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기도의 내가 살던 동네는 재개발의 기운에 휩싸여, 한껏 들뜬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지역 큰길을 따라 새로운 지하철 노선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동네 전체가 집값에 대한 기대감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동네 언니들을 따라, 머지않아 재개발 명단에 오를 집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며칠을 집을 보러 다니다가 친해진 부동산 사장님이 나를 콕 찍어서 학교 앞에 아주 괜찮은 빌라가 하나 나왔다며 나만 그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다른 언니들은 집테크용 빌라를 보았지만, 나는 직접 살 집을 보다 보니, 크기나 금액 등이 적당해야 했다. 내가 아직 이사할 때도 아니지만, 그 집도 기한이 넉넉하다면서 동네 한편에 자리 잡은 오래된 빌라로 안내했다.
그 빌라는 내가 살던 동네 길 건너에 초등학교 앞, 가파르게 올라가는 비탈길을 따라 위치한 빌라였다. 부동산 사장은 현재 그곳에는 목사님이 살고 있다고 말하며, 일 층 자동차 정비소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에는 세 집이 있었는데, 사장은 오른쪽에 위치 한 201호가 내가 볼 집으로 세 집 중 구조가 가장 넓다고 설명하며 현관문 앞에서 벨을 눌렀다.
그런데, 내가 그 집 문 앞에 서자마자 아주 묘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기분이 몽롱해지면서 집 주변에 검은 구름이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 문이 열리고는 더 설명하기 힘든 무거운 공기가 집안에서부터 나를 끌어들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등골이 서늘하게 식었다. 벽에서는 검은 먹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눅눅하고 찝찝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상한 냄새와 공기는 숨이 막히게 했다. 그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목사라는 분과 사모라는 분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는 목사라는 사람이 사람 눈을 왜 이렇게 못 보나 이상하게 생각이 됐다. 특히 사모라는 분은 눈으로 천장을 보면서 암기한 대사를 읊듯 입으로만 계속 집 자랑을 해 댔다.
“여기가 아주 살기 좋아요! 학교도 가깝고, 시장도 가깝거든요!”
“창도 이중창이랑 겨울에 진짜 따뜻하겠네!”
보다 못 한 부동산 사장이 사모를 거들며 말했다. 이때, 갑자기 표정 하나 없는 목사님이 내게 물었다.
“종교 있으세요?”
“네?”
“믿는 신이 있으시냐고요?”
“네! 가톨릭신자예요.”
“그럼, 됐어요.”
목사가 알 수 없는 질문만 하고 입을 닫았다. 나는 '뭐 저렇게 무뚝뚝하니 본새 없는 목사가 다 있나!'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목회 일 안 하고 잘려서 쉬는 목사일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두 부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도 딱히 뭘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가만히 서서 두리번거리고만 있는데, 갑자기 작은방의 문이 ‘쾅’하고 닫혔다. 다들 깜짝 놀라 작은 방을 보았고, 부동산 사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묘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사모에게 물었다.
“따님이 있었나 봐요? 오늘은 학교에 안 갔어요?”
목사는 문을 바라보고, 뭔가 달관한 표정을 짓고 사모는 난처한 표정을 지을 뿐 답이 없었다. 나는 이 집도 사람들도 뭔가 의심스럽고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라는 분의 뭔가에 홀린 듯한 모습도 불길했다. 더군다나 대충 살펴보아도 창문은 한 번도 안 열었었는지 찌들어서 창이 열릴 것 같지도 않았고, 벽지는 누렇게 바래서 눈이 침침할 지경이었기 때문에, 도배며 장판이며 창틀에 싱크대까지 뭐 하나 손 안 댈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수리비에다가 내가 가진 예산보다 3천이나 더 비싼 이 집이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빨리 그 집을 빠져나오고 싶었다.
“제가 우리 애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이 나가면 바로 이사해야 할 수도 있는데, 여긴 6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기간이 안 맞아요. 저도 전세 내놓으면 바로 이사해야 할 거라서 일단, 다른 집 더 보고 생각해 볼게요.”
나는 그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음산한 기운이 소름 끼쳤다. 빨리 그 집을 빠져나오고 싶어서 목사님과 사모에게 인사하고,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고 섰다. 그런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뭔가가 나를 잡아끄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방 문이 살짝 열린 틈으로 짐승의 반짝이는 눈 같은 게 빛났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서둘러 그 집을 나왔다.
그렇게 기분 나쁜 집을 보고 왔다며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그런 집에 들어가느니, 옛날 시골집 지하실에서 살겠다면서 치를 떨었다. 남편은 집 꼴이 어느 정도로 엉망이길래 그러냐며 서둘지 말고, 천천히 여러 군데를 보라고 했고, 나 역시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어둠 속을 헤매다가 희미한 불빛이 보여 들어간 집은 낮에 본 그 집이었다. 어떻게든 그 집을 피해 가려고 하는데, 어느새 나는 그 집 안에 있었고,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빨리 와!”
귓속에 울려 퍼지는 속삭임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 집을 나와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계속 같은자리를 뛰고 있었다. 아무리 도망쳐도 도망쳐지지 않는 그 순간 누군가 목덜미를 잡는 느낌에 몸이 굳어 꼼짝도 못 하는데, 그 집의 현관문이 열리더니 뭔가 나를 향해 뛰어 왔다. 미친 듯 뛰어오는 정체 모를 형상에 나 역시 미친 듯 도망치려 애를 썼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온몸이 두려움에 기를 쓰며 움직이려 해 봐도 두 발은 전혀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며 두려움에 뒤를 쳐다보는 순간 바로 뒤에 커다란 구름 그리고, 반짝 빛나던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눈 빛이 나의 머리 위에서부터 쏟아지듯 나를 덮쳤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 순간 눈을 떴다! 꿈이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 공포에 덜덜 떨며 앉은 나는 세상모르고 잠든 남편과 아이를 보고 꿈이었구나! 안도했다. 하지만, 잠시 뒤 어둠 속에서도 계속 들리는 소리.
“빨리 와!”
온몸이 쭈삣 서면서 손 발이 차갑게 식었다. 너무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그날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매일밤 같은 꿈에 놀라 새벽에 깨서는 귓가에 맴도는 빨리 오라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 집에 가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이한 불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그렇게 일주일을 신경이 곤두선 채 지냈다.
나는 밤마다 알 수 없는 꿈과 환청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남편을 설득해 그 집을 계약했다. 그리고 6개월을 기다렸다가 그 집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이사하는 날 잔금을 치르며 만난 목사님이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하나님을 꼭 붙들고 있으면 괜찮아요.”
나는 그저 목사님의 설교겠거니, 생각하고 잠시 모든 공포스러움을 잊었다. 막상 그 집에 들어가니 꿈도 안 꿨고, 생에 처음 갖는 내 집에 도배와 수리를 하고, 아이 방에 침대를 들이고, 가구도 장만하면서 즐겁기만 한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또 나와 다른 일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