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본질
명동에서 외국인을 타깃으로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를 지나친 적이 있다. 글자만 알파벳이지 한국어를 소리나는 대로 옮겨놓은 메뉴판, 예상은 가지만 전혀 기대되지 않는 온갖 맛을 섞은 음료들, 무엇보다 터무니없는 가격. 외국인 관광객이 안타까울 정도로 상술로 도배된 화려한 가게들. 저걸 왜 사먹지? 돈 주고 저런 걸 사먹다니 돈이 아깝다. 나는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거나 그 카페에 들를 손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바깥에 서서 오만하게 바라보곤 했다.
진부한 깨달음이지만 여행을 다녀보고서야, 외국에 살아보고서야 피부로 알았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환경은 어색하고, 신선하며, 미지의 세계라는 것을. 그리하여 다르게 생긴 보도블럭을 신기해 하고, 어색한 지하철 노선도를 한참 쳐다보며, 길거리의 우체통에도 낭만을 느낀다는 것을. 그렇게 조금씩 그곳에 녹아들다가 결국은 그 모든 작은 것들을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는 것을. 심지어는 그것들을 새로워하는 다른 사람들을 촌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만하게 품평하며 저울질할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떤 노련한 여행자도 새롭게 발을 디디는 여행지에서는 조심스럽고 천진하다. 내가 보고 겪는 경험이 일반적인 평균선에 머물러 있는지 인형뽑기같은 확률로 건져낸 적당히 드문 행운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여행 속에 파묻혀 있으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말을 걸어도 될까?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을까? 이 정도의 가격이면 합리적인 걸까? 원래 이런 맛인가? 어느 정도까지 들어가야 하는 걸까? 안내자의 말은, 안내문의 글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이건 일반적인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이걸 물어봐도 될까? 원주민이 아닌 여행자의 끊임없을 자문은 어린아이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익숙한 곳을 자의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말 한마디 통하지 않을 곳에서 잘 곳을 찾고,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음식을 고르고, 지도에 눈을 고정시키며 낯선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즐거움과 확실하지 않을 깨달음을 얻으려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어떤 확률의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행위. 삶에서 겪어본 적 없는 자극은 아주 자그마한 것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지폐보다 동전을 많이 쓰고, 편지봉투의 색이 다르고, 공공장소에서 코를 푸는 행위가 민폐가 아닌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다. 다시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세상을 본다. 이곳 사람들은 왜 차보다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지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길을 걷는데 창살에 햇빛이 내려앉은 집이 괜히 예쁘다. 여기는 머리에 스카프를 많이 쓰고 다니는 것 같다.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많다.
다 큰 어른이 어린애처럼 걸음마다 두리번거리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우습기만 하다. 별것도 아닌데 고작 그런 것 가지고 신기해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자신의 일상이 타인에겐 모험이 되는 모습이 아니꼬운 사람의 속내는 무엇일까. 지겨운 하루가 놀라운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일까, 누군가의 황홀한 경험이 사실은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지루하다고 마치 시간을 거스른 사람처럼 일침을 놓고 싶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타인의 즐거움을 비웃고 싶은 비뚤어진 마음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