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집에서 나와 뒤에 뒷골목쯤에 전세를 하나 얻었다. 웬만한 짐들은 동네 친구들, 울 아들 친구 엄마들에게 나눠주었다. 새 집 장만 후 산 물건들은 거의 새것들이었고, 키즈카페를 방불케 하던 아들방의 장난감과 교구들에 비싼 전집들까지 모두 아들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난 울 아들 침대와 친구들이 해줬던 TV장과 세탁기 냉장고 정도만 가지고 나온 것 같다. 그 외 좀 쓰던 것들은 버리려고 집 밖에 내놓았는데, 컴퓨터며 아들 장난감, 나의 책들이며 옷가지에 살림살이까지...
동네 주변에 사람들 중 그 광경을 보던 몇몇 주민들이 내가 버릴 물건을 내려놓기기다렸다가 달리기를 하듯 다가와 서로 가져가겠다고 달라붙어 싸워대기까지 했다. 결국 내가, 누가 가져가야 할지 정해줘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또 컴퓨터와 모니터 TV 같은 건 내 차에 실어 이동하려고 내려놨다가 잠깐 차키 가지러 간 사이에 동네 할머니가 들고 가시는 걸 보고는
"할머니! 그건 버리는 거 아니에요!"라니까
"이미 내가 주운 거야!"라며
막무가내로 가져가시려 들어서 한참을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
암튼 이 난리를 피우며 이사를 혼자 하는 중에 그 빌라 5층 사는 반장 아주머니가 인사하러 왔다며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그 아주머니가 이사 오던 날도
"반장입니다."
하고 찾아와서는 종교를 묻더니 창 위쪽으로 십자가 같은 거 놓으라고 했었던 게 생각났다.
그 자리는 울 아들 침대 머리맡으로 책장과 음악 CD플레이어를 두었던 곳이었다.
"애기엄마 이사 온 지 얼마나 됐지?"
반장 아주머니는 짐을 한참 나르던 나에게 물었다.
"8개월 정도 됐어요."
그랬더니 혼잣말처럼
"오래 버텼네"
"네?"
내가 잔뜩 인상을 쓰며 되물었더니 내 귀에다 대고 조용히 물었다.
"애기엄마도 그 할머니 봤어?"
나는 '아들이 말한 그 할머니?' 하는 생각에 바로 물었다.
"그 할머니 누구예요?"
그랬더니 집 값 걱정이라도 되는지 주변에 누가 있나 살피던 아주머니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12년 전 빌라 처음 짓고 그 201호에 처음 살았던 할머니와 손녀가 있었다. 그 할머닌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술집마담이셨다. 어찌하다 백수건달 같은 남자를 만나 딸을 하나 낳았는데, 남편은 술 집 아가씨 하나와 어느 날 도망가서 평생을 나타나지도 않았고, 악착같이 돈 벌고 공부시키고 시집보낸 딸도, 손녀하나 낳고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손녀도 열심히 키워 공부 잘 시키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을 때 가게 다 정리해서 이 집을 손녀 이름으로 사 주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한 4년 정도 살고 할머니에게 치매가 왔다. 어쩔 수 없이 손녀가 직장 갈 땐 집에 혼자 계셨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작은 방에서 할머니는 그렇게 누군가와 떠들며 싸움을 해 댔단다.
"야! 이것들아! 빨리 안 꺼져? 어디 남의 집에 기어들어와 기어들어 오길!"
"한 번만 더 이리로 들락날락거리면 그 찢어진 주둥이를 내가 더 찢어 놓을 줄 알아!"
"이 미친놈의 새끼가 남의 손녀방엘 기어들어가?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이러면서 혼자 방을 구르고 자해를 하듯 자신을 때리고 심할 땐 주방에서 칼을 가져다가 휘두르다 다치기도 하셨다고 했다.
손녀는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더 이상 할머니를 방치할 수 없어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날은 어쩔 수 없이 할머니방문을 잠가두고 회사에 갔다. 며칠 전에 칼을 휘두르다 팔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그랬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손녀는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교통사고가 있었고 입원을 했지만 몇 주만에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였는데, 중간에 신랑 될 사람이 손녀의 짐을 챙기러 왔을 땐 할머니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갔다.
방이 잠겨있어서 그곳에 할머니가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던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고, 알고도 모르는 척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반장 아주머니의 의견은 후자였다.
결국 가족이라고는 바람나 나간 할머니 남편밖에 없는데, 할머니 은행 자산이며 빌라 두 세채 모두 그 남편에게 갔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몇몇 분들은 손녀 사위 될 사람이 빌라를 내놓았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사위될 사람 것이 되었을 지도... 모든 것은 추측일 뿐 돌아가신 분들께 그깟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저 아직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물욕이 불러온 호기심일 뿐이지 않겠는가!
결국 할머니는 손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셨던 것 같다. 손주사위 될 사람이 할머니를 생각하고 찾아온 때는 이미 할머니가 작은방에 갇힌 지 2주도 지나서였고, 그 방에서 꼿꼿하게 앉아 굳어 있던 할머니는 어디서 났는지 생 쌀을 입에 물고 눈을 뜬 채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무튼. 그 201호는 경매로 바로 다른 사람이 들어왔는데, 처음 이사 온 사람은 3개월 만에 할머니 귀신을 보고 집을 내놓았고, 그 뒤에 들어온 사람은 무슨 일인지 은행 빚을 못 갚아 집이 경매에 넘어가 쫓겨났으며, 그다음 주인은 세입자를 두었는데, 세입자가 세 달 만에 집에 뭐가 있다며 집을 빼달라는 성화에 빼주고 사업이며 하는 일이 몽땅 망해서 일 년 만에 또 은행에 집이 넘어가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계속 은행에 경매의 방식으로 주인이 바뀌다가 매매로 직접 집을 넘긴 사람은 목사님 한 분이었다. 그 집을 산 건 바로 나고...
암튼, 반장 아주머니 말로는 3개월, 길어야 5개월이면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 반장아주머니도 할머니랑 손녀 돌아가실 즈음 이사를 오셨던 터라 이웃분들께 전해 들은 얘기고, 집 옆에 무당집은 그 아주머니가 이사 오고 들어왔다고 했다.
"무당집이요? 어디예요?"
"아니, 몰랐어? 무당말이 딱 201호 창문이 귀신들 다니는 길이라는 거야! 그 무당은 귀신을 부르는 게 전문인데, 그 길 위에 사람이 집을 지은 것도 잘 못이고 창을 그 북쪽으로 낸 것도 잘못이라는 거지!"
그러면서 아주머니 생각엔 그 집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런 미신은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인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절대 그 무당집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 일대 청소상태가 엉망이고 빌라뒤로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구청에 난간설치를 요청할 때도 그런 무당집 같은 건 진짜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내가 그걸 봤고 인지하고 있었다면 아들방을 거기에 만들어 주었겠느냐? 이말이다.
암튼 그래서 그 창으로 별의별귀신들이 수도 없이 드나든다는 것이다. 난 내가 그런 일을 겪고도 그 당시까지는 반만 믿고 반은 말도 안 돼! 그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월세를 준 세입자들의 말을 듣고 할머니 존재도 그 집이 귀신들 놀이터인 것도 슬슬 믿게 됐다.
작가의 말
참 안 보일게 따로 있지! 집을 사면서 주변환경도 안 보고 사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요.ㅜㅜ 지금은 저도 도통 이해가 안 된다니까요? ㅠㅜ
그리고, 할머니네 자세한 얘기들은 제가 전해 들었던 간단한 사연에 저의 상상으로 이야기를 입힌 것이라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제가 겪은 것은 잘 기억이 나는데, 사실 들었던 얘긴 정확하게 기억나기보다 제가 생각하고 싶은데로 기억할 수도 있는 것이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