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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Aug 16. 2022

부부 싸움

     

그대는 내 사랑 당신도 내 사랑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쨉이 안되지

원 아이 따로 있나 

좋아 좋아 당신이 좋아  

당신이 좋아 - 남진 장윤정 -    




아내와 다퉜던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어김없이 민턴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아니 오늘도 민턴을 간다고?"

”게임 약속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어쩔 수가 없네 한두 게임만 하고 올게 “

이 날 아내의 말을 듣고 민턴장에 나가지를 않았어야 했다.  

   

아내의 곱지 않은 시선과 불만을 모른 체하고 기어이 클럽에 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민턴 중독자 들은 달력의 빨간 날에도 많이들 나와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운동을 간단히 하고 난타를 치며 몸을 풀었다. 그날은 c급을 치는 모 대학교 교수님이 오랜만에 운동을 나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같은 팀이 되어 친선게임을 시작했다. 

     

남은 하루 일진이 사납려고 그랬을까? 아내의 원망스러운 눈초리가 부담이 되었던 것일까?  그날따라 묘하게 경기가 풀리지 않고 게임마다 패하기만 했다. 7게임을 했는데 전부 패를 했다.      

민턴에 입문한 지 3~4년 차 이렇게 연패를 하기도 싶지 않을 텐데 묘한 날이구나 싶었다. 

    

밤 9시쯤 게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려는데 부회장이 운동 끝나고 시원한 맥주 한잔 하러 갈 건데 같이 갈 거 나고 물어온다. 잠시 고민을 했다. 격한 운동 후 은근한 악마의 속삭임 같은 시원 한 맥주 한잔의 유혹은 거절하기 힘들다.

     

원래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먹고 나면  후유증이 큰 체질이라 

체질이라 부담스러웠고 술자리에 모일 사람들과 대화 내용이 다소 뻔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TV 예능 프로를 시청하고 있던 아내는 다녀왔어라고 인사를 건네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뻘쭘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뭐라도 하며 보내야지 싶어  ”치킨에 맥주라고 간단히 할까? “

재차 물어도 아내는 여전히 묵묵부답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샤워를 하려고 안방에 들어가니 내가 가장 아끼는 유연성 선수의 친필 사인 상의 티에서부터 비싸게 주고 산 여벌의 옷들과 평소 애지 중지 모셔만 두고 아끼던 라켓들이 방바닥에 흩어져 마치 도둑이 든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말로 하지 아끼는 물건들을 이렇게 팽개쳐 놓으면 어떡해”? 나를 말없이 쳐다보던 아내는 “민턴 물건 버려 놓은 건 아깝고 맨날 혼자 버려둔 니 마누라는 안 아깝냐?”   

  

뒤통수를 세차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도끼눈을 뜨고 촌철살인 송곳처럼 날카롭게 뚫고 들어오는 아내의 말에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 민턴이라는 운동이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1년 365일 중에 아침에 전용구장에 나가서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가입한 클럽에 나가 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두 탕 세탕 뛰는 것이 그것이다. 나 역시 그때는 그랬다. 민턴에 미쳐 있을 때라 

     

민턴을 억세게 치고 나면 부실한 허리가 부서질 듯 아파도 병원에 나가 물리치료를 받고 다시 나간다거나 관절이 아파 어깨와 무릎 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수술을 하고 나서도 계속 민턴을 친다.

그만큼 민턴의 중독성은 질기고 강하다. 


그 당시 달빛 클럽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도 당일 날 빼고 전날인 그믐날에도, 클럽을 개방했고 연휴 첫날에도 민턴을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은 아닌 것인데 민턴 홀릭이 불러온 다양한 증상들 중 한 현상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민턴에 미쳐 하루도 빠짐없이 웬만하면 1년 366일을 나간다는 얘기다. 머리로는 나가지 말자 하루 쉬자 하면서도 막상 운동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은 자동적으로 반응해 늘 장비를 챙기고 있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때가 40대. 지천명이 된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그렇게 미친 듯이 민턴을 사랑하지 않았어도 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민턴장을 나간다고 실력이 쑥쑥 쌓여 국가대표가 되는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내를 너무 자주 혼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우리는 결국 화해하지 못했고 생활하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쌓인 사소한 불만과 서운함, 단단한 앙금들은 큰 돌덩이가 되어 지금까지  나를 짓누르고 있다.

      

과유불급이라  뭐든 너무 지나치면 좋을 게 없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한치도 어긋나 미 없다.

불혹의 나이였던 그때 민턴보다 아내를 더 사랑해야 했고  라켓을 잡는 시간보다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시간이 더 많았어야 했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거지만 사람이든 일이든 취미 생활이든 꽂혀서 미친 듯이 집착을 하다 보면 앞만 보고 옆을 돌아보지 못하고 크고 작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몰빵이 아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즐기는 게 오랫동안 세상을 잘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임을 요즘 들어 새삼 깨닫는다.  

   

여보 그때는 많이 미안했어당신에게 비싼 지갑을 선물로 줄게 아니라 함께 산책을 다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당신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줬어야 했는데 내가 철이 없었네

     

진심을 담아 늦게나마 아내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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