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해 주는 언니 시즌1을 마치며...
나는 어려서부터 무서운 이야기나 미스터리한 일들에 관심이 많았다. 이불을 덮어쓰고 보더라도 <전설의 고향>을 한 주도 놓치지 않았으며, <토요 미스터리 극장>, <환상특급> 등 무섭고 미스터리한 일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어떻게 해서든 본 방을 사수하며 보려고 애를 썼다.
비디오를 빌려 보던 초, 중, 고 시절에 가장 즐겨 빌려 보던 장르는 당연, 공포였고 <이블데드>, <13일의 금요일>, <좀비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등 희미한 기억 속 떠오르는 것이 거의 외화인데,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영화가 <나이트 메어> 시리즈였다. 특별히 <나이트 메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항상 궁금해하는 꿈을 통해 사람을 지배하는 이야기인 데다가 악령인 프레디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공포영화는 <사탄의 인형 처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같은 내용의 영화들인데, 이 영화들이 싫은 이유는 악을 행하는 존재들에게 명확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걔들에겐 명분이 없는 것이다. 그냥 무조건 보이는 대로 죽이고, 피가 낭자한 작품들이 이해가 가지도 않고, 인상만 찌푸리게 돼서 너무 싫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커 보니, 현실은 그런 이유 없는 묻지 마 범죄가 들끓고 있고, 현실 인간에게 정말 공포는 그런 것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또 영화는 영화니까 피가 낭자하고 잔인하더라도 <이블데드>와 같이 이유가 있는 복수라면 참고 봐줄 만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럼에도 일단 내가 생각하는 공포의 재미란 귀신 또는 악령들에겐 반드시 복수 또는 살상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상영관에 가서 최초로 본 영화가(부모님과 본 영화 제외하고) <고스트_사랑과 영혼>이었다. 정말, 당시 고등학교에 막 들어갔던 사춘기 소녀에게 사랑하는 사람 곁을 맴도는 영혼에 관한 영화는 눈물 콧물 몽땅 따 빼놓고, 정신까지 놓고, 나오게 만든 영화였고, 나의 꿈은 그때부터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멀티 플렉스 영화관이 없었던 시절, 서울극장, 피카디리, 단성사, 대한극장 등을 오가며 참 아무 영화나 닥치는 대로 보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암튼, 공포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면 임신 초기에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은 상영관에서 혼자 4번이나 보았던 기억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일단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22년도인가? 시나리오가 책으로 나와서 얼른 소장해 두기도 했다.
(아! 딴 길로 샜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인가 하면, 나는 어린 시절 겁도 없고, 공포영화를 좋아했으며, 공포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 귀신들의 ‘한’ 그 한이 깊어서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에 관련된 사람들이나 관련이 없어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그들의 한을 풀어주면 선한 모습으로, 순순히 저승으로 돌아간다는 영화적 설정들이, 한 영혼의 분노와 용서라는 맺음이 있어서 좋았다.
딴 길로 샌 김에 잠시 더 새 보자면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초창기 영화에선 더 두드러져 보인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 영화로 알려진 1947년 서울 국제 극장에서 개봉한 김소동 감독의 <목단 등기>는 동명의 중국 고전 소설이 원작으로 한 맺혀 죽은 처녀 귀신을 성불하기 위해 남성과 동침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 1967년 개봉작인 월하의 공동묘지(감독 권철휘, 주연 강미애, 박노식, 도금봉)는 나도 아주 어릴 적 무슨 특선 영화라며 방송에서 나와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 역시 원한 맺힌 월향이 자기 아들과 남편을 해하려는 가정부와 주변에 복수하려고 무덤을 가르고 나타나는 이야기다. 1965년 개봉작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살인마>도 원혼이 고양이에 깃들어 복수하는 내용인 것을 보면 분명 우리나라의 귀신들은 ‘한’이 맺혀 이승에서 복수를 꿈꾸며 악귀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나의 꿈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땐, 공포 따위는 내 꿈 안에 펼쳐진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던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나는 현실도피와 같이 결혼했고, 그 결혼은 결국 깨졌다. 내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했을 테고, 더불어 술에 절어 살던 시절에 영혼들이 내 앞에 알짱거린 이유도 내가 가지고 놀기 딱 재미있었을 것으로 보였을 것 같다. 우리도 친구들 술 취해서 진상 피기 전까지 라면 귀엽게 봐줄 만큼 재밌다고 여기기도 하질 않는가?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내가 약해졌을 때, 나는 두려움에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귀신 영화를 연구하고 쫓아다닌 것은 재미도 재미였지만, 귀신이 궁금했기 때문인데, 그 귀신이 보이고 들리는 순간에 판 깔고 인터뷰라도 해야 했을 판에 귀신이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던 과거의 내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귀신이 보이는 비현실과 살아 내야만 하는 괴로운 현실 속에서 어쩜, 나는 꿈꾸며 귀신에게 시달리는 비현실의 순간에 기대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죽거나 나를 배신하고 떠났던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은 나에게 헛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환상을 보고 믿게 했으며 그런 존재들이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고통으로 힘들어했었다는 것은 현실에서 나를 기만하고 속이던 이들의 허상을 나 스스로 만들어 낸 건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보곤 한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로 나는 귀신은 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것들과 소통도 가능하구나!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시 또 귀신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 이야기를 한참 쓰면서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또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역시 ‘사람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몰입하면 그 세계로 결국 입성하게 된다.’라는 진리도 다시 한번 경험했다.
두려움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하면 결국 꿈을 이루듯, 두려움을 가지고 계속 키워간다면 나를 괴롭히는 영가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한 공간에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무시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삶이 힘들 정도로 괴롭히고 앞길을 방해하는 영가들도 분명 존재는 한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이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일반인에게 이유 없이 나타나서 괴롭히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내가 약하고 힘들 때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할 때 영가들은 나에게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무서운 이야기 해주는 언니 시즌1>을 구독하고 응원해 주신 작가님과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는 <띵동, 나는 오늘도 남의 집을 방문합니다. 시즌2>로 찾아뵙겠습니다. 그와 더불어 저의 30대와 40대 시절 가족 붕괴로 힘들었던 시절에 나를 다독이고자 썼던 글들을 편집해서 브런치에 소개해 볼까 합니다. <엄마! 나르시시스트야?> 우리 아들이 문뜩 던진 질문에 나를 더 돌아보게 되면서 과거 글들을 보니까 음··· 그런 것 같기도······. ^^;;;
많이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라이켓 그리고 댓글에 중독이 되었네요.^^ㅎ
P.S
중간 글 쓰면서 했던 경험이 어떤 경험인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짧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즌2나 시즌3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얘긴지라 아주 짧게만······.
날이 추워지기 전이니까 늦여름쯤이었다. 도봉산 입구에 아주 오래된 호텔이 하나 있는데, 숙박권이 생겨서 친구와 함께 갔다. 친구와 등산을 아주 가볍게 마치고, 근처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 뒤 호텔에서 샤워하고는 가볍게 맥주를 한잔 하며 <무서운 이야기해 주는 언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나는 자꾸 출입구 쪽에서 누군가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때까지는 그냥 느낌이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먼저 잠이 들고, 나는 글을 좀 쓰고 있었다. 이때도 여전히 뭔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한참 신나게 글을 쓰는데, 조금 싸한 느낌이 들어서 노트북을 끄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새벽이었고, 그간 안 하던 운동을 해선지 또 금세 까무룩 잠이 들었다. 뭐가 분명 옆에 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그 느낌에 무섭기도 했지만, 살짝 설렜다. 뭔가가 내 옆에 서 있는 느낌!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가 분명히 이 안에 있다는 느낌! 무서운데, 또, 기대되면서도 계속 보일까 봐 두려운 그 순간의 느낌을 남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벽에 가까이 붙은 쪽에 누웠던 나와 벽 사이 한 사람이 서 있을 정도의 공간에 서서 허리를 숙여 나를 살펴보는 아저씨······.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오십 대 중반쯤의 남자였다.
나는 놀랐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놀라거나 무서워하면 호기심 반 재미 반해서 그들이 나를 쫓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안 보이는 척 이불을 휘둘러 다시 덮었다.
옆에서 자던 친구가 잠결에도 내가 뒤덮은 이불을 잡아 당겨 덮을 때 그 아저씨는 침대 발끝 TV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를 실눈으로 슬쩍 보다가 졸음이 몰려와서 그냥 자야겠단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그러면서 ‘저 아저씨는 무슨 사연이 있어서 저기 저러고 있을까? 저 아저씨 얘기로 글을 쓰면 재밌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컴퓨터가 팍 하고 켜졌다. 나도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컴퓨터 화면이 로딩돼서 메인화면이 나왔다. ‘와! 이건 정말 무섭다’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 하는 짓 같다는 생각에 더 두려웠다. 나는 방의 불을 켜고 주변을 다 뒤졌다. 혹시나 어딘가에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컴퓨터가 또 그냥 꺼졌다.
제일 무서운 건, 이 난리 통에 한 번도 깨지도 않고 잘 자는 친구였다. 나는 별의별 상상을 다 하다가 그냥 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돼서 씻고 나온 친구가 날 깨웠다. 난 몇 시간 자지도 못해서 비몽사몽에 새벽에 있던 얘길 해 주었다.
“무서운 얘기해 주는 거야? 언니?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그만하고 얼른 씻고 나오셔~ 조식 먹으러 가게···”
친구는 내 말을 전혀 안 믿었다.
그런데, 나는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밤에 꿈을 꾸었다. 내 상상이 만든 꿈인지 진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호텔 603호에 머무는 그 아저씨는 지금 매일 같은 날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해 주는 언니 시즌2 이후에서 만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