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_윤동주 (1938. 9. 20.)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윤동주 (1938. 9. 20.)」
코스모스는 자리를 정해 놓고 피는 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어린 날의 기억엔 그랬다.
마당 한켠에,
논둑에,
밭 모퉁이에,
무심히 지나가는 길가에도 피어 있었다.
가느다란 몸으로
내 시선이 닿는 곳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히 손짓하고 있었다.
내 눈에 담긴 코스모스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피어 있었고,
조용히 내 옆을 걸어주는 친구 같았다.
지금도 계절마다 피어나는 들꽃을 보면
어린 날 내 마음에 담아 둔
보물상자를 다시 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