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놓인 아이의 운동화를 살펴본다.
운동화를 보면 오늘 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잔뜩 흙이 묻어 있으면, 포장이 잘 된 길 대신 옆길로 다녔다는 뜻이다.
그 옆길에서 덜 녹은 눈을 밟고, 얼음을 깨고,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만지며
아마 새도 한참 바라보다 왔을 테니,
괜찮은 하루를 보냈구나 짐작한다.
유난히 운동화가 깨끗한 날이면
그날은 아이가 바삐 움직였을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게 된다.
나도 흙을 만지는 걸 좋아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하루에 두세 번은 두꺼비집을 만들었다.
흙에다 그림을 그리고,
흙을 파고,
그렇게 흙과 함께 노는 건 일상이었다.
많이 뛰어다녔을 텐데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았던 걸 보면
어쩌면 흙은 우리에게
늘 아낌없이 자리를 내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종일 놀다 집에 들어가면
신발과 옷은 아마 흙투성이였을 텐데,
혼난 기억이 없다.
그게 이제 와서 엄마에게 더 고맙다.
그렇게 흙과 함께 자란 내가
이젠 아이의 신발에 흙이 묻어 있지 않으면
괜히 걱정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흙을 일부러 찾아가야
실컷 밟고 놀 수 있는 도시가
마냥 아쉽지만,
아이의 눈으로 흙을 찾아
밟고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아이도 자기만의 옆길을
잘 만들어가고 있구나 싶어진다.
현관에 놓인 작은 운동화 한 켤레가
오늘 하루도
아이가 세상과 잘 지냈다는 인사처럼 보여
나는 안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