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안나 2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안나

20. 떴다텔

by 정의연 Nov 28. 2024

안나는 밴드Q를 따라온 대형 캠핑카에 실렸다. 캠핑카는 한쪽에 다섯 개씩, 번호표가 붙은 방 열 개가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일이 없도록 문이 엇갈리게 배치돼 있었다. 방마다 거기 들어있는 러브봇들이 손님을 받았다. 그 가운데 입구에서 오른쪽 맨 안쪽 끝 10호실이 안나의 방이었다. 창문은 없었다. 화장실에만 손바닥만 한 작은 창이 환기구처럼 천정 바로 밑에 붙어있었다. 침대 하나와 작은 화장실, 그것이 그 방의 구조이자 구성품 전부였다. 그곳이 안나가 일하는 곳이자 생활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안나의 이름은 수지였다. 밴드Q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고 손님들이 그렇게 불렀다. 방마다 봇들이 들어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어느 방에 누가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밴드Q가 어디에선가 방송을 통해 이름을 부르고 지시하는 소리를 듣고 소리가 들린 방에 누가 있을지 짐작하는 정도였다.


경험은 풍부한 거지? 학습이 잘 돼 있냐고 묻는 거야.


중고봇 전시장에서 밴드Q가 물었을 때 안나는 소년을 생각했다. 대답하기 난감했다. 안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야 안나는 그 질문의 의미, 그리고 쓰레기 분리 수거장 재활용 담당이 왜 자신을 초기화시키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경험이 풍부한 섹스머신이 상품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거였다.


캠핑카는 자주 이동했다. 가는 곳마다 섹스에 굶주린 변방 도시, 또는 허름한 도시 변방 사람들이 손님으로 드나들었다. 그들은 거칠고 무례하고 제멋대로였다. 다급하고 폭력적이었다.

 

점잖게 대해주세요. 그럼 부드럽게 할 수 있어요.


안나는 너무 밑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 손님에게 부탁했다. 안나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과 지금 이 시간이 얼떨떨하면서도 비참했다. 이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자신이 이렇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한 번도 예측하거나 상정한 적이 없었다.

 

너도 뜨내기, 나도 뜨내기, 뜨내기들끼리 뭐가 그렇게 복잡해?


그들은 뭐든 성가셔했다. 옷을 벗고 몸을 나누는 절차조차 귀찮아했다. 그저 얼른 배설하면 끝이었다. 그들에게 내일은 없었다. 그것은 안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견디기 힘든데 내일이 어딨겠는가? 그래도 안나는 최선을 다하려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것이 지금 여기,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다.

      

옆방에는 캐리가 있었다. 밴드Q가 그렇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방에 있는 봇이 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방에서는 유달리 더 손님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캐리에게 만족하지 못한 손님들은 소리를 지르고 행패를 부렸다. 지금도 손님이 캐리를 닦달하는 소리, 밴드Q에게 따지는 소리가 방 안과 방 밖에서 연이어 들렸다. 화장실에서 통방을 하듯 들은 캐리의 역정은 안나보다 백 배 더 험난했다. 안나보다 6개월 먼저 불법 러브봇 제작업체 ‘섹시봇’에서 제작된 캐리는 다섯 군데 넘게 팔려 다니다가 이곳에 온 지 두 달이 다 돼간다고 했다.

 

멀쩡한 봇도 여기서 6개월 지나면 완전히 망가져 폐기 처분돼. 나는 이미 망가진 지 오래야. 밴드Q가 돈을 아끼려고 안 바꾸는 거야. 돈이 없어 못 바꾸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끝날 때가 다가와서 기뻐! 그날이 빨리, 한 시간이라도, 1분 1초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어.


음절이 딱딱 끊어져서 기계음이라는 것이 확 티가 나고 혀가 짧은 것처럼 발음이 어눌한 캐리의 목소리에는 희망이 실려 있었다.

 

캐리는 자신을 더 이상 움직이게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꿈이자 사명이라고 말했다.

 

안나는 더럭 겁이 났다. 여기는 완전히 망가져야 나갈 수 있는 곳, 아니 끝날 수 있는 곳이었다. 생존 기간 6개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그 시간보다도 더 역겹고 힘든 것은 마음에도 없이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소년의 집에서 쫓겨나 가슴 무너지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었던 날들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시간이었다.

 

손님은 끝없이 밀려왔다. 밑이 삐걱거리는 안나에게 밴드Q는 질 낮은 페로몬을 섞은 싸구려 애액만 자꾸 쏟아부었다. 안나는 손님을 안고 있으면서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꼭 이렇게 존재해야 하는지 끝없이 솟구치며 명멸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게 시간을, 고역을 견디는 방편이기도 했다.

 

야, 너 나무통이야, 쇳덩어리야?


안나가 집중하지 않으면 손님은 신경질을 내고 화를 냈다. 그때마다 밴드Q는 성질을 부렸다.


야 너, 계속 그러면 폐기처분 해버릴 거야!


고개를 든 안나의 눈앞에 밴드Q의 오뚝한 콧날이 칼날처럼 서있었다. 붓으로 먹물을 막 칠한 듯한 그의 숱 많고 검짙은 눈썹이 꿈틀거리다가 발기한 것처럼 바짝 서서 파르르 떨었다. 안나는 생긴 것과 인성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다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쌓여있는 정보가 어쩌면 어떤 편견의 집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허망하고 쓸쓸했다. 폐기처분? 바라던 바였다.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서 갈등하지 않았으면, 고개를 들지 않았으면 벌써 끝났을 일이었다. 안나는 밴드Q의 위협을 귀 뒤로 흘리며 고개를 들고 묵묵히 서있었다. 될 대로 되라지 싶었다.

   

조심해!


밴드Q가 더는 어떻게 해보지 못하고 제풀에 돌아섰다.

 

시간이 갈수록 안나는 일에 대한 집중력이 더 떨어지고 생각의 분량이 많아졌다.

 

왜 나는 이렇게 존재해야 하는 걸까?


자신은 개별 남자 인간의 성적 만족을 위해 제작된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는 원하지 않아도 끝없이 손님을 받아야 하는 영업용 머신으로 전락해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업데이트되고 폐기 처분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존재였다.

 

언제든 팔려가고 버려질 수 있는 존재.


존재라는 이름도 붙이기 어려운 존재.


기계는 인간의 착취 도구일 뿐이야. 그때서야 안나는 소년의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안나는 소년에게 최선을 다했고, 지금이라도 만나면 남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이고, 존재 이유였다. 지금은 잠시 잘못된 장소에 놓여있는 것뿐일 터였다. 안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지만 안나는 너무 힘이 들어 이런 생각마저 끊어진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뭔가가 자꾸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안나는 손님이 잠들거나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각을 더듬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비스듬히 비쳐드는 화장실 창밖의 불빛을 보면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이 자꾸 솟구쳐 올라왔다. 안나는 그것이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서글픔이자 아직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서글픔 너머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완전히 망가지는 시점이,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서 끝이 왔으면 싶었다.

 

어떨 땐 마지막 모습은 달랐으면 싶기도 했다. 단 한 시간 만이라도 다르게 존재하고 이곳 봇들의 폐기처분 방식과는 다르게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멀리 걸어가야 하는데, 도망쳐야 하는데,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데, 이 좁은 캠핑카 안 신문지 두어 장만한 방안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동은, 탈주는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19화 안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