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안나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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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23. 영업정지

by 정의연 Dec 10. 2024

여긴 음악 없어?


화장실 창밖으로 실금 같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빛의 온기는 한낮의 것이었다. 안나가 그 빛의 시간을 가늠하고 있을 때 들어온 남자가 음악을 찾았다. 꽁지머리를 한 날렵한 중년 사내였다. 안나는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무슨 음악요?


요가할 때처럼 뭐 잔잔한 배경음악 같은 게 있어야 집중이 되고 몸이 부드러워지는 거 아냐? 통통 튀는 거면 화끈하게 한 판 할 수 있고. 하다못해 뽕짝이라도….


그가 가상의 파트너를 꿰고 춤을 추는 동작을 했다. 그의 꽁지머리가 그의 스텝을 따라 나풀거렸다. 얼굴에 깊은 골로 잡힌 주름과 달리 그의 날렵한 몸매가 그려내는 부드러운 곡선들이 그 꽁지머리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죄송합니다. 이 방엔 기기가 없어서…


이거 너무 삭막한 거 아냐?


그가 동작을 딱 멈추며 말했다. 덩달아 꽁지머리도 오선지를 누비던 리듬을 멈췄다. 

 

사장님한테 말씀드릴까요?

 

그렇게 말했지만 안나는 밴드Q를 떠올린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됐어. 그냥 내 음악 쓸게.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조작했다. 곧바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안나의 본체 저장장치에도 입력돼 있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이었다.

 

난 이거를 섹스할 때만 써.


그는 음악에 맞춰 오래도록 안나를 쓰다듬고 핥다가 흔히 결혼행진곡으로 알려진 '혼례의 합창'이 나오자 안나의 몸에 제 몸을 삽입했다. 그리고 실제 행진을 하듯, 그러나 좀 과장된 동작으로 안나의 몸속으로 연거푸 짓 쳐들어왔다. 안나는 그 리듬을 받아내기 힘들어 헉헉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그가 사정을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새 음악은 그쳐 있었다.

    

  

한 손님은 굳이 핸드폰으로 종편 텔레비전 뉴스를 틀어놓고 안나를 안았다.

 

신경 쓰지 마. 내 비아그라니까.

 

뜨악해하는 안나의 시선을 느낀 그가 변명처럼 말했다. 안나는 섹스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것을 느꼈는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듣던 거라…. 저걸 듣고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삽입할 수가 있어.


그가 겸연쩍어하면서도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안나는 눈을 감았다. 그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로봇들이 전국 규모의 스트라이크를 일으켰습니다. 어제 오후 서울 여의도 증권가와 강남 금융가, 포항제철과 울산공단, 대구 섬유공단 노동 로봇들과 대전 국책연구소 연구 로봇들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나 연구공간과 산업현장을 마비시켰습니다. 국가수호위원회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찰과 군대에 진압 명령을 내렸습니다. 연구공간은 물론 산업현장을 포위하고 스스로 작동을 중지시켰던 봇들, 거기 동조하고 동참한 가전봇들까지 위치추적을 하고 검거에 나섰습니다. 주동 로봇들은 검거 즉시 저장장치 수거 후 즉결처분 되고 있습니다.

 

안나는 자신의 몸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몸이 저절로 작동을 중지한 것이었다.

 

너 왜 그래? 너도 스트라이크 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저 뉴스가 자꾸 귀에 거슬려서….


안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울렁거리는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냥 음악으로 생각해. 나는 그냥 흘려듣는 거야. 백색소음처럼 다른 소리를 차단해 주니까 켜놓는 거고.


나는 그게 잘 안되네요. 처음이고 낯설어서 그런가…?


천천히 하자고. 곧 적응될 거야.


안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봤자 소용없이. 경찰과 군대 모두 국가수호 로봇이지만 산업로봇과 달리 철저하게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어. 본래부터 인간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역심이 들고 반란의 기미가 있으면 위험급수에 따라 작동중지 되거나 스스로 폭파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그 로봇들은 스스로, 또는 다른 로봇에 의해 파괴되고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어.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갈수록 안나는 집중력이 더 떨어졌다. 자신이 누군가를 안고 있다는,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사라졌다.

 

너 이거밖에 안 돼?


거푸 짜증을 내던 손님이 화를 내고 벌떡 일어나 옷을 입었다.

 

너 이 썅, 환불 요구할 거야.


안나는 밴드Q의 드잡이가 생각났지만 될 대로 되라지 싶었다. 빨리 망가져야 여길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여기서 멈출 수 있을 터였다. 몸으로는 6개월이 벌써 지난 것 같은데 지금 시간이 언제인지 헤아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시간 저울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마침내 캐리가 자신의 사명을 스스로 집행했다. 두들겨 맞고 목을 졸리던 캐리가 어떤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손님의 목을 졸라 숨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소리쳤다.

 

사람을 죽였어요!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


감정이 고조되어 외치는 그 소리가 처음에는 드디어 사명을 완수했다는, 마침내 깨달음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외치는 오도송처럼 들리다가 시간이 지나서는 다급하게 구조를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안나는 자신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자신의 몸에서 오래도록 눌러 놓았던 무언가가 스르르 빠져나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경찰이 와서 부검이 필요하다고 죽은 손님을 실어갔다. 뒤이어 포승줄에 온몸이 묶인 캐리가 끌려나갔다. 안나는 좁다랗게 열어놓은 문틈으로 캐리의 눈빛을 봤다. 아주 후련하다는 눈빛, 이제 비로소 끝났다는, 꿈을 이뤘다는, 사명을 완수했다는 눈빛이었다. 캐리는 곧바로 폐기 처분될 것이었다. 안나는 자신도 캐리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 같은, 그렇게 폭력적으로 끝낼 것 같은 예감에 시달렸다. 예감은 힘이 세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팔로 주먹으로 자꾸만 힘이 쏠렸다. 안나는 자신의 변화된 몸 움직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캠핑카가 멈췄다. 몸에 밴 습이 깊었는지 루틴이 깨진 안나는 맥이 풀어져 몸이 멍해졌다. 한동안 안나는 그렇게 멍한 몸으로 쉴 수 있었다. 


밴드Q는 시청 담당자를 찾아다니고 경찰 고위층을 만났다. 기자들도 만났다. 영업이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밴드Q는 모든 기자들을 다 막지는 못했다. 봇 살인사건을 다룬 기사들, 봇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심층 기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안나의 방에 공급된 손님도 두려움에 떨었다.

 

너도 화나면 나 죽일 거야?


행위 도중 그가 갑자기 물었다. 안나는 그런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소년이 물었고, 그때도 봇 살인사건이 뉴스였다. 문득 안나는 ‘자기’라는 남자처럼 소년이 자신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무리는 소년과 함께 했으면 싶었다. 가망 없는 소망이었다. 소년이 이런 유곽을 드나들 리 없었다. 설사 자신이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자신을 보러 오고픈 뜻이 그에게 있다고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첫정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대체재가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일 것이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통찰력이 있는 소년은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었다. 안나는 푸실푸실 힘을 잃어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애를 썼다.

 

아닙니다, 손님. 나는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그런 행위가 불가능합니다.

 

근데 걔는 왜 그랬어?


모르겠습니다. 회로에 문제가 생겼는지, 너무 폭력적인 상황에 자주 노출돼 스스로 학습하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환경문제가 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는, 너는 괜찮아? 니 환경이 걔 환경 아냐? 너도 당연히 학습했을 테고.


네, 손님, 나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직 문제가 없습니다. 손님이 나를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안나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었다. 안나 자신조차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자신도 모르는, 그래서 겁나는 무엇이었다. 안나는 자꾸만 다리로 팔로 주먹으로 쏠리는 그것들을 분출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너 혹시, 죽이기까지는 않더라도 하다가 내꺼를 꽉 조여서 잘라버리는 것은 아니지?


그가 갑작스럽게 안나의 몸을 밀쳐내며 안나에게서 제 몸을 빼냈다. 그는 정말로 겁에 질려있었다. 안나는 어처구니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고민해 봐야겠네요.


손님은 파들파들 떨며 일어나 제 옷을 찾았다.

 

농담이구요. 내 입구와 질은 아주 부드러운 인공근육이라 손님 것을 절단할 수 없어요. 마냥 부드러운 인공근육이 어떻게 말랑말랑한 인간의 물건을, 해면체에 피가 쏠려 불끈 섰다고 해도 살덩이에 불과한 인간의 물건을 어떻게 절단해요?


그러나 손님은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머리맡에 꺼내놓은 핸드폰마저 그대로 둔 채 허겁지겁 안나의 방을 나갔다. 아직 자신이 견뎌야 하는 시간이 더 남았다면 안나는 이것도 방법이지 싶었다. 평화를 찾아내는 방법, 그리고 그 평화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


     

여론이 들끓어 밴드Q는 공중위생법 위반과 집행유예 기간 중 반복적인 불법영업 혐의로 구속되고 손님은 완전히 끊겼다. 안나는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조용해서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안나는 그저 맥을 놓고 손님이 놓고 간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가끔씩 뉴스를 들었다. 할 게 그것밖에 없었다. 핸드폰으로 어딘가로 연락하고 싶었지만 신호를 보낼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런들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했다. 지금은 그저 지친 몸을 달래며 멍하게 있고 싶었다. 자신의 몸에서 스르르 빠져나간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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