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안나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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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21. 손님들

by 정의연 Dec 03. 2024

캠핑카로 안나를 찾아오는 사내들은 흐물흐물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행위를 하다가 발기가 풀어져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멈추는 청년도 있었다. 청년은 침대에 엎드려 흐느꼈다. 자신의 잘못 같아 안나는 청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이 아는 방법을 다 썼다. 소년을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청년은 끝내 일어서지 않았다. 

 

어떤 청년은 행위는 하지 않고 신음소리만 들려달라고 했다. 안나는 요구대로 했다. 손님이 그렇게 하는 데는 다 까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행위를 하지 않고 소리만 내는 것은 입력돼 있던 것도 아니고 학습한 바도 없어 몇 배 더 힘들었다. 안나는 그 청년에게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의 용도라고 생각했다.

 

채찍을 들고 오는 손님도 있었다. 짧고도 굵은 검은 머리칼이 뻣뻣하게 서있는, 머리통이 솔처럼 생긴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가 자신의 다 벗은 맨살을 때려달라고 할 때마다 안나는 괴로웠다. 안나는 이 세상에 병든 사람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아프고 병든 사람이 많이 찾아와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캠핑카는 느리게 가는 일종의 앰뷸런스이자 떴다케어룸이거나 뜨내기들의 위안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동작이 자신에게 익숙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용도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저항감이 안나를 지배했다. 그 인식의 크기만큼 그 행위가 안나는 고통스러웠다. 어느 순간 자신이 모르는 어떤 감정이 불쑥 치솟아 채찍으로 손님을 죽이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거꾸로 손님이 채찍을 들면 바로 밴드Q가 들어와 손님을 쫓아냈다. 밴드Q가 화면을 통해 안나의 방을 엿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얼마짜린데, 얘 상하면 당신이 물어낼 거야? 우리 집에서 젤 비싼 애라고!


돈에 환장한 밴드Q가 무의식적으로, 또는 손해배상을 염두에 두고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부끄러움도 없이 소리친 것인지 모르지만 안나는 그 말이 너무나 모욕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휘와 문장 곳곳 차별이 내면화 된 계급적인  말이었다. 이곳에서 봇들의 가치는 돈으로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돈이 판단 기준이자 위계라는 뜻이었다. 언뜻 이해가 안 됐지만 안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나 싶었다. 그러기에 자신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안나가 발돋움을 해 화장실 창밖을 자주 내다보는 것을 보고 밴드Q는 손바닥만 한 화장실 창문을 짙은 감색 틴팅 필름으로 가려버렸다. 그래도 틴팅 필름과 창틀 사이에는 실 가닥 같은 틈새가 있어 바깥이 가로나 세로로 잘려서 가느다랗게 보였다. 차가 이동할 때 그걸 이으면 풍경이 되었다. 그 풍경은 이동 거리에 비례해 바뀌었다. 빌딩 숲이 보이기도 하고 강물이 보이기도 했다. 낮은 주택가 담이 이어지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가 끝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공장지대와 오래된 연립주택단지가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차가 허름한 오피스텔 뒤에 섰다. 안나는 그 오래된 오피스텔을 보는 순간, 다시 소년을 떠올렸다.

 

곁에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풋풋했다. 함께 나누고 즐겁게 깔깔거렸다. 소년의 엄마가 와서 소년을 내쫓았다. 그리고 안나 자신은 여기까지 왔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안타깝고 애틋한 감정이 안나의 가슴속에서 뭉클 피어올랐다. 지금 소년을 만난다면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나는 그 풍경들,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 온 그 풍경들을 무시로 떠올리며 손님을 받았다. 이동하지 않는 시간은 언제나 손님을 받아야 했다. 어떤 순간에는 단 1초도 더 버티기 힘든 때도 있었다. 안나는 쉬고 싶었다. 그만 멈추고 싶었다. 안나는 충전용 전원케이블의 플러그를 뽑았다. 밴드Q가 바로 들어와 안나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때리고 전기 콘센트에 플러그를 다시 꽂았다.

 

이것이…, 손님들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검짙은 눈썹이 다시 습관처럼 파르르 떨었다. 안나는 아무래도 그 눈썹이 그의 성기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화가 나서 제멋대로 날뛰는. 안나는 멈춘 차 바깥을 온전히 볼 수 없었다. 화장실 손바닥만 한 창을 막은 틴팅 필름과 창틀 사이 실금 같은 틈으로는 멈춘 풍경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안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든 말든 그건 당신의 문제일지 몰라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어깃장을 놓고 싶었다.


니가 여기 존재하는 1분 1초가 다 돈이라고! 니가 쉬면 내 돈이 날아가는 거라고!


혓바닥에 때 묻은 종이돈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 같은 그의 성난 말을 듣지 않아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 아니었다. 손님이 줄 서 있다는 것은 휴식권도 파업권도 없는 안나에게는 끝없이 잔업과 철야, 추가 노동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 날은 안나에게 하루가 천 시간, 만 시간으로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그 시간을 견디려면 안나의 몸이 다른 곳으로 가 있어야 했다. 안나는 속으로 소설을 쓰고 영화를 찍으며 견뎠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풍경들, 좋은 감촉들을 닳도록 되새김하며 시간을 지웠다. 몸은 프로그래밍된 절차에 따라 자세를 잡고 다리를 벌리고 손님의 요구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손님들과 교감이 되지 않고 삐걱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민한 손님들을 만나면 혼찌검을 당하고 한바탕 굿을 치러야 했다.

      

캠핑카는 다시 이동해 도시 변두리에 섰다. 바깥공기를 맡을 수 없는 안나는 이 변두리에서 시큼한 냄새가 몰려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미리 입력된 내용이었다. 편견일지 모를 그 내용들이 때로 판단이 되고 고통이 됐다. 안나는 자신의 머리가 쓸데없이 너무 커져 버린 것 같았다.

      


한 노인이 왔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주름진 피부는 얼룩 하나 없이 뽀옜다. 근육이 빠져나가 몸이 가느다랬지만 곱게 늙은 사람 같았다. 그는 안나가 옷을 벗으려 하자 그만두라고, 입고 있으라고 말렸다. 그는 자신도 벗지 않았다.

 

여든여덟 살, 그는 10년 전에 아내가 죽어 혼자 산다고 했다.

 

그냥 얘기하고 싶어 멀리서 온 거야. 이 캠핑카가 여기 있다고 앱에 떠서. 할 수 있지?


안나는 노인의 흐릿한 갈색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긴 말을 하지 않은 지가 오래돼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노인도 너무 오랜만에 입을 떼는 것이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인은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안나와 나란히 앉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빡빡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 이야기, 아내와의 결혼생활, 자식들 이야기, 통일부 공무원으로 남북협상팀을 지원하는 일을 맡아 북에 다녀온 이야기, 고생했던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 아내 몰래 만났던 여자 이야기, 몇 년 전 수십 년 동안 연락이 없던 그 여자가 그의 번호로 전화해 암 수술 끝에 예후가 안 좋아 작별인사를 하는 거라고, 힘든 시절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 일들이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했고, 어쩌면 가치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조금은 자신 없게 말했다. 노인은 자신에게 배당된 시간이 지나면 핸드폰으로 돈을 더 지불하고 시간을 연장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안나의 귀에 자서전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나는 노인의 외로움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파장처럼 자신의 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노인의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렇게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어. 내후년이면 고독사 위험이 있다고 국가에서 강제로 요양원에 보낼 텐데, 가고 싶지 않아. 이쯤에서 마감하고 싶어. 그런데 용기가 없어. 여태까진 내가 크게 아프지 않아 요양보호사의 방문 돌봄을 받고 요양원행을 면했는데 내후년이면 아프지 않아도 나이 제한에 걸려 꼼짝없이 가야 할 판이야.

 

노인이 갑자기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 시절을 이야기할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자식들은요?


하나는 먼저 죽고, 하나는 아프리카에 있어. 여행사업을 한다는데 연락이 잘 안 돼. 자식들이 책임지고 돌본다는 보증을 해줘야 요양원행을 면할 수 있는데 틀린 거지.


내가 해드리면 좋을 텐데….


나도 금방 그 생각했는데….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너를 사서 빼낼 수도 있고…. 아쉽게도 가정집 임종 봇 케어는 인정하지 않아. 살인위험이 있다고. 병원에서는 봇들이 다 케어하고 임종을 지키고 있는데…. 가정 임종 봇 케어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긴 하지만 논의도 안 되고 있어. 내가 죽기 전엔 힘들 것 같아.

  

노인은 안나의 손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안나는 노인의 손을 만져주고 또 만져줬다. 그러느라 노인은 시간을 또 연장했다. 노인의 눈에서 진물 같은 눈물이 흘렀다. 안나는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보고도 자신의 누선이 자극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안나는 자신의 감정에서 슬픔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두려웠다. 그야말로 딱딱하고 차가운 기계성만 남게 된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옆방에서 손님이 소리를 지르며 캐리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이 서둘러 일어났다. 캐리를 폭행하는 소리는 계속되고, 캐리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돈을 받은 죄가 있어 밴드Q도 모른 체하고 있었다. 캐리에게 손님들의 폭행이 이어질 때마다 안나는 자신의 몸에서 칼끝 같은 소름이 돋는 느낌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그때마다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안나는 자신이 이 주먹을, 이 팔을 쓰게 되지 않을까 더럭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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