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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Aug 16. 2022

민턴보다 서울 홍대

피 같은 내 돈 21만 원

  

너네 집은 연신내 난 지금 강남에

시끄런 클럽을 무심코 지나는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노래 - 영탁 -

     

2016년도 서울 마포구 마포구민체육센터에서 중앙부처 공무원 전국 배드민턴대회가 개최되었다. 

군산에서 차 두 대를 렌트해서 대회 하루 전날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마침 숙소가 홍대 근처였다. 


지방 소도시 공직자가 화려한 서울 한복판 홍대에 오니 낯선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가까운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고 대회를 앞두고 있어 술 대신 음료를 간단히 마신 후 시내 구경을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불빛과 수많은 사람들, 밖에서 안이 보이는 투명한 노래방, 새벽까지 시끌벅적한 근린공원의 취객들. 부킹을 하기 위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길게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던 클럽 앞 젊은이들, 마임과 마술공연, 버스킹 하는 인디 밴드까지 젊음의 거리 특유의 에너지가 넘쳐났고 다양한 볼거리가 풍성했다.   

  

다음날 친절한 집주인이 준비해 놓은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전 9시 경기를 위해 마포 구장으로 출발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전국의 공직자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전년도 우승팀 일반 경찰청. 소방, 국세청, 산림청, 청와대 경호팀, 교육청.... 

     

대회를 나가면 긴장을 많이 하는 잘생긴 인성이와 파트너가 되었다. 묘하게 첫 게임부터 잘 풀리지 않았다. 가운데 코스로 오는 콕을 한 사람이 양보를 했어야 했는데 두 사람이 모션이 겹치면서 칼싸움이 난 것이다. 인성이 라켓이 쩍 소리가 나면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예선 첫 경기부터 뭔가 불길했다. 좋아하는 동생의 주력 라켓을 박살 냈다는 미안함에 게임에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심적으로 주눅이 들어 그날 결국 우리는 예선 탈락을 했다.      

역시 시골 촌놈에게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경기와는 우승의 인연이 없구먼 의기소침하게 나 자신을 위로했다. 


살다 보면 소중한 사람과 아끼는 물건은 함부로 마음 편히 대하고 사용하지 못할 때가 있는 데 그날 우리들의 마음이 그랬다. 

자고로 사람은 만났을 때 마음이 편해야 하고 물건은 손에 익숙한 게 최고라는 것을 그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후 2시쯤 대회 중에 호흡곤란으로 갑자기 쓰러진 참가자가 있어 동료 수찬이가 인공호흡까지 실시해 응급처치를 하고 나자 119가 이송해 갔다. 예기치 못한 돌발적인 상황에서 침착하게 생명을 구한 수찬이가 멋있었다. 심폐소생술이 많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라 특수직 공무원의 직업을 빛내 주었다.  

    

네 팀이 출전했던 그날 우리들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동료들과 조금 더 끈끈해졌고 큰 대회를 나가 떨지 않는 맷집을 기르고 씩씩하게 군산으로 돌아왔다.  

    

아끼는 아우의 비싼 라켓을 박살내서 이걸 사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며칠 동안 고민했다. 21만 원을 쉽게 지출하기는 솔직히 고민이 되었다.  큰 마음먹고 인터넷에서 주문을 해 선물로 주었다.      

그 당시 제법 큰 금액을 지출했지만 나의 넓은 마음 덕분인지 돈의 위력(?) 때문인지 인성이는 변함없이 내 곁에서 언제나 친근하고 든든한 동생이 되어 주고 있다.   

   

마흔여섯 살에 처음 가본 홍대 거리. 다소 정신없고 시끄러웠지만 젊은이 특유의 색깔 있는 에너지가 넘쳐 좋았다.  

젊음과 자유가 넘쳐나는 그 거리를 아들, 딸에게 성인이 되거든 꼭 가서 즐겨보라고 홍보해 주었다.       

살아가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까          

 지천명이 넘은 나이, 아름답거나 잘생기거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 끌리기보다는 만났을 때 편안한 사람

내가 힘들 때 즐거울 때도 나의 자발없음에 그저 옆에서 묵묵히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으며 잔잔한 시선으로 나를 지켜 봐주는 그런 사람이 좋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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