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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I Nov 11. 2024

엄마랑 잘래

그 집 안의 무엇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에 벽지를 고르고 창틀을 닦아내며 마냥 들떠 있었다. 불길한 마음에 무엇엔가 홀리 듯 이 집에 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섬뜩함은  기억에서 아주 사라져 버린 듯했다.

집을 쓸고 닦고 치우면서 누렇던 벽지와 찢긴 장판은 새로 하기로 했는데, 왜 그런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삼류 방석집에나 쓸 커다란 붉은 장미가 그려진 검은색 벽지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평소 파스텔톤의 은은한 색상을 좋아하던 내가, 그땐 대체 왜 그 검은 벽지를 그것도 집의 중심인 거실에  도배했었는지 지금 스스로도 변명이 불가한 일이다.


‘누가 집 안 거실을 검은색으로 꾸미냐?

지인들이 그렇게도 말렸는데 도저히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그 어두운 색의 벽지 계속 끌렸다는 것 밖에 기억에 없다.


당시 우리 아들은 네 살이었는데, 처음으로 장난감과 책 그리고 원목의 2층 침대가 있는 자기 방이 생긴 것에 아이도 신이 나 있었다. 아이는 키즈카페처럼 꾸며준 공간이 자기 방이라는 사실에 너무 좋아하면서 방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간 아들은 늘 우리 부부와 한 방에서 잠을 잤었는데, 이사 와서 일주일쯤 지나니까 자기 방에 애착이 생겼는지 내가 자기 방에서 자야 한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나 2층침대에서 자면 안 돼?"

"안 되긴? 거긴 가람이 방인데, 당연히 되지!"

"야호! 신난다."


나는 나름 침대에서 혼자 잠자는 연습을 어떻게 시켜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제 스스로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하니, 일이 쉽게 풀리겠다! 싶어 웬 떡이냐? 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아들과 잘 준비를 하고 함께 2층 침대에 누워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아들의 머리맡엔 작은 무드등과 책들이 있었는데, 자기 전 늘 동화책을 읽어달라는 아들을 위해 마련해 둔 공간이었다.

나는 어떤 구연동화가 보다 더 멋지고 실감 나게 아들에게 "빵 사러 가요" 책을 읽어주었다. 아늘은 이사하며 집 옆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옮겨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키즈카페처럼 꾸며놓은 집에서 또 정신없이 놀아서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아들이 책 보다 더 좋아하는 음악 CD를 조용히 틀어놓고 행여 자다가 굴러 떨어지지 않게 2층 침대의 난간을 올렸다.

그렇게 아들이 잠든 사이 남편과 나는 술 한잔하고 이사와 집안 정리로 바빴던 일주일을 보상받 듯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을 달게 자는데, 발 밑에 뭔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에 취해서 '뭘까? 발 끝에 대체 누가 있는 거지?' 느끼며 '꿈인가?' 하는데,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아들이 2층에서 혼자 어떻게 내려왔는지 애착베개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아들 깼어? 엄마 없어서 놀랬어? 이리 와!"


나는 두 팔을 벌렸고, 아들은 쪼르르 다가와 안겼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저기 내 방이지? 그지?"

"그럼, 우리 가람이 방 맞지! 근데, 왜?"

"그것 봐! 엄마가 내 방이래잖아!"


아들은 안방의 열린 문을 넘어 자기 방 문을 향해 들으라는 듯 말했다. 나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면서 집을 보러 왔던 그날 짐승의 눈 같던 두 눈이 떠올랐다.




다음날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가람이 어제 왜 자다가 엄마한테 왔어? 무서운 꿈 꿨어?"

"아니, 자는데 할머니가 자꾸 나보고 나가라고 그랬어! 내 방인데, 할머니가 자꾸 자기 방 이래! 내 방이지? 엄마?"


난 갑자기 웬 할머니 타령인가? 시어머님을 말하는 건가 싶어서


"가람이 할머니 꿈꿨어?"

"아니이~ 방학동 할머니 말고, 내 방에 할머니가 자기 방이라고 그래~ 자꾸"


나는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기만 했다. 그날 저녁. 낮엔 자기 방에서 신나게 놀고 장난감 정리도 잘해 둔 아들이 어제와는 달리 잠자러 들어갈 생각을 안 하고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아이를 2층 침대에 눕혔고, 나도 정리 후 안방에서 잠이 들었다.

자다가 새벽에 인기척에 깨보니 아들이 또 내 발치에 서 훌쩍이며 말했다.


“엄마랑 잘래.”


나는 일단 아이를 안아주고 말했다.


“이제 가람이도 형아 되려면 씩씩하게 혼자서 잘 줄도 알아야 해

"근데, 할머니가 자꾸 나가라고 그러잖아! 자꾸 자기 방 이래! 내방이라고 그랬는데도 침대를 막 흔들었어! 무서운 눈으로 나가라고 그랬어! 할머니 미워!  내방인데..."


아들은 못내 자기 방에서 쫓겨난 게 서러운 엉엉 울었다. 나는 아이의 말이 단순히 꿈에 본 할머니를 얘기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람아! 방학동 할머니도 아니면 새 할머니(나는 새엄마를 외할머니라고 안 하고 이렇게 말했다)야? 어떻게 생겼어? 그 할머니?"

"머리는 방학동 할머니처럼 꼬불꼬불한데 방학동 할머니보다 더더 할머니야! 하얀색 윗도리에다가 방학동 할머니 입은 꽃바지(몸배) 입었는데, 조금 더러운 거 같아! 근데, 할머니가 자꾸 배고파~ 배고파~ 그랬어. 밥 안 먹었나 봐!"


나는 아이가 설명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네 살 아이의 상상력 안에서 창작해 내긴 힘든 모습이라는 생각에 정말 뭔가를 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무서운 생각에 머리가 쭈뼛 섰다.



나는 설마 설마 하며 아들에게 계속


"방학동 할머니가 보고 싶어 꿈에 나왔나 봐!"

"아니, 방학동 할머니가 아니고 저 방에 계속 있는 할머니라니까? 엄마는 왜 자꾸자꾸 내가 말하는데도 몰라?" 


내가 자꾸 확인하며 같은 말을 하자, 그 조그만 녀석이 답답한지 화를 냈다. 자기 방에서 잠은 안 잤지만, 저녁에 놀 때 보면 애가 누구랑 얘길 하는지 종알종알 떠들면서 놀았다.


"여기 내 방이라고 엄마가 그랬거든!"

"그거 내 거야! 만지지 마!"

"이거 먹을래요? 배고파요?"

 

나는 아들이 그러고 놀고 있는 게 더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급기야 나는 아이를 재워놓고 혼자 아이방에서 자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되려 아침까지 깨지도 않고 아주 푹 잠을 잤다. 그래서 성당을 찾아가 신부님께 말씀을 드리고 성수를 받아 왔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침대 주위에 성수를 뿌리고 기도를 하고 이제 할머니 안 오실 거라고 말하고 아이를 재웠다. 그날 밤, 아이는 별 탈 없이 잠들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며칠 뒤, 아들은 또 자다 깨서 내 방을 찾아와 할머니가 자신을 쫓아냈다고 말했다.

이번엔 남편에게 잠을 자 보라고 했다. 남편은 뭘 보지는 않았는데 그 방 이상하게 답답하다며  다시는 그 방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은 그 뒤로 자기 방에서 자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아들은 자기 방 앞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나는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 깜빡 졸았다. 잠결에 아들이 누군가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눈을  내게 아들이 다가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할머니가 아저씨를 화내면서 쫓아냈어… 엄마 깨면 안 된다고 쫓아낸 건데....” 


해가 바뀌어 다섯 살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 어린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작가의 말


당시에 남편은 거의 매일 안 들어왔었어요.

야간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애인을 만나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아들과 둘이 참 무서울만했는데, 희한하게 그 집에 살면서는 이상하다 싶기만 하고, 의문을 갖고 있다가 또 그러다 말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 같으면 애 데리고 당장 뛰쳐나왔을 텐데... 그땐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제 생각과 행동들이 참 많았답니다.

나중에 남편 말로는 집 앞에 서면 숨이 턱 막히는 게 진짜 들어가기 싫고 피곤한 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 말이 고깝게 들리기만 해서 '그렇겠지! 애인 만나고 들어오려니 오죽 싫겠어!' 이렇게만 받아들였는데, 제가 모르는 척하느라 자세히 묻지를 않아서 그렇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뜻이 아니라 진짜 그 집이 숨 막힌다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다음화는 3화 두 여인의 내기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답니다. 금요일에 많이 보러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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