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뱅이는 사랑을 싣고

관점을 바꾼다.

by 이작가

퇴근하고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걱정거리들을 한 아름 안고 집을 향하는 어깨는 축 늘어졌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그래서 계속 가도 되는 것인지 생각이 많다. 꺼질듯한 한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언제나 "집에 가고 싶다."를 외치던 나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다.


아이들은 학원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했다고 한다. 태권도를 해서 배가 많이 고프니까 빨리 오라고 성화다. 가야지. 집에 배고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무겁다.


답답한 마음에 오늘은 골뱅이 소면에 맥주나 한 잔 할까? 묻는다. 말이 묻는 거지 먹자는 이야기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남편은 눈치로 상황을 파악한다. 골뱅이 소면이 먹고 싶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남편의 행동에 웃음이 난다. 아이들도 비빔국수를 해준다고 하니 좋아한다. 아니다. 지금 내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남편도 아이들도 안다. 느낌으로 아는 사이. 우리는 가족이니까.


언젠가 아이들과 밥을 먹는데 딸아이가 반찬을 먹다가 바닥에 흘리고는 내 눈치를 슬쩍 보는 것 같아서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핀잔을 줬다. 그랬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엄마니까 눈치를 보지. 엄마 말고 다른 사람 같으면 노빠꾸야. 양현종의 돌직구같이. 가족이니까 서로 신경 쓰는 거야." 언제 이렇게 커서 이런 말을 할 줄 알고 자식 농사는 잘 지었다.


집에 있는 야채를 기분대로 자르고, 국수를 후루룩 삶고, 매콤 달콤 새콤 양념장을 만들고, 골뱅이 국물을 쪼르륵 따르고 큰 양푼에 몽땅 집어넣고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사정없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비벼준다. 무거웠던 어깨는 어디 가고 군침이 돈다. 웃음이 난다.


남편과 내 양념에는 청양고추를 왕창 추가한다. 등골이 오싹하게 매운맛이 추가되면 맥주의 맛이 더욱 짙어진다. 골뱅이 소면은 맥주를 부르고 맥주는 골뱅이 소면을 부른다. 마치 우리 부부처럼 찰떡 궁합이다. 음식을 만들며 침을 꼴깍 삼키는 중 힘든 일을 반쯤 잊었고, 벌컥벌컥 맥주 한 모금에 또 그 반을 잊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이야기하는 남편과의 대화에서 나머지 힘듦이 사라진다.


누구에게나 문제는 있다.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불평하는 대신 다른 뭔가를 하면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휘몰아칠 태풍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태풍보다 더한 허리케인도 막을 수 있다.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으로도, 머리까 깨질 것 같은 고민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골뱅이 소면으로 해결될 줄이야. 닥친 문제를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날에는 골뱅이에 각종 야채를 몽땅 썰어 넣고 신나게 무쳐보자. 어차피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삶은 즐거워야 하니까.



우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 곳에 함정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가벼운 사람으로 만들수도 ,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사실 둘 다 드는 힘을 똑같다.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keyword
이전 17화취미를 갖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