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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는 일 들 1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 속 의문의 사건 두 가지

by 인지니

여러분에게 가장 오래전 기억은 몇 살 정도인가? 순간의 기억들이 아닌 하루종일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기억 말이다. 사실 내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순간이라 해도 사진이나 그때를 추억할 물건이 있어서 하는 기억들 외에는 6~7세 이전의 기억이 정확하게 나진 않는다. 심지어 생사를 오락가락했던 3살 때 감전사고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뒤에 치료를 받으려고 갔던 병원에서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솜을 넣지 않아서 두 손가락이 붙어있던 장면이 잠깐 떠오르고, 그 뒤엔 다섯 살 때인가? 엄마가 손가락을 떼는 수술 후에 내 손가락이 오그라들까 봐 그랬을까? 손가락을 사용하는 피아노를 가르치시겠다고 데려간 피아노 학원에서 유난히 작은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딩동 거리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아직 너무 어려서 할 수 없다는 원장님의 말에 실망하고 돌아왔던 기억도 포함해서 말이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나와 세 살 터울의 동생이 돌 사진을 찍던 날 너무 울어서 사진사 아저씨와 엄마가 애를 먹던 일이지만, 그 일도 그때 찍었던 돌 사진을 볼 때마다 그날의 창피함이 떠 올랐기에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사진이 없었다면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두 살 더 먹었다 해도 여섯 살 어린 나이에 겪었던 이 일을 기억한다는 건 신기하기도 한데, 아마도 그날 엄마에게 혼나며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던 기억에 희미하게 기억에 남게 된 것 같다. 사실 그땐 이 일이 신기하기보다 내 말을 안 믿는 엄마에게 화가 나고 속상하기만 했다. 그러나 후에 내 기억을 되짚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무서운 경험이었다. 오늘의 얘기는 결국, 이 얄팍한 기억에 살을 붙여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니까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학교 뒷산에서 만난 오빠들


때는 1979년도 9월? 그때 막 얇은 긴 팔을 꺼내 입을 때였으니 9월쯤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서울 한복판에도 포도밭이 있었다. 우리는 그 포도밭 바로 옆집에 살았고, 그 주인집에 나보다 두 살이 많던 소영(내 기억에 실명임)이 언니에게 얻어 입은 퍼프 블라우스가 너무 좋아서 그 옷을 꺼내 입고 나갔던 날이라 계절이 짐작된다. 나는 그때, 여섯 살, 개월 수로는 70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앞뒤 정황은 생각이 잘 안 나지만 당시 동네에서 거의 막내라서 언니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놀았던 것 같은데, 주로 당시 초등학교 다니던 소영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온 언니가 놀러 나가려는데, 집에서 같이 놀고 있던 미영언니와 둘이 소영언니를 따라나섰다. 근데, 언니들이 꼭 동생을 귀찮아하고 그렇지 않던가? 아마 소영언니도 그랬던 것 같다.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종종거리며 언니를 따라 집 뒷산에 있는 학교로 갔다. 근처에 놀이터나 놀만 한 곳이 없던 때라 철봉과 그네, 시소, 모래가 있는 학교는 놀이하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모래를 가지고 소꿉놀이하며 놀고 있었다. 한 30분쯤 놀았나? 우리에게 커다란 오빠 대여섯 명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야! 너희들 김경태 알아? 키는 요만하고 일학년 남자애야!”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자기 허리쯤에 손을 대며 남자아이를 찾았다. 그때 소영 언니가 아는 체하며 대답했다.


“1학년 2반 김경태요?”

“그래! 알아?”

“네! 우리 반이에요. 걔 우리 옆집에 사는데?”


그러자, 오빠들은 우리를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소영 언니가 먼저 일어나 손에서 툭툭 모래를 털며 오빠들을 따라나섰다. 미영 언니와 나는 커다란 오빠들이 험상궂게 보여서 주춤거리고 있었는데, 그 무리에서 덩치가 제일 작은 오빠가 손을 잡아주면서 친절하게 일으켜 주니까 조금 안심이 되어 오빠들을 따라나섰다.


오빠 중에 제일 큰 오빠를 친구들이 준현이 형이라고 불렀다. 그 무리들은 그 당시 내가 보기에 질이 나쁜 애들 같았는데, 학교 꼬마들을 데려다가 괴롭히는 걸 재미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오빠들이 우리를 데리고 산 중간쯤에 가서는 우릴 보면서 험악한 얼굴로 변해서는 말했다.


“너희는 다음 차례야! 오늘 본 일, 어른들한테 얘기하면 죽여버린다.”


그 상황이 뭔지 도통 몰랐던 나는 어리 버리 하고 있는데, 소영 언니는 놀랐는지 얼른 돌아서 뛰어 도망을 쳤다. 미영 언니랑 나는 오빠들에게 잡혀서 거기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볼 수밖에 없었다.

김경태(가명) 오빠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다른 오빠들이 나무옆에 땅을 파서 그 오빠랑 우리를 거기에 들어가게 할 거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겁이 더럭 났는데, 그 친절하게 손을 잡아줬던 작은 오빠가 다른 오빠들이 땅을 파는 사에에 몰래 도망을 칠 수 있게 해 줘서 미영언니랑 나는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 왔다.


해가 다 져서 온몸이 흙 투성이가 되어 들어온 나와 미영언니를 본 엄마와 아줌마는 어디서 이렇게 늦게까지 놀다 왔느냐며 혼을 냈고, 나와 미영언니는 산에서의 일을 얘기했다. 소영언니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소영 언니가 우리만 두고 혼자 도망갔어!”

“맞아! 우리를 나쁜 오빠들한테 두고 혼자 갔어!”

“지금 산에 옆집에 경태 오빠가 묶여있어!”


엄마들은 미영언니와 내가 떠드는 말을 들으며 한 분은 열심히 수동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고 한 분은 그 물을 받아 둘을 동시에 씻기기 바빴다.

마당 가운데 이런 수동 펌프로 물을 올려 사용했다.(참고용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유다리골님의 블로그에서)


우리가 하는 말을 흘려듣던 엄마들이 경태오빠 얘기가 나오자 눈을 마주치며 놀랬다. 그리고 소영언니네 엄마가 소영언니를 불렀다.


“소영아! 너 얘들이랑 산에 갔다 왔어?”

“아니, 난 학교에서 애들이랑 놀다가 집에 온 건데?”

“언니! 우리랑 같이 있었잖아!”

“내가 너네랑 언제 있었어!”


그러자 우리 엄마가 내 엉덩이를 때리면서 말했다.


“이 녀석이 어디서 엉망으로 놀다가 혼날까 봐 거짓말을 해?”

“아니야! 우리 진짜 착한 오빠가 보내줘서 힘들게 도망쳤어!”

“맞아! 우리도 그 산에 묶인 오빠랑 같이 묻어버린다고 막 오빠들이 땅 파고 그랬어!”


미영언니도 나를 거들며 말했다. 하지만, 엄마들은 우리가 어디서 뒹굴며 늦게 까지 놀다가 안 혼나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셨고, 우리는 억울했지만 그렇게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엄마들이 마당에서 빨래를 하며 옆집 아들이 실종이 되었다는 소리를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 오빠야? 착한 오빠? 산에 봤다니까!”

“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나는 또 엄마에게 혼이 났다. 그런데, 주인집 소영이 엄마가 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옆집 경태엄마에게 얘기를 했고, 옆집 경태 엄마는 당장 나에게 달려와 아들을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JINI야! 너 이 오빠 봤어? 어디서 봤어?”


사진 속의 오빠는 나와 미영언니를 집으로 돌려보내 준 착한 오빠였다.


“어! 착한 오빠다”


나는 학교에서 놀다가 산으로 간 얘길 해 줬고, 경태 엄마와 경찰들이 그 학교를 다 뒤져도 준현이라는 학생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말한 그 일대를 찾다가 한 나무 밑에서 빨간색 노끈을 발견했고, 그 주변을 보니 구덩이 속에서 한 남자아이가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남자아이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안타깝게도 죽었다고 들었다. 나와 미영언니를 돌려보내 준 것도 그 나무에 매달려 있던 것도 구덩이 속에 갇혀 있던 것도 다 그 착한 오빠, 경태 오빠였다니, 얘기하는 지금도 나 역시 내 기억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럽긴 하다.


소영이 아줌마는 내 얘기에서 미영언니는 쏙 빼고 큰 딸이랑 집에 같이 있었다고 말했고, 나는 계속 언니들이랑 학교에서 놀다가 준현이형이랑 친구들을 따라갔다가 경태오빠가 몰래 보내줘서 집에 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해대서 어른들은 내 얘길 그냥 상상쯤으로 넘겨 버렸다고 한다.


우리 엄마도 내가 그런 무서운 일에 연루된 게 싫어서 애가 뭘 알겠냐며 언니들 따라나가 놀다가 들어왔을 뿐이라고 했고, 자기 딸들은 빼고, 내가 한 얘기라고 옆집에 말을 전달한 주인아줌마랑 그 일로 심하게 다퉜던 장면도 기억이 난다. 두 엄마들이 늘 사이좋게 수다 떨며 설거지하고 빨래하던 마당의 수동 펌프 앞에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니자식이 중하니 내 자식이 중하니 그래가며 싸우던 장면도 내 기억에 한 토막처럼 남아있다. 그렇게 두 엄마가 싸우고 나서 우리는 면목동에서 의정부로 이사를 갔다.

그땐 그냥 그랬나 보다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소영 언니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준현이형은 학교를 안 다니고 무리 지어 다니며 애들을 괴롭히고 힘을 과시하고 돌아다니는 질 나쁜 청소년인 듯 생각된다. 하지만, 역시 경태오빠에 관해선 나도 어린 나의 기억 오류가 아니라면 자신을 구해달라는 경태오빠의 어떤 존재가 내게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때, 그 일은 집에서 더 이상 말 꺼내지 못하는 얘기였어서 엄마나 아빠에게 조금 더 정확하게 물어보고 싶어도 이젠 두 분 다 안 계셔서 더 이상 진실을 알 도리가 없다.


*1981년 국민학교 재래식 화장실에서 생긴 일

나는 의정부에서 1학년 1학기까지 살다가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한동안 버스를 타고 서울로 학교를 다녔다. 그때 자리를 잡은 게 지금 사는 강북이다. 수유리와 유명한 미아리 고개, 둘리의 고길동이 사는 쌍문동, 응답하라 1988의 그 쌍문동이 내가 살던 그리고 지금 사는 동네이다.

뭐 이 동네에 사는 것은 중요한 얘긴 아니고, 1981년, 우리 동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학교 화장실이 교실 밖 건물에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재래식으로 시멘트 바닥에 사각형으로 구멍만 뚫어 놓고 나무로 된 문에 금속 빗장걸이(걸쇠)로 밀어 잠그고 볼일을 보는 형태였다.


지금 집집마다 다녀보면 초등학교 2~3학년 친구들도 큰일을 보고 엄마를 불러대지만, 그땐 초등학교 1학년인 친구들이 그 바깥 화장실에서 스스로 볼일을 보고 휴지로 닦고 그랬다. 그 당연한 일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인구가 많아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시대이다 보니, 초등학교에 학생이 워낙 많아서 오전반과 오후반이 나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하고도 60~70명 정도의 인원이 한 반이었으니 애들이 정말 많던 시절이었다. 그 많은 친구들이 모두, 쉬는 시간 10분 안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다시 수업에 들어가야 하니까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일 학년들은 요령이 없어 그랬는지 화장실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가 쉬는 시간이 끝나서 볼일도 못 보고 교실로 돌아왔다가 수업 중 실수를 하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때론 집이 좀 잘 살아서 집 안에 화장실만 써본 친구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런 친구들도 학교에서 화장실을 못 가고 참다가 실수를 하기도 했다.


전교생이 모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화장실은 건물 밖이고, 불도 컴컴한 데다가 시커먼 시멘트 바닥에 밑이 뚫려 냄새도 지독하다 보니 그 으스스한 분위기는 공포영화가 따로 없는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당시 학교에는 학교 정면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 괴담만큼 꽤 많은 화장실 괴담이 있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거의 둘씩 짝을 지어 용변 실 안에 들어가서 일을 보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2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있었던 일이었다. 방학 동안 교실 옆으로 수세식 화장실 공사를 진행했고, 아직 그 수세식 화장실을 전부 개방하지 않은 상태라서 교실 건물 안쪽 수세식 화장실과 교실 바깥쪽 재래식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재래식 괴담이 있었는데, 그중 재래식 화장실을 없애는 이유가 3학년 남자아이가 수업 중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다가 뭔가에 홀려서 화장실에서 빠져 죽은 뒤에 그 친구가 빠져 죽은 칸에서 볼일을 보면 그 아이가 볼일 보는 친구들을 밑에서 끌어당긴다는 괴담이 파다하게 퍼져 있던 때였다.

그 소문에 나는 늘 교실 안쪽 수세식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같이 화장실을 다니던 친한 친구가 소변이 너무 급하다고 해서 바깥 재래식 화장실로 향했다. 줄이 전보다는 짧았지만 언니 오빠들이 제법 서 있었고, 그중에서도 줄이 짧은 곳을 찾다가 아무도 줄을 서지 않은 칸은 발견하고는 둘이 서둘러 들어갔다.

용변이 급했던 친구가 먼저 볼일을 보고, 나는 뒤로 돌아서 문의 빗장 걸이의 꼭지를 잡고 빗장을 오른쪽으로 밀어서 걸었다.

거의 이렇게 녹이 슬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양 옆은 막혀있어서 저 꼭지가 없으면 닫지도 열지도 못하는 상태의 빗장이었다.


오래된 문이 많아서 거의 꼭지들이 녹이 슬어있었기에 늘 그 꼭지를 잡기 싫었었는데, 은빛이 반짝이는 스텐으로 된 금속 빗장걸이는 잘 움직여서 아주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곧 없어질 화장실에 왜 새 걸쇠를 달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어서 친구에게 말했다.


"여기 화장실 금세 안 없어질 건가 봐! 이걸 새로 달았네?"


곧 볼일을 다 본 친구가 돌아서서 있고 내가 볼일을 보는데, 친구가 문 손잡이를 잡더니 말했다.

“진짜네? 새로 달았네? 문 잡고 있을 필요 없겠다.”

“그렇지? 우리 맨날 여기 칸에 와서 오줌 누자!”

내가 볼 일을 다 보고 일어나자 친구가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근데, 진짜 여기서 빠져 죽었을까?”

“야~ 그런 얘길 왜 해? 무서워”

“으~ 진짜 무섭다 빨리 가자!”


친구는 서둘러 돌아서 빗장을 빼려 했다. 하지만, 곧 친구가 굳어서 내게 말했다.


“JINI야! 이 거 방금 새 거였지 않니?”

“응? 뭐가?”


나는 친구의 말에 문에 달린 빗장을 보았다. 방금 내가 새로 달린 은빛의 빗장을 걸었기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빗장은 다 녹이 슬어서 심지어 꼭지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리고, 걸쇠에 꼭 끼어진 채 녹이 슬어서 빠지지도 다시 껴지지도 않는 상태였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들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녹이 쓴 걸쇠는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놀라고 황당하며 무서운 생각에 화장실 안에서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고 우린 더 큰 소리로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6학년 오빠들과 언니들이 문을 열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용변실 뚫린 저 컴컴한 밑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틀어쥐고 나를 끌고 들어갈 것 만 같은 두려움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울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말했다.


“얘들아! 넘어와! 빨리”


친구는 그 소리에 나무로 덧 댄 문을 잡고 올라갔고, 나는 친구를 밑에서 받쳐 주었다. 친구는 문을 넘어 건너편에서 선생님이 잡아주어 내려갔고 나는 혼자 문을 올라가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었다. 두려움은 더 커졌고, 이젠 화장실 안에서 누군가 웃으며 나를 부르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결국, 문 밖에서 매달려 내게 손을 뻗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간신히 문을 넘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 소동이 있고 나서 그 화장실은 폐쇄되었다. 나는 그 뒤 그날 일이 다 생각이 안 난다. 나도 그 친구도 너무 놀라서 수업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고,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양호실에 누워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중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유독 그 화장실 칸에 아이들이 자꾸 갇힌다고 했단다. 그 화장실은 빗장이 녹슬고 꼭지가 부러져서 들어갈 수가 없는데, 꼭 그 칸에 들어가는 애들이 있고, 들어가서는 거의 실신해서 나온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 학교 재래식 화장실은 완전 폐쇄가 되었고 -한동안 화장실 건물은 계속 있었지만- 내가 한 4학년 때쯤 화장실 건물이 다 밀리고 그곳에 나무를 심었던 것 같다. 나는 그곳에 나무가 있어도 왠지 음침한 기분이 들어 학교 뒤편인 그곳으로 잘 가지 않았다.


지금은 졸업을 하고 38년지 지났으니 학교도 많이 변했겠지! 공립학교다 보니 선생님들도 바뀌고 동창회도 한 번 나가지 않다 보니까 학교 갈 일이 없어 어떻게 변했는지 그런 괴담들이 아직도 도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 그 일은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가지도 않고, 착각이라 하기엔 친구와 동시에 그런 착각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울 뿐이다. 애초에 녹슬어 닫혀있는 그 화장실에 아무도 줄도 안 서있었는데, 우린 왜? 어떻게 거길 들어갈 수 있었는지···. 그런 모든 것들이 의문스러운 일이며 설명할 수 없는 오래된 기억이다.



작가의 말


요즘 먹고사는 일이 좀 애로사항이 많고 ^^;;; 글 작업을 미리 해 놓지 못해서 올리는 시간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혹시 아주 혹시 기다리신 분이 있다면 이해부탁드립니다.^^ ㅎㅎㅎ


이번주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괴이한 사건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이것 말고도 자잘한 일들이 많았지만 어린 날 상상력이 풍부했던 제게는 다 재미있는 일들로 여겨졌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세월이 흐르며 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앞으로는 더 그러하겠지요?ㅠㅠ


오늘 얘기드린 두 이야기는 유독 의문이 풀리지 않는 기억이었습니다. 두 사건은 진실이 어떤 것인지 지금은 확인해 볼 수도 없는 일들이라 더욱 궁금함으로 남게 되었네요.

혹시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의문을 풀었던 분이 있는지도···.

그런 분이 있으시면 제게 그 결말을 얘기 좀 해 주세요. 너무 궁금합니다.^^ㅎㅎㅎ


다음 주 설명할 수 없는 일 2는 잠시 신을 받아 무당을 하던 친구의 언니 일화를 풀어보려 합니다. 이 얘기는 한 번 더 확인을 해 보고 잘 풀어보기 위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넣어봐야겠어요.^^ 그럼 다음 주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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