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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윤작가 Oct 05. 2021

26_만 7살 캐나다 조기유학 9개월 차의 영어

2011년 2학년 늦봄  

만 9개월이 지난 시점, 5월 말~ 6월 초, 2학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울 만수는 3개월 전보다 조금 더 알아듣고, 조금 더 영어를 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보니까, 선생님이 만수를 불러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신다. Student Led Conference 때 가서 우연히 옆에서 들었는데, 딸아이에게 책 한 권을 건네시며 이 책을 갖고 1층 체육관에 가서 우리 반 그림 전시회 하는 벽 아래 바닥에다가 책을 조금 펴서 세워 놓으라고 하신다. 딸아이는 단번에 알아듣고 그대로 하는 거다. (오~) 또, 집에서도 나한테 영어로 말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는 경우는 빈번하고, 영어로만 말하는 횟수도 늘었다. 문장 수준도 꽤 높아졌고, 문법도 점점 더 정확해지고 있는 듯하다.


아는 단어도 꽤 늘었는데, 문제는 그 단어를 우리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워한다는 거다.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적이 없고, 캐나다 와서 생활 속에서, 책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다 보니, 영어 단어가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 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만수야, lazy가 무슨 뜻인지 알아?”


나처럼 영어를 공부해서 아는 사람 같으면, “lazy = 게으른” 이런 게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갑자기 거실 매트로 뛰어가더니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이러는 거야.. 게으르게..”


‘grumpy’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는,

“grumpy가 무슨 뜻인지 알아?”


이번엔 표정으로 말한다. 심술 난 것처럼 입을 뾰로통하며 심술을 내는 표정이다.


“맞아.. 심술 났다는 뜻이지?”


우리말로는 전달을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오셨을 때, 아이가 영어책 읽는 거 보시고 우리말로 해석해보라고, 우리말로 뭐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한다.


“무슨 뜻인지 아는데, 우리말로는 못 말해요..”


만수는 reading(읽기) 수준은 괜찮은 편이었다. 또래 캐나다 애들에 뒤지지 않았다. listening(듣기) 실력도 꽤 늘어서 많이 알아들었다. 사실 나보다 나은 수준이 되었다. 그즈음, 친한 집들과 다 같이 그 당시 인기가 한창이었던 <쿵후 판다 2>를 보러 갔다. 영화 보는 내내 깔깔깔깔… 나는 사실 중간에 잤다.. ㅋㅋㅋ


집에 돌아와서,

“너 영화 다 알아들었어?

“응”

“진짜? 못 알아들은 거 없어?”

“엄...... 한 두 개 못 알아들었어.. “(‘엄..’을 많이 한다.. ㅋㅋ)

“우와~ 엄마보다 낫네..”


말하는 문장 수준도 꽤 높아졌다. 화장실 세면대 앞에 만수가 놓고 올라가는 키높이 스툴이 있는데, 며칠 전에 자꾸 걸리적거리길래 구석으로 밀어놓았더니, 아이가 왜 치웠냐고 따진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It’s not easy for me to take out.” (꺼내기 어려워)

문법도 거의 정확하고, 벌써 It~ for~ to 가주어/진주어 구문을 쓰다니.. ㅎㅎ


우리말 문장에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일은 자주 있는데, 이런 식이다..


“엄마, ‘페이펄’이 없어.. “


우리나라에서 ‘paper’라는 단어를 배운 아이였다면, “엄마, 페이퍼가 없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영어를 공부로 배운 게 아니라 습득한 증거다. 이게 명사만 영어로 섞어 쓰면 괜찮은데,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 학교에서 영화 본다고 했던 날, 영화 봤냐고 물으니,


“movie를 못 watch 했어..”

ㅎㅎㅎㅎㅎㅎ


우리말을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해서 전혀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돌아갈 거니까.. 나이의 특성상 이듬해 한국 돌아가면 금세 해결될 것이기에..


정말 큰 우려는 이렇게 배운 영어를 한국 가서 급속도로 까먹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에의 노출 정도가 다를 것이니..


한국에 돌아와서 고3이 된 지금.. 물론 많이 까먹었다. ㅎㅎㅎ 돈 생각 가끔 난다. 돌아와서 영어 학원을 열심히 꾸준히 다니지 않았던 탓도 있고.. 아이가 한국식 영어공부(문법)를 어려워했던 탓도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만 영어를 공부한 아이들보다 뒤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아이가 학교 다니면서 영어 과목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았으며, 별로 공부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오곤 했다. 다만 그게 수능 영어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ㅎㅎㅎ 딸아이 말로는 고3이 되면서는 영어에 대한 체감이 확 달라지면서 많이 어렵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이 기대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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