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 안의 사람들
이사를 마친 재희는 엄마와 지낼 12평의 임대아파트 자기 방 침대에 누웠다.
재희는 일찌감치 남편의 여의고 자식 넷을 키우신 엄마가 언니 둘과 남동생까지 모두 출가를 시키고 오롯이 혼자 지내시려고 신청해 둔 아파트에 얹혀살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도 짜증이 났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자신이 엄마에게 얹혀 지낸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엄마에게 스트레스였고, 남들 보기에 창피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재희가 평생을 연애 한 번을 못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나름 그녀를 좋다고 했던 남자도,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도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취업을 먼저 했고, 못했던 학업은 직장생활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 야간 대학에 다닐 정도로 그녀도 나름,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젊은 날이 있었다.
하지만, 잘 나가던 재희도 직장생활에서도 연애 전선에서도 나이라는 문제가 앞길을 막기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곳으로 건 이직이 가능했던 재희였지만 어느 순간 갈 곳이 없어서 그저 자신을 써준다는 곳에서 일하게 됐고,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던 선도 딱 끊어졌다.
간혹 만나는 친구들은 재희가 대기업을 다니며 능력 있고 잘난 남자들만 보더니 눈이 높아져서 결혼하기 힘들다는 둥, 자기 능력이 있으니 남자 보기를 뭐같이 봐서 결혼이 필요 없다는 둥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냥 젊은 시절 새롭고 즐거운 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궁금한 것들과 호기심 가는 것들을 배우는 데 최선을 다해 투자했기에 크게 모아놓은 돈은 없고, 자기 계발과 여행에 몰두해서 연애할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그동안 좋다는 남자나 좋아하는 남자들을 곁에 두 지 못하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엄마에게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지만, 사실 재희는 엄마의 사랑을 더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연달아 딸만 둘을 낳은 엄마는 셋째가 또 딸이라는 사실에 재희에게 젖 한 번 물리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연이어 낳은 남동생에겐 달랐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이 연년생 남동생의 차지였다. 재희가 가장 크게 빼앗겼다고 느낀 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남동생에게 뺏긴 엄마의 사랑을 재희는 거의 할머니에게 느끼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서로 늙어가는 처지라고 말할 정도로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재희는 종종 엄마와 부딪히며 싸울 때가 많았다. 재희는 그때마다 잊지 않고 어릴 적 섭섭했던 마음을 꺼내며 엄마에게 따지고 들기도 했지만, 엄마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답답하고 화가 난 재희는 어느 날부터인가 집에서는 늘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나와서 엄마랑 얘기해 봐야 결국 싸움이 되고 자신의 마음과 같지 않게 엄마에게도 독한 소리만 쏟아내게 되는 자신이 싫어서 그냥 자신의 방에서 핸드폰 조금 보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그전 집에 살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독 이 집에선 엄마와의 싸움이 잦았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집에서 잠을 자고 출근할 때면 온몸이 찌뿌둥한 것이 일찍 자고 일어나 출근하는 몸이 아니라 전날 늦은 시간까지 술이 떡이 되게 마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같이 뻐근했다.
그날도 재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옥철을 견뎌가며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또 뭐 하러 이렇게 일찍 들어왔냐며 남자를 만나려면 돌아다녀야 할 게 아니냐고 잔소리를 해 댔다. 어려서는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냐며 잔소리를 하더니, 이젠 안 돌아다니고 바로 집에 온다고 잔소리다.
재희는 싸울 힘도 없어서 씻고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한 참 O투브를 보던 재희는 깜빡 잠이 들었는지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뜨렸다.
“아야!”
묵직한 핸드폰으로 이마를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아직 이르긴 해도 곧 여름인데, 이상하게 재희의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재희는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 생각하며 이불을 당겼다.
하지만, 이불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희는 ‘뭐지?’ 싶은 생각에 눈을 떠 묵직함이 느껴지는 자신의 발끝을 보았다.
재희의 침대 끝에는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곱게 빗어 쪽을 지신 할머니께서 앉아계셨다.
재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누···누구세요?”
할머니는 재희의 말에 서서히 얼굴을 돌렸다. 몸은 그대로 얼굴만 조금씩 재희를 향해 돌아가는 모습에 재희는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이 완전히 정면이 되었을 때 재희는 뚝뚝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을 들었다.
“내 새끼! 어쩌누, 이 할미가 힘이 없네! 미안해서 어쩌누”
재희는 두렵던 마음은 사라지며,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그리운 할머니를 보고 싶은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재희의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를 보고 재희도 같이 펑펑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잠이 깬 재희의 눈앞에 뭔가 왔다 갔다 하며 얼굴을 간지럽히는 시꺼먼 것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그것의 정체를 보려는데, 쑥 내려오는 그것은 재희의 침대 맡에 거꾸로 매달린 여자가 풀어헤친 머리카락이었다.
여자는 조금 더 쑥 내려와 재희와 거꾸로 매달린 채 눈을 맞추었다.
눈이 뻥 뚫린 여자의 눈 안에는 벌레들이 가득했다. 재희는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가위에 눌렸구나! 잠에서 깨야하는데, 어떻게 일어나는 거지?’
재희는 기괴하게 웃는 여자의 웃음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에 재희는 힘껏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살려줘! 엄마! 나 좀 깨워줘!’
재희는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불렀지만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할머니는 사리지고 침대 끝에서 뭐가 기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스멀스멀 침대 밑에서부터 흐느적거리며 재희를 타고 기어 오는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지고 터진 얼굴을 한 소녀였다.
소녀는 관절인형처럼 탁탁탁 끊어진 동작으로 재희를 향해 다가왔다. 흉측한 얼굴에 아주 옛날 학생들이 입었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제는 턱까지 덜덜 떨려 이를 딱딱 부딪히고 있는 재희는 공포에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배 위에 한 발로 서서 꺾긴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재희는 이대로 아침이 오기 전에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 한구석에 한 아저씨가 벽을 머리로 쿵쿵 박으며 서 있었다.
재희는 이 괴물 같은 사람들은 무엇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머리를 박던 아저씨가 어느샌가 뒤를 돌아 재희를 죽일 듯 노려보더니 낫을 들고 재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재희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 악”
이때, 재희의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두려움에 온몸이 굳었던 재희는 아직도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재희에게 다가와 재희를 흔들었다.
“재희야! 괜찮아? 얘! 일어나 봐!”
엄마가 다가와 재희의 몸을 흔들자 그때서야 온몸이 풀리면서 잠에서 깬 재희는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엄마! 너무 무서워~ ”
“가위눌렸구나!”
“내가 소리 지르는 거 들렸어?”
“아니, 너 소리는 안 질렀어!"
"근데, 어떻게 건너왔어?"
"글쎄, 엄마 꿈에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와서 빨리 일어나서 너한테 가라고 호통을 치시는 거야! 그래서 와봤더니 네가 끙끙거리고 있더라고”
그날 재희는 엄마를 안고 한참 덜덜 떨다가 안방으로 가서 엄마와 잠이 들었다. 며칠은 엄마와 함께 잠을 잤지만, 또 영락없이 엄마와 싸우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재희는 한기를 느끼고 또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그런데, 침대 밑에서 누군가 이불을 쑥 잡아당겼다. 재희는 잠결에 끌려 내려간 이불을 당겨 덮었다. 하지만, 또 누군가 이불을 쑥 당겼고, 결국 어느 순간 이불이 아예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재희는 저절로 뭔가 또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또 뭘까? 잔뜩 겁을 먹고 슬며시 눈을 떠 본 재희는 기겁했다.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누워있는 재희를 둥글게 둘러싸고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 명도 정상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머리가 터진 사람,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람,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온몸이 화상으로 눌어붙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재희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것인지, 할 말이 있는 것인지, 아침이 올 때까지 그렇게 재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재희는 기절을 했던 것인지 잠을 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출근을 해야 했기에 집을 나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것이 어디 자기뿐이겠는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귀신인지 악귀인지 알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 잔 재희는 결국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가 났고, 가뜩이나 안 좋았던 허리를 크게 다쳤다.
그 일로, 오래 쉬게 되면서 또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고, 어머니는 위암 수술을 받는 등 갖가지 힘든 일들이 많았다.
재희는 털털하고 유머 있으며 센스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늘 사랑받는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결벽증으로 스스로도 힘들 만큼 짜증이 늘었고, 위축이 되어있었다. 그나마 조금 위안이라면 그 집에서 이런저런 힘든 일을 겪고 두 모녀의 사이는 조금 나아졌고, 싸움을 하기보다 서로 참아주고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할까? 하지만, 미신을 믿지 않는 엄마와 꿈은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는 재희는 아직도 그 방에서 악몽에 시달리며 의문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작가의 말
친구가 가끔 절 만나면 꿈꾼 얘기들을 해 주는데, 그 얘기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봤어요. 정말 무서운 꿈 얘기가 엄청 많은데, 인상 깊었던 악몽들만 엮어 봤고요.
친구는 무섭고 괴롭다고 하는데, 왜 이사를 안 갈까요? 그 집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그러면 아프신 엄마를 혼자 두고 나와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지내는 것 같아요.
친구 언니는 그 방에서 자는 다른 사람은 안 꾸는 꿈을 너만 왜 그렇게 꾸냐고, 신내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친구는 비단 그 방에서만 악몽을 꾸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언젠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글을 쓰느라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고, 친구는 피곤하다며 제 침대에서 먼저 잠이 들었어요. 근데, 계속 끙끙거리며 자더라고요.
제가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우니까 친구가 자기가 계속 깨워달라고 그렇게 소릴 질렀는데 못 들었냐며 화를 내더라고요. 내가 너 소리 안 질렀어! 하도 끙끙거려서 내가 깨워 본 거야!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낫을 든 아저씨가 자기 다리를 막 낫으로 내리찍었다는 거예요. 저는 이제 귀신도 안 보이고, 가위도 안 눌리는데, 제 집에 자면서 그런 얘길 하니까 저도 살짝 무섭긴 하더라고요.
언젠가는 친구가 하도 그런 꿈을 꾼다기에 주변에 그 아파트 짓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별건 없었다고는 하는데, 어떤 분이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전쟁 때 돌아가신 분들 중에 연고 없는 분들을 그곳에 한꺼번에 묻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친구 꿈 이야기를 들어봐서는 그 얘기가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은 됐지만, 뭐······. 확인은 역시 불가능 ^^;
그럼, 무서운 이야기 해 주는 언니 시즌1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다음 시즌2에서는 일본에서 살다가 오신 제 사촌 언니의 어느 시골 마을과 일본에서 만난 귀신들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주는 에필로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