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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안나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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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연 Oct 08. 2024

안나

제1부/5. 이종교배

시간이 지나도 그는 안나의 기능에 맞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가 안나에게 한 행위는 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보겠다는 듯 기다란 몸을 굽혀 제 혀를 안나의 입안에 넣어 본 것과 그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안나의 질 안에 넣어본 것이 전부였다. 안나는 그의 혀가 들어왔을 때 프로그래밍 된 대로 그의 혀를 혀로 감았다. 그는 뱀에라도 감긴 듯이 얼른 제 혀를 빼냈다. 안나는 약간의 모멸감을 느꼈다. 그의 행동은 마치 안나가 추행이라도 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의 손가락이 질 안에 들어왔을 때 안나는 습관처럼 그의 손가락을 조였다 풀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손가락이 잘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른 빼냈다. 그뿐이었다. 그는 안나의 기능을 테스트해 볼 뿐이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왜 나를 사용하지 않나요?


안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혼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점검하고 싶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프로그래밍이 잘못된 건가요?


프로그래밍?


흐흐, 그럴 수도 있지. 잡종들이 많다 보니 그만큼 돌연변이도 많을 테니까.


그럼 돌연변이신가요? 무엇과 무엇의?


그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며 모욕을 당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똑똑한 척하지 마. 그래봤자 너는 인간욕망의 허술한 도구에 불과해. 정교한 도구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아는 대로 말할 뿐이에요.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뿐이구요.


안나는 대화를 더 끌어 그의 생각을 끌어내고 싶었다. 그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이종교배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오, 기계 아가씨!


그는 갑자기 존댓말을 썼다. 그러나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이종교배라뇨?


그는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헤아려도 안나는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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