제대로 못 내고, 한 달의 시간흘렀다. 잠시 박순례할머니와 했던 약속은 잊고 내일은 누굴 보러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어둠이 깔린 강가에 안개가 깔려있고, 간간히 규칙적으로 들리는 '끼익 끼익' 소리와 '첨벙 턱' '첨벙 턱' 하는 물소리는 누군가 배의 노를 저으며 움직이는 소리 같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배를 쳐다보았다. 작은 배 위에는 여자가 서 있었다. 아래, 위로 하얀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뒤돌아 있는 여인의 뒷모습은 조금 으스스했다. 분명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데, 배는 자꾸 뒤로 밀려 점점 내 앞으로 왔다.


 나는 뭔지 모를 두려움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왠지 저 여인이 뒤 돌아보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배가 가까이 왔고, 여인이 내 코앞까지 왔을 때, 두려움을 무릅쓰고 여인의 어깨를 툭툭 쳐 보았다. 계속 가만히 서 있던 여인의 어깨를 한 번 더 치려고 하는데, 휙! 돌아선 여인! 너무 놀라서 뒤로 나가 자빠진 나의 눈에 그 여인의 얼굴은 반이 다 썩어있는 해골의 모습으로 보였다. 해골을 본 내가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두려움에 계속 소리를 지르려 애를 쓰다가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답답함에 몸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그만, 발이 삐끗하면서 물속으로 빠질 뻔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움찔! 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꿈까지 꾸고 시간도 새벽 5시가 넘어 있었다. 아직도 그 강가에 서 있는 기분에 몸이 오싹했다. 무슨 꿈일까? 왠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몸에 한기가 들어 더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 해골의 그 여인이 누구일까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런 순간 박순례 할머님이 생각이 났다. 할머니께 찾아뵙겠다고 연락한 지 달이 지났다는 생각과 함께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할머니와 만난 건 내가 학습지를 시작하고 6개월이 조금 넘었을 때 원미동 임대아파트 입구에서 전단지를 나눠 줄 때였다. 거의 유아, 초·중학생 위주의 수업하는 학습지라서 젊은 엄마들에게 전단을 주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내가 나눠주던 전단을 어디서 주우셨는지 손에 들고는 다가오셨다. 나는 전단 떨어진 거 다 챙겨가라고 타박이라도 하시려는 걸까? 잠시 졸아서 걸어오시는 할머니의 눈을 슬쩍 피하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불러 세우시고는 말씀하셨다.

      

“저기요. 선상님! 여기 애들 공부시켜 주는 선상님이죠?”     


나는 이미 내가 학습지 선생님인 걸 아시는구나! 싶은 생각에 도망가기를 단념하고 돌아서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 보였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어머님!”

“지두 한글 좀 배울 수 있을까유?”

“할머님께서요?”     


할머니는 나의 첫 성인 회원이었다. 다음날부터 박순례 할머니와의 한글 수업이 시작되었다. 박순례 회원님은 받침이 없는 간단한 글자들은 더듬더듬 읽기는 하셨고 쓰는 건 전혀 못 하셨다. 한글 조합이 나오며 자음, 모음을 쓰는 단계부터 같이 수업을 하면서 읽고, 쓰고, 받아쓰기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할머니는 열정이 대단하셨다. 당시 연세가 73세 셨는데 -지금의 73세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지금의 83세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춘기 소녀처럼 즐거워하시고 이것저것 막 읽으시며 좋아하시는 모습이 보기에도 너무 좋았다. 한 2년 반 정도 나와 수업을 하면서 받아쓰기 잘하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정도의 수준으로 쓰고, 읽었다.


수업 다니며 특이하게 본 것은 할머니의 베란다가 거의 정원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식물이 엄청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다육식물들이 가장 많았다. 할머니는 그 다육식물들을 자식 돌보듯 꽤 아끼고 애지중지하셨다. 할머니는 수업을 시작하고 분기마다 한 번씩 잘 가르쳐 줘서 고맙다면서 내게 다육식물을 선물하기도 하셨다. 사랑받던 애들이라 잘 자라는지 황무지 같은 나의 집에서도 잘 자라서 그때부터 우리 집 창가도 뭔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할머님과 공부를 시작한 지 한두 달쯤 되던 어느 주말에 원미동 임대아파트 한 편에 파라솔을 펴고 홍보 행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주말이라 역시 나와 함께 있던 아들은 홍보 행사라고 펴 놓은 테이블에서 공부하고, 나는 옆에서 지나다니는 아이들과 어머님들에게 학습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쯤 되니까 다들 밥을 먹으러 갔는지 아이들과 어머님들이 한 명도 없었다. ‘아들도 배가 고플 텐데, 밥을 먹으러 가야 하나? 차라리 조금만 더 있다가 좀 일찍 접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박순례 할머님께서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내가 있는 행사 테이블로 걸어오셨다.


아들이 공부하던 교재를 가방에 넣고 테이블 위를 치우자, 할머니가 바구니를 내리셨는데, 바구니 안에는 김치부침개와 결명자차가 있었다. 배고팠던 아들이 할머니가 찢어 주시는 부침개를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그 모습에 할머님도 신이 나셨는지 계속 아들에게 부침개를 찢어 주며 좋아했다. 나에게도 부침개를 주면서 주말에 애랑 놀러 가지 일을 하냐 물었고, 우리 아들이 천진하게 대답했다.  

   

“할머니, 우리는 여기 놀러 온 거예요. 엄마가 일하는 동안 학습지 숙제 다 하면 영화 보러 가고, 스테이크도 먹으러 가기로 했어요”

“그렀구먼! 울 아들은 오늘 스테끼 먹는구먼! 좋것네! 이 할머니도 델구 가라!”    

 

그러자, 아들이 곤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눈을 마주하고는 농담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보며 당황하는 모습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할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선상님! 지는 고기 먹지도 못혀유! 같이 안 가니 걱정 마셔유”     


나는 괜스레 민망했지만, 진심으로 다시 말씀드렸다.     


“걱정은요, 제가 이렇게 맛있는 부침개도 얻어먹었는데, 저도 맛난 저녁 대접 해야죠!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저희 꼭 스테이크 안 먹어도 돼요”

“맞아요! 할머니, 저는 감자탕도 좋아하고, 곱창볶음도 잘 먹어요.”

“저기, 가람아! 그거 다 고기야!”

“어? 할머니 고기 못 먹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고기 진짜 잘 드시는데, 아! 근데, 엄마! 엄마, 돈 있어? 엄마 가난하잖아!”     


‘헉! 이건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나는 아들이 던진말에 할머님 앞에서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나의 그런 맘을 눈치채신 건지 할머니가 우리 아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아들! 우리 선상님이 와 가난혀? 아까 선상님 한티 인사하는 친구덜 봤어? 못 봤어? 이 할머니도 네 엄마한티 한글 배우는디, 엄마가 엄청 잘 가르쳐줘어! 네 엄마는 여기 머리랑 마음이 엄청 부자여~ 얼마나 좋은 선상님인 줄 아냐? 잉? 네 엄마는 가난한 게 아녀~ 잉?”     


아들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가 이 할머니의 한글도 가르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기분이 좋아서 내게 물었다.     


“엄마! 할머니를 가르쳐주면 돈 많이 벌어? 금방 부자 돼? 우와! 그럼, 나 금방 엄마랑 같이 살겠다! 그지잉?”     

‘아이고~’ 나는 아들 덕분에 할머님께 굳이 말할 필요 없는 나의 개인사가 다 까발려진 것 같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할머님은 괜찮다는 듯 내 손을 덥석 잡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선상님! 괜찮아유~ 그려도 선상님은 이렇게 듬직한 아덜이라도 있잖아유!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남자랑은 살아봤어두 시집은 한 번 못 가봤슈, 지 이래 봬도 호적에는 처녀여유”

“네? 진짜요?”     


나는 처녀 할머님은 처음이라 또 본심이 불쑥 튀어나와 놀라서 말하고는 뭔가 실례가 된 것 같은 마음에 얼른 수습하려 말했다.     


“어쩐지, 연세에 비해서 너무 젊고, 몸매도 좋으시더라고요.”

그려유? 허긴 지가 요 얼굴로 여럿 보냈슈~”

“하하하~ 너무 고르시느라 결혼을 못 하신 건가 봐요?”

“그라쥬~ 그런데, 고향서 여그 올 땐 같이 왔던 남자는 있쥬! 좋아죽것다고 그 남자만 믿고 여까지 왔는디 둘이 오래 살 팔자가 아닌지 한 십 년 정도 살다가 먼저 하늘로 가버렸슈, 삼신할매는 애나 하나 점지해 주면 좋은디 지는 그런 복두 없는 모양이 더라구유”

“그럼, 할머니는 손주도 없는데 어떻게 할머니예요?”

“가람아!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자꾸 그렇게 끼어드는 거 아니야!”

“괜찮유~ 아들! 우리 선상님 아들이 날더러 할머니, 할머니 그러니까 할머니지이! 잉?”

“아~~”     


할머니의 말에 ‘아~’하는 아들 덕에 나는 웃음이 났다. 할머님도 웃으시더니 바구니를 챙기면서 말씀하셨다.    

  

“아들! 공부 열심히 혀! 엄마 헌 티 효도 하고, 잉?”

“네! 할머니, 근데, 나 우리 어린이집에서 젤 공부 잘해요!”

“그려? 그럼, 할머니가 용돈 좀 줘야것네잉”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나는 얼른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 할머님! 아녜요. 애 버릇 나빠져요”

“아뉴~ 이뻐서 그러는디유~ 아덜, 요놈 가지고 아덜 먹고 싶은 거 사 먹어잉!”     


아들은 나의 눈치를 봤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고, 아들은 돈을 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들의 바지 주머니에 돈을 넣으려 했고, 아들은 다시 나를 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한 장만 주세요. 많아요. 가람아 두 손으로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해야지!”

“감사합니다. 할머니”     


아들은 기어이 쥐어주신 이만 원을 두 손으로 받으면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할머님은 뿌듯한 얼굴로 아들과 나를 보더니 바구니를 들고 올라가셨다.


할머니 댁 베란다에 다육식물 생기기 시작한 이유는 식도 못 올리고 같이 살던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꽃 대신 선물한 것이 다육이 화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다육이가 자라서 옮기고, 분양하고 또 옮기고, 그 자란 다육이들이 이뻐서 또 다른 다육이를 사고, 또 사고, 그렇게 베란다를 가득 채우게 됐다고 했다. 혼자 사시면서 외로우셨을 텐데, 그 다육이 키우고 관리하는 재미로 버티셨나 보다 할 정도로 정말 식물과 화분의 수가 많았다. 제법 큰 화분들도 많아서 난 가끔 저 베란다가 무너져 버리는 걸 아닐까 상상하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께 한글은 왜 배우시려는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지가유~ 화원에서 이 다육이 애들 이름을 듣고 오면유 기억이 안나유~ 적어줘도 잘 못 읽잖아유? 그라구유~ 야들이 다 이름이 있구유, 감사한 분들께 선물로 드릴라고 하믄 그때마다 이거가 뭐라고 혔더라? 어려운 식물이름 적을라믄 한글을 배워야 것 드라구유! 친구들 이름도 써 줘야 하고유~ 또 저승 가서 한글 몰러서 여기저기 기웃거릴까 봐서 두 배우려구유~ ”     


‘한글을 배워서 시를 써 보려고요.’ 라든가, ‘한글을 써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써 보려고요.’라는 말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시시하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게 이유라고? 게다가 저승에서 한글을 안 쓰면 어쩌시려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웃었었다.     


기분 나쁜 꿈 덕에 새벽에 깼던 나는 다시 잠깐 잠이 들었다가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에 잠에서 깼다. 할머니와 약속했던 날 출근 준비를 하면서 할머니께 보험 때문이 아니라도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일을 사 들고 오랜만에 원미동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집 근처에서 전화했는데, 받지 않으셨다. ‘잊어버리고 노인정에 가셨나?’ 싶은 생각에 안 오시면 과일바구니만 집 앞에 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올라갔다. 현관문 옆으로도 2단의 화분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여러 종류의 다육식물들이 나란히 있었다. 화분에 할머님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돌나물_초록이’ ‘백년초_꼭지’ ‘리돕스마르모라타_들레’ ‘알로에_영양이’ 등 다육이 원래 이름과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 붙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재치에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집에 계실까? 하고 다시 벨을 눌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인기척은 없었다. 과일을 그냥 문 앞에 놓으려니 혹시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옆집에  맡기자니, 그간의 안부를 묻는 일들이 부담스러웠다. 이때, 예전에 시장에 다녀오시던 할머니께서 수업날 좀 일찍 도착해 현관 앞에서 기다리는 날 보시더니 이렇게 자기가 늦거나 하면, 전화하고 들어가 있으라면서 키 숨겨놓은 곳을 알려 주셨던 게 생각났다. 난 메모지를 꺼내서 과일바구니 안에 넣을 메모를 적었다.    


 『박순례 할머니! 안녕하세요? 전에 같이 공부하던 JINI교사예요.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잊으셨죠? 하하. 어떻게 지내시나 뵙고 가고 싶었는데. 안 계셔서 오늘은 그냥 가요. 열쇠가 전에 알려주신 데 그대로 있더라고요. 실례지만 잠시 열어서 과일바구니만 놓고 갈게요. 조만간 다시 뵈러 올게요. 그동안 건강하게 지내셔요』     


나는 할머님께서 알려줬던 두 번째 칸 세 번째 화분을 들어 현관 키를 꺼냈다. 난 보물을 발견한 듯 좋았다. 하지만, 누가 볼까 조심스럽게 키를 들어 문을 살짝 열고 과일바구니를 넣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잠시 문을 열었을 때, 안에서 물소리가 나고 있었다. 갸우뚱하며 다시 현관 옆 화분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화분 안에 다육이들이 마르거나 앙상해 보였다. 얘들이 이렇게 되게 둘 분이 아닌데,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할머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집 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나는 전화를 끊고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에선 역시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새벽에 꾸었던 불길한 꿈 생각이 났다. 나는 한 번 더 현관문을 두드렸다. 요란한 소리에 옆집 사람들이 나왔다. 나는 열쇠를 다시 꺼내서 문을 활짝열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집 아주머니도 학생도 할머니도 모두 박순례 할머니 집 앞으로 모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싱크대가 붙은 거실인데, 싱크대 물은 틀어져 있고, 박순례 할머님이 쓰러져 누워있었다. 개수대에서 물을 받아 식물들 물을 주려다 쓰러진 걸까? 오른손에 작은 물조리개를 쥐고 있었다. 나는 할머님을 흔들어 보려 어깨에 손을 댄 순간 깜짝 놀랐다. 이미 몸이 딱딱하게 굳어 사람의 몸이 아니라 막대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관 밖에서 안을 보다가 다른 이웃들도 놀라 들어왔다. 301호 할머니가 제일 먼저 다가와 박순례 할머니의 딱딱하게 굳은 몸과 푹 꺼져버린 눈을 보고 놀라며 울었다. 나는 서둘러 119를 불렀다. 사람들 모여들고 웅성거렸다. 119가 왔고 경찰도 함께 왔다. 경찰은 최초 발견자인 내게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가지 말라고 했다.


한 할머니가 박순례 할머니 옆집에 사는 여자에게 핀잔을 주었다.

      

“애기엄마! 아니, 옆집에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몰라? 어떻게 사람이 그래?”

“아니, 집에 애가 셋인데, 어떻게 옆집까지 신경을 써요? 어디 놀러 가셔서 안 보이시나 보다 했죠!”

“아이고 세상에, 내가 서울 딸네 애 봐주러 다녀온 사이 이 사달이 났나 보네! 여 아파트 단지에서, 부여댁 할머니 준 화분 안 받은 사람 있어? 이게 고맙다고, 저게 감사하다고 맨날 화분에 감사한 이유 적어서 다들 받아 봤잖아!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외롭게 가냐! 세상에”   

  

나는 베란다에 할머니가 기르던 다육이들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또 선물하려 했던 화분들인지 메모꽂이에 메모가 쓰여 있었다.

    

『수녀님! 견진 교리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관리 아저씨! 보일러 봐주어서 감사합니다.』

『소영아! 할머니 학습지 교재 전달 해 주어서 고마워』

『선생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한글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수업 날! 견진 교리 마지막이라 수업을 못하게 돼서 못 만났었는데, 내 화분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했다. 이렇게 주변에 감사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분이 혼자 외롭게 가셨다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 또한 그깟 보험 얘기나 해 보겠다고 할머니를 떠올렸지, 진작 안부라도 물어볼 순 없었을까? 후회되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인 듯했다. 평소 약간 부정맥 증상이 있으시다고 얼핏 들었는데, 그때라도 뭘 도와 드렸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받은 마음에 비해 고작 이 정도였다. 얼핏 들었던 것 같은 정도···.

끝까지 너무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한글 공부하고 늘 사람들에게 감사하던 다육이 할머니 박순례 님은 그 감사의 마음으로 천국으로 가셨을 테고, 그곳에서도 한글 다 배우고 가셨으니 헤매지 않고 안내문 잘 읽고 다니시겠지?


나는 뭔가 가슴에 답답한 돌은 얹고 떠나는 마음이 들어서 할머니 성당 친구분들과 장례를 치러드리기로 했다. 3일장까지는 못했지만 성당친구분들, 가까운 이웃들을 모시고, 애도의 시간을 갖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그곳에서 젊은 시절, 시골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올만큼 사랑했던 그분을 만나 결혼식도 하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이제 다육이가 아닌 그분과 천국에서 늘 감사하시기를···.          


작가의 말     

요즘 1인 가구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1인 가구의 제일 큰 걱정 중 하나가 혼자서 아플 때나 고독사에 관한 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몇 주, 또는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만에 발견된 주검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한 번은 해 봤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막상 우린 옆집에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웃뿐입니까? 떨어져 지내는 가족, 부모, 자식들이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 전화조차 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 만나면 그나마 다행인 가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명절조차 해외로 여행 가기에 바쁘고, 자기 안위 살피기도 바쁜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 아니겠습니까? 조금만, 관심 갖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하게 생각해 줍시다. 저 역시 혼자 지내던 시간이 많았기에 늘 돌연사가 곧 고독사로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죽음 저 너머의 세상은 우리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세상을 쓸쓸하게 잊힐 사람조차 없이 가는 건 너무 안쓰러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내 이웃, 내 친구, 내 가족에게 전화라도 한 번 더 하면서 살아요.

다음은 9화 『다시 희망을 품다.』 누가 어떤 희망을 품게 될지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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