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의 놀이
두 여인의 내기
우리는 그럭저럭 집에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만은 계속 밖으로 돌았다. 결국, 나는 남편을 보내줬고, 그 괴로움에 취해 쓰러져 있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를 제대로 보살필 수가 없어서 잠시 아이를 시댁에 맡기기로 했다. -지난했던 우리 부부와 나와 아이의 이별 이야기는 다른 연재에서 간간이 소개하고 있으니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할아버지와 차를 타고 떠나는 아이를 보면서 내 세상은 다 끝난 것 같았다. 그날 나는 강소주를 먹고 그대로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이 마르면 일어나 또 소주를 마시고 울다 지쳐 다시 쓰러져 잠들고 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걸까? 아니, 며칠이 지난 걸까? 너무 시끄러운 여자들의 웃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몸이 천근만근인 듯,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서 살며시 눈을 떠 여인들의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여인 둘이 내 옆에 앉아서 뭐라고 속닥속닥 얘기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꿈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없는 내 집에 생판 모르는 여자 둘이 들어와 앉아 있는 것도 그렇고, 여인들의 모습이 희미한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태였기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여하튼, 나는 가만히 누워 여인들의 얘길 들어 보았다.
“킬킬 킬··· 쟤는 좀 버틴다? 신기하네?”
“크크크··· 저게 버티는 거냐? 정신 못 차리고 저러고 있는 꼴 좀 봐!”
“이번에는 얼마나 버티나 내기할래?”
“지난번처럼 홀리기는 없기다?”
“야! 그 목사 새끼가 신빨 세서 내가 죽을 뻔했어!”
“원래, 목사가 모시는 신이 젤 센 거 몰라?”
“좋아! 그럼, 이번엔 뭐 내기할래?”
이때, 작은 방에서 반짝이는 눈이 보이더니 두 여인을 향해 뭔가 날아드는 듯했다. 두 여인이 나와 가까이 있었기에 나는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여인들이 사라지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암튼, 저 할망구 늘 찌그러져 있더니, 얘는 왜 못 건들게 난리야?”
“자기 손녀인 줄 아는 모양이지! 노망 난 할망구”
여인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마치 달걀귀신의 얼굴처럼 눈과 코와 입이 거의 구분도 되지 않는 모습에, 그녀들이 말하는 건지 나를 보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나는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여인들이 나를 보며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할머니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내가 아들에게 할머니 얘길 들어서였을까? 분명 할머니가 나를 보호해 주려고 내 옆에서 여자들을 쫓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싹한 느낌에 당장이라도 집을 뛰쳐나갈 것 같았던 생각과 다르게 또 이상하리만큼 금세 두려움이 싹 사라졌다.
며칠 뒤 나는 톱을 하나 구입했다. 결혼하면서 친구들에게 선물 받았던 장롱과 화장대 그리고 TV 선반이 있었다. 아버지의 재혼에 쫓기다시피 결혼했던 터라 모아둔 돈도 벌어 놓은 돈도 없어서 가구단지에서 100만 원에 맞춰 구색만 갖춘 가구였다. 그게 못내 맘에 안 드셨던 시어머니께서는 굳이 이혼한 시누가 쓰던 오동나무인지 참나무인지 아무튼 엄청 무겁기만 한 장롱을 나더러 쓰라고 하셨다. 천만 원이나 하는 장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정말 싫었는데, 이런 싸구려 합판보다 백배 좋은 거라고 성화를 하시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들이 해 준 멀쩡한 신혼가구를 내놓고, 시누의 장을 받았었다.
누군가 집에 놀러 왔다가 장롱에 대한 사연을 듣고는 ‘이혼한 집 물건 함부로 들이는 거 아닌데···’하는 소리에 남편이 바람나 가정을 버린 이유가 이혼한 시누의 가구를 받아왔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남편도 없고, 아들도 맡겨둔 내가 제일 먼저 맨 정신에 한 일은 그 장을 산산조각 내 버리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멀쩡하고 비싼 가구를 그냥 버리거나 중고 가구에 팔았으면 잘 쓰였을 것인데, 그땐 나의 분노를 어디에 표출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장롱에 화풀이를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얇은 금속의 긴 톱날에 나무 막대 하나 달린 톱으로 그 커다란 15자짜리 장을 매일 열심히 톱질을 해서 바깥으로 날랐다. 동네에선 무슨 일인가 구경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장을 잘라서 내다 버렸다. 장을 자르다가 밤에는 술의 힘을 빌어 잠을 청했다. 그렇게 거의 장문을 다 잘라내고 장롱이 훌렁 옷이 벗겨진 채 부끄럽게 서 있는 것 같이 속을 다 드려내 보이고 있을 때쯤 거실에서 아무렇게나 잠이 든 내게 낄낄거리는 여인들의 소리가 들렸다.
“야! 얘도 보통 아니다. 순해 보이더니 세상에~ 물건에다가 화풀이를 다 하네?”
“어차피 죽은 나무에 화를 내 뭐 해?”
“남자 때문에 정신없는 애는 남자를 끌어들여야 해!”
“동네 남자 귀신들 다 불러! 여기 정신 나간 년 하나 있다고”
이때, 어느샌가 모르는 남자가 들어와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넘어온다? 안 넘어온다?”
“너한테 넘어가는 여자가 어딨어?”
“내기할래?”
“좋아!”
“그냥, 겁탈해 버리지 그래? 동네 남자 귀신 다 부르라니까?”
“미쳐나가는 꼴 보게?”
“응! 미치거나 병에 걸리거나? 알아서 뒤지거나!”
“그럼 재미없지!”
“아휴~ 왜? 사랑이라도 받아 보시게?”
그들은 얼굴도 표정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말소리만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일반 사람 중에서도 질 나쁜 패거리들끼리나 나눌 법한 대화를 낄낄거리며 나누는 그 존재들은 나를 두고 내기를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설명하긴 힘들지만, 이게 꿈이나 헛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동네 남자 귀신을 다 부른다는 말은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아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사람도 아니고 귀신한테 강간을 당한다고?’
나는 일어나서 도망가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깔깔대며 웃는 두 여인과 한 남자의 모습만 희미하게 보일 뿐, 알 수 없는 뭔가 나를 꾹 누르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
연재를 쉬려고 있었던 얘기를 편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막상 얘기를 풀다 보니 이것도 만만찮네요!^^;;;;
사실 귀신들의 이야기는 각색을 조금 했어요.
제가 들었던 얘기는 더 잔인하고 선정적인 얘기들이었거든요!
대충 저런 내용으로 대화를 하고 내기를 하더라고요.
그 뒤로 이 집을 나와서도 계속 이상한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집을 월세로 내놓고 저는 이사를 나오면서 이 집의 비밀을 알게 됐습니다.
그 뒤로 두 번의 세입자들에게도 믿기 힘든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 '이 집의 사정' 많이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