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량체질 18화

아마 정말 다른 세상/쏘공원Parc de Sceaux

순간의 모음

by 알담

아름다운 숲이 있다.


공원이란 이름이 붙어있지만, 일단은 나도 공원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숲이라고 믿는다. 공원만의 다듬어진 평화로움을 누구보다 아끼는 나의 공원의 세계에서는 이만큼이나 다채로운 면면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공원 근처에서 사는 건 언제나 로망이었다. 로망이라고 해봤자 틈내서 가볍게 산책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었다. 이 거대한 공원이 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 역이름 마저도 공원 이름인 동네에 짐을 처음 풀었을 때도, 집주인이 이 공원을 보고 이사를 결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저 가까운 거리에 공원이 있다니 종종 기분전환하기 좋겠다는 가벼운 감상뿐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설계한 건축가가 이 공원을 만들었다네요, 덧붙인 집주인의 말에는 사실 감흥이 없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숨막힐듯 완벽하게 잘 짜여진 구조는 취향이 아니었다.


처음 그 숲에 갔을 때는 헷갈렸던 것 같다. 이거 공원 맞아? 이렇게 광활하고 웅장하고 거대한 이곳을 여기 사람들은 공원이라고 부르나보지? 내가 아는 공원은 적당한 공터가 있고, 벤치가 있고, 가로등이 있고, 다듬어진 풀이며 나무며 꽃 따위가 지루하지 않게 사방에 심겨 있고 공원마다의 투자금에 따라 존재가 결정되는 호수 정도 옵션으로 꼽아볼 수 있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 푸른 공간이었는데. 여기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나무가 거의 같은 모양새로 일렬로 늘어져 있고, 장난감 같아서 더욱 비현실적인 성이 있고, 가로지르는 다리가 없어서 반대편으로 가려면 요행없이 무조건 크게 한바퀴를 돌아야 하며 죽 따라 걷다보면 바다로 가는 운하는 아닐까 착각하게 되는 십자모양 호수가 있고, 산책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가로로 길게 늘어진 덩굴과 어두운 나무그늘이 대부분인,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있었다.


어차피 이 동네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런 숲을 곁에만 놓아두는 것은 낭비라고 판단했다. 나는 평생 관심도 없던 조깅을 하기로 다짐했다. 초심자가 그렇듯 요란하게 준비를 했다. 운동화를 미리 꺼내두고, 팔에 휴대폰을 고정해주는 운동용 밴드도 샀다. 얼마나 꾸준히 할 지 감히 계획도 세우지 못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라도 되는 양 머리를 질끈 묶고 집을 나섰다. 줄이어폰이 달랑거리도록 달리는 나날은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다. 무슨 노래를 들었더라.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아 적당히 흔들리는 시야를 가득 채우는 뭉그러진 초록색만이 어렴풋이 남았다. 그 숲은 뛰러 오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입자가 굵고 적빛의 배양토같은 것들로 숲의 전경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조깅로를 적당히 만들어 두었는데, 그 흙을 운동화로 밟았을 때 뒷꿈치부터 묘하게 느껴지던 푹신함도 꽤나 선명하다. 가끔 기분이 나서 숨이 차도록 몇분간 그 숲길을 달릴 때면 축축한 나뭇잎 사이 공기, 흔들리는 녹색 스펙트럼, 가빠진 숨과 사이사이 들어오는 햇빛을 피부에 새겨놓으며 이 순간을 언젠가는 꼭 글자로 남겨두겠다고 조깅을 시작할 때보다 단단하게 스스로와 다짐했던 기억도.


그 숲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지만 십자모양 호수를 빙 둘러싼 커다란 나무는 유독 마음이 갔다. 여름엔 살을 부풀리는 것 마냥 새파란 나뭇잎이 가지를 넘실거렸다. 하늘이 푸르른 날엔 나뭇잎 사이로 물고기라도 보일 것 같았다. 창살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나무는 다듬어졌다기엔 자유로웠고 마음대로 자랐다기엔 이질적으로 동일한 모양새였다. 어찌나 큰 나무인지 바람이라도 불면 나뭇잎 소리가 우수수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 음악소리를 낮췄다. 나무의 키를 다 담지 못해서 나무가 비춰지는 못의 가운데 부분은 나무들이 하나로 뭉쳐져 물결에 흐려졌다. 그 대칭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뛰어들면 거꾸로 된 세상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숲으로 가는 여러 입구 중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입구는 뒷길 자그만 통로였다. 가깝지 않아도 일부러 찾아갔을 만큼 그 길은 아름다웠다. 두명 이상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길은 하늘이 보였나 기억이 안날 정도로 식물로 뒤덮여 있었다. 길의 끝에는 양이며 염소가 모여 있었고, 날이 좋을 때면 삼삼오오 모여 공놀이를 할 만큼 커다란 잔디밭과 공터를 둘러싼 조깅로 등이 벌판처럼 펼쳐졌다. 나는 그 작은 입구가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라도 된 마냥 종종 쓸모없는 상황극을 하곤 했다. 그 입구로 숲이 더 완벽하다고 굳게 믿었다.


한번은 숲에서 공상을 하다가 폐장시간(어쨌든 그곳은 공원이었다.)이 되었다는 직원들의 호루라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집과 가까운 입구는 작은 곳이었기에 일찍이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숲은 정말로 커서 마지막 순찰을 도는 직원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해가 지니 빠르게 어두워지는 나무 사이에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간간히 보였던 사람 형체도 없어지자 무서워진 나는 중앙 공터로 숨차게 달렸다. 그곳은 이렇다 할 가로등도 없었다. 여느 숲이 그렇듯 밤에는 추워질 텐데 하룻밤 여기 갇히게 된다면 어디에서 잠을 자야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하룻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 발견해주길 바라면서도 반대편에선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정말로 어딘가로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놀라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아주 철없는 생각들. 그리고 나는 그 철없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겁쟁이라서, 결국 가장 큰 입구의 마지막 자물쇠를 잠그는 직원들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 사과와 감사인사를 섞어 하면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큰 벚꽃축제가 열린 날 숲에 갔다. 평소처럼 넋을 놓고 산책하기에는 온갖 방문객들로 시끄러웠다. 자리잡고 책이라도 읽으려고 내내 뒤에 메던 가방을 잔디밭에 내려놓았을 때, 가방은 찢어져 있었고 하필 맨 위에 올려둔 지갑이 사라져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당장의 눈물은 참았지만 결국 작은 입구에 가까워질 즈음 나는 울었다.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거야, 하고 믿기에 숲은 너무 컸고 사람들은 많았으며 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터였다. 나무들과 어우러지기엔 이질적인 파란색 지갑이었는데도 나는 땅을 보며 훌쩍거렸다. 혹시나 어딘가에 지갑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입구를 빠져 나오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져서 나는 울음을 그치고 카드회사에 전화를 걸어 카드를 정지해달라고 더듬더듬 말했다. 그래도 왜 그때 숲에 갔을까 하는 자책은 끝끝내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숲에서 산책을 하다가 기이한 경험을 했다.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후 네시쯤의 누운 햇빛이었다. 덩굴벽 나뭇잎 사이로 빛 몇줄기가 새어 나왔는데, 평소의 햇빛과는 다르게 그 부분만 유독 빛났다. 거대한 가로수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서 올려다 보면 하늘이 선으로 보이는 울창한 산책길이었다. 한낮에도 색이 짙은 그곳에서 빛이 하얗게 비추다니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한다지만 이번에야 말로 이세계로 통하는 길 아닌가 하는 웃긴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을 때, 아주 오래 이 순간을 기억하겠다는 확신이 왔다. 평화롭고 시간이 멈춘 고요 속에서 공간을 가득 채운 빛 속을 먼지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분명 여기는 바깥인데 누군가 오래 사용하지 않은 방에 들어온 것처럼, 꽃가루라기엔 작은 입자들이 둥둥 흐르고 있었다. 빛이 워낙 밝아서 스포트라이트 같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사진이라도 찍자 싶었지만 역시나 담기지 않았다. 한낮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그 길을 눈으로 좇으며 헤아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 방문을 닫고 나오기가 얼마나 아쉬웠던지. 밖을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그 숲을 자주 갔다. 최선을 다해서 자주 찾았다. 그 큰 숲속에서 나는 때마다 길을 잃었다. 혹은 새로운 곳을 발견했다. 돌이켜 보면 대륙만한 땅덩어리도 아닌데 왜 그렇게 헤맸을까? 왜 잠깐 옆길로 들면 새로운 공간을 발견했을까?


이사를 가고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숲에 가지 않았다. 역시 가까울 때 가길 잘했지. 꽤 여러번 갔으니까 뭐. 후회할까봐 또 합리화를 했다. 그렇지만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는 도저히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어줍잖은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초라한 낭만을 채우기 위해 시간을 비워 숲을 찾았다. 어쩐지 그새 멀어진 느낌이었다. 찬찬히 돌아보기에 숲은 차갑고 쓸쓸했다. 겨울이 되기 전에 한 번 더 와볼 걸 그랬나. 그래도 후회하긴 싫어서 꿋꿋이 한 시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그곳의 모든 것이 좋았다. 사계절의 숲을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좋아서 견딜 수 없을까봐 적당히 사랑했다. 그래도 마음을 숨길 수는 없어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 숲으로 불렀다. 내가 발견한 숲의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내 소유라도 되는 양 떠들고 다녔다. 혼자서 그곳의 기억들을 간직하면 언젠가는 바스라져 흐려질까봐 나는 내 사람들도 이 기억을 함께 나누었으면 했다. 그래도 사실은, 혼자 그 숲을 찾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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