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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는 일들 2

귀신 보는 소녀

by 인지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혜옥은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뭐가 그리 우스운지 눈물까지 흘리며 깔깔거리면서 집으로 향했다. 소녀들의 웃음소리도 밤거리에 요란한 네온사인 속에 묻히던 번화가를 지나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혜옥과 친구들은 각자의 집 방향으로 흩어졌다. 깜빡거리는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 입구에 선 혜옥의 얼굴에선 방금까지 머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며칠 전부터 계속되는 알 수 없는 공포가 혜옥이 혼자 있을 땐 어김없이 밀려와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골목 끝 집에 살고 있던 혜옥은 어두운 골목 안이 마치 저승에 끌려들어 가는 길처럼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그나마 희미한 가로등조차 없었다면 집에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골목길이 두렵게 느껴졌다.


어두운 골목_네이버이미지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서 깊게 숨을 들여 마신 혜옥의 등줄기에선 바짝 긴장을 하고 있던 탓인지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태연한 척 차분하게 어두운 골목길을 걷기 시작한 혜옥은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마다 무엇인가 자신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깜빡,

스르르...

깜빡,

스르르...


무서운 마음에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던 혜옥은 한 번 더 깜빡 거리는 가로등 불빛이 사라진 잠깐 무엇인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는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란 혜옥은 눈을 질끈 감고 숨도 안 쉬고 집 앞까지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뛴 혜옥이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우리 집골목이 이렇게 길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멈춰 선 혜옥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깜빡이는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비친 골목 안 한 구석에 어슴푸레 쪼그려 앉은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기요······. 아줌마?”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옥은 그녀를 무시하고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혜옥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발을 떼려 애를 써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앉아있던 여인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뒤로 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에 혜옥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너무 무서워 눈을 감아버렸지만 감은 눈으로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돌아선 그녀의 얼굴은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비닐봉지를 쓰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는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하체가 잘려나가고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육신을 질질 끌며 혜옥에게 다가왔다. 혜옥은 무서움에 뒷걸음질을 치고 싶었지만 여전히 발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닐을 뒤집어쓴 여인이 뭐라고 말을 하는 건 같았다.

“나... 를... 찾... 아... 줘..,”


이미지 합성


그녀가 비닐 안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면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힘겹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체가 없는 몸을 계속 질질 끌며 혜옥을 향해 다가왔다. 끔찍한 공포에 질려 떨던 혜옥은 죽기 살기로 다리에 힘을 주어 뛰었다. 움직이지 않던 다리가 풀렸고, 혜옥은 집을 향해 미친 듯 뛰어갔다. 대문 앞에 서자마다 대문이 부서질 듯 두드리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문 열어! 엄마!”


혜옥의 엄마는 늦은 시간 문을 두드리는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놀라 달려 나왔고, 문을 열자 땀에 젖어 엉망이 된 혜옥이 그대로 엄마에게 안기며 쓰러졌다.


혜옥은 그렇게 쓰러졌던 채로 밤새 열이 펄펄 끓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나아질 기미가 없던 혜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혜옥의 엄마는 뭔가에 정신이 팔려 맨발로 집 밖을 나가는 혜옥을 부리나케 쫓아 나갔다.


혜옥은 분명 걷고 있는데 뛰어가는 엄마가 혜옥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혜옥이 제정신 같지 않기에 엄마는 더 걱정스럽게 그녀를 따라갔다. 혜옥은 신도 없이 멍한 표정으로 인근 초등학교의 쓰레기 소각장으로 갔다. 그리고, 막 불을 붙이려던 수위 아저씨를 밀치고는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간 듯 쓰레기를 뒤지는 혜옥을 말리려는 엄마와 수위 아저씨는 그녀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그녀가 하는 짓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쓰레기를 뒤지던 혜옥은 커다란 검은 비닐을 두세 덩어리 찾아 비닐을 찢더니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욕지기질을 했다. 그리고 비닐에서 고개를 돌려 구토를 해대고는 쓰러졌다. 혜옥의 엄마와 수위 아저씨는 쓰러진 혜옥의 곁으로 다가와 비닐 안을 들여다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미지 합성


그 안에는 예리하게 잘린 사람의 발목과 허벅지 등 허리 아래로 잘린 시신이 비닐 세 덩어리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수위 아저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혜옥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몇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혜옥과 피해자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계속 귀신이 자기를 찾아달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 혜옥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뭔가에 놀라 쓰러진 뒤에 열이 나더니 다음날 갑자기 쓰레기장으로 뛰어갔다던 혜옥 엄마의 말을 들은 경찰들은 이 사건을 혜옥의 말대로 처리할 순 없었기에 쓰레기를 처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건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시신이 누구의 것인지 범인이 누구였는지―전해 듣기로 연쇄 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을 전달받지는 못했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진 못했기에― 그 부분에 관해서는 깊이 얘기하지 않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 뒤로도 혜옥은 열병과 잦은 이상행동을 했고, 주변에는 귀신 보는 소녀라는 소문이 돌았다. 혜옥의 부모는 딸의 알 수 없는 병을 고쳐 보겠다고 이곳저곳 안 다녀 본 데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딸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게 되었다.

무당은 혜옥을 보자 단번에 신병이라고 했고, 결국 딸을 위해서 내림굿을 받게 해 주었다. 내림굿을 받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혜옥의 병은 씻은 듯 나았다. 그렇게 혜옥은 귀신 보는 소녀에서 처녀 보살이 되었다. 그 뒤신당을 차리고 무당으로 살게 되었고 처음에는 제법 용하다는 소문이 돌아서 가족이 모두 혜옥이 버는 돈으로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혜옥의 엄마도 혜옥이 좀 더 돈이 되는 일을 하길 바랐고, 혜옥도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보다는 돈을 벌기에 마음이 앞섰다. 급기야 혜옥의 몸을 돌봐주던 신은 떠나고, 허주라고 하는 잡신만 그득하게 되었다.


신당이미지


어느 날 제대로 점사를 볼 수 없었던 혜옥이 신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이 암흑으로 막히더니 촛불이 꺼졌다. 그리고 무엇인가 혜옥을 누르듯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스스로도 신들이 노했다고 생각한 혜옥은 넙죽 엎드려 빌었다.

“잘 못 했습니다. 잘 못 했어요.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신당에 그려진 무신도 속 시종들이 꾸물꾸물 그림 속에서 움직이는 환영이 보였다. 그리고 곧 그 안에서 나와 그녀에게 칼을 들이대자 무신도 안의 산신이 말했다.


“모든 죄는 네 욕심에서 비롯되는 법, 앞으로 네게 부귀영화는 절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모든 것이 사라졌고, 혜옥은 뒤로 신당을 접어야만 했다. 뒤에 자신을 믿던 한 사업가를 꼬드겨 인터넷 쇼핑몰을 차렸지만 결국 망했고, 그 뒤로도 그녀는 계속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고 결국 무당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한때, 토막 난 사체를 찾아 동네에서 귀신 보는 소녀로 이름을 알리고 처녀보살이 되었던 무당언니는 그렇게 자기의 욕심을 차리다가 결국 모든 걸 잃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작가의 말

먼저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특정 종교를 비하하거나 비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혀둡니다. 그저 친구 언니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조금 각색해서 올렸습니다.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그 언니가 시신을 찾았다는 것이고, 그 일로 신내림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신기하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한 얘기라서 이번화에 올려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1~2년인가? 언니는 신당을 얼마 못 하고 신빨이 떨어져서 문을 닫았다고 들었어요. 뒤에 고객이던 사업가들과 이것저것 사업을 했지만, 무당이었다는 것이 무색하게 정말 하는 족족 망했다네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시는지 알 수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제 동생과 얽힌 일로 한동안은 친구와도 원수로 지낼 정도로 악감정을 갖고 있었어요. 지금이야 동생도 잘 풀려서 잘 살고, 친구도 결혼해서 잘 사니 그냥저냥 sns로 안부만 묻는 사이 정도이지만, 동생은 아직도 무당도 안 믿고, 그들 자매 얘기만 나오면 치를 떤답니다.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처음 시신을 찾았던 얘기는 신기하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해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묶어 간략하게 이야기해 봤습니다.

다음 주는 마지막 이야기 저의 절친의 악몽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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