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갖는다는 것

못하지만 재밌어

by 이작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노래와 율동을 잘해야 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발표도 잘해야 하고, 받아쓰기도 잘해야 하고, 곱하기 나누기도 잘해야 하고, 달리기도 잘해서 운동회에서 1등 도장을 받아야 하고, 글짓기 대회도 나가서 상을 타야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잘해야 하는 것의 분위기가 다르다. 공부를 잘하면 된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다른 거 필요 없다.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오직 잘하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두고 봐! 열심히 해서 더 이상 엄마 아빠 눈치 안 보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 거야” 굳건한 믿음을 갖고 6년을 공부를 잘하기 위해 살았다. 잘하지도 못 하면서 잘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 노력하면 잘할 법도 한데 썩 그렇지도 못 했다. 그럼에도 노력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꽃길만 펼쳐질 것 같은 대학 생활은 모든 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맥주를 원 없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빼면 고등학교 때와 다를 게 없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또 잘해야 한다. 그렇게 취직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취직해서도 일을 잘해야 한다. 끊임없이 잘 해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잘할 수는 없다. 잘할 수 없는데 잘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누구나 잘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든 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잘해서 칭찬받고 싶고, 좋은 직장 다니고 싶고, 승진도 하고 싶다. 그래서 잠 오는 것도 참고, 끼니도 거르고, 아픈 것도 참아가며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마저 없다면 어떻게 버티고 살아갈지 앞이 깜깜하다.


언제나 잘해야 하는 압박에서 나를 내려놓아도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취미생활이다. 많은 책에서 취미생활을 하라고 한다. ‘취미생활? 배부른 소리 한다. 시간이 있어야 취미생활을 하지. 그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생각했었다. 감히 내가 침범할 수 없는 생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플루트라는 악기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 동생분께서 플룻 레슨을 시작했다고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볼 만한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고민이 되었다. ‘시작만 하고 안 하면 어떻게 하지? 플룻 가격도 만만치 않던데.’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옆에서 해보라고 용기를 줬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해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이런 멋진 취미를 갖지 못 했을 것이다.

2019년 3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플룻을 만져봤다. 처음부터 곡을 연주할 마음을 갖고 학원 문을 열었지만 이게 웬일인가. 플룻을 끼우지도 않고 호흡 연습만 한 시간이다. 머리가 핑~ 돌고 쓰러질 것 같다. 엄살이 아니다. 선생님 앞에선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괜히 시작했다고 후회했다. 이 정도면 잘 하는 거라는 선생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불고 또 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 달 만에 악기를 끼웠다. 감격의 눈물이 나는걸 간신히 참았다. 드디어 책을 펴고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몇 개월 후 연주곡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제안! “우리 연말에 연주회 해보시게요.” 선생님의 이 한 마디를 시작으로 맹렬한 연습이 시작되었다. 함께 배우는 분들과 연주회를 계획하고, 곡을 정하고, 추가 연습이 시작되었다. 플루트를 끼운 지 3개월 만에 연주회 연습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영광인 줄 알라고도 했다. 정작 나는 고맙기보다 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시간 여유가 있어도 시작한지 1년도 안 된 내가 연주회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른쪽은 두 번째 연주회 왼쪽은 첫 번째 연주회>


그럼에도 연주회 날짜는 다가왔고 너무 떨려서 청심환을 먹었다. 손이 떨려 연주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함께 연주하는 곡은 내가 조금 틀려도 다른 분들이 너무 잘하시니까 걱정이 안 되었지만 단독 무대가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 내 정신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 어디쯤을 유영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어도 플루트 소리는 나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 정말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언니가 연주회한다고 노란 튤립을 한 아름 사온 동생이 보였다. 아무리 이상한 소리가 나도 이 무대는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주저앉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며 나의 첫무대를 마무리했다. 끝나고 인사를 하는데 눈물을 글썽이는 가족들이 보였다. 도망가지 않길 잘했다. 엄마가 가장 멋졌다는 아이들의 말이, 남편의 토닥임이, 동생의 눈물 가득 고인 눈이 그렇게 내 삶의 이유가 되었다.


온통 잘해야 하는 일 투성이 삶에서 힘을 빼고 즐겁게 놀면 되는 일이 있다. 세상에 어디 그런게 있냐고 물었지만 이제 안다.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취미를 갖는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얼마 만큼의 삶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 동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즐겁게 놀 시간에는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길 것이다. 언젠가 있을 연주회에서는 조금만 틀려야지. 야무진 꿈을 꾸며 호흡 연습부터 기본에 충실한다. 플루트를 끼우는 시간부터 나는 누구 못지않은 연주자가 되어 즐겁게 연주한다. 삶은 즐거워야 하니까.


취미는
영혼의 문학적
양심이다.
-주베르-



*코로나 때문에 레슨을 못 받고 있다가 오늘부터 레슨을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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