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이 살푼하게 찌든 회사원이 장류진 작가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기 시작한다면, '잘 읽혀서 슬프다'는 한 줄의 서평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정말이지 술술 읽힌다. 그의 글 재간과 더불어 글 속에 내 모습 혹은 내 동료의 모습이 투영된 입체감 넘치는 인물들 덕택일 거다. 어디선가 봄직한, 있음 직한, 겪어 봤음 직한 캐릭터들. 그래서 더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완독 후 장류진 작가가 100% 회사원이거나, 회사원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마이크로한 감정선을 캐치해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 장류진이란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인 나는 초록창에서 그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판교 IT 업계에서 10여 년간 회사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작가였다. 그의 소설을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라고 일컫는 이유도 그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글로 돌아가 볼까. 표제작이자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육교와 연관이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중고거래 마켓인 우동마켓에 계속해서 새 제품을 도배하는 닉네임 '거북이알'과 관련된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거북이알'이 계속 새 제품을 올리는 이유는 바로 월급을 포인트로 받아서였다. 포인트를 현금화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나'와 '거북이알'이 포인트로 받는 월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표지의 육교인데, 그들은 이 웃픈이야기를 저렇게나 아름다운 핑크빛 석양을 바라보면 나눈다. 그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진짜로 웃펐다.
유독 기억에 남는 등장인물을 꼽자면 바로 책의 첫 장 <잘 살겠습니다.> 강렬하게 장식한 '빛나 언니'라고 말할 것이다. 동기인 '나'의 결혼식의 청첩장을 받으며 밥까지 얻어먹고도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축의금을 내지도 않는 언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빛나 언니는 명백한 쌍년이다. 하지만 이후의 서사를 읽고 있노라면 빛나 언니에 대한 가치판단이 조금 혼란해진다. 빛나 언니는 착함과 나쁨, 순수와 멍청 사이를 기민하게 오가는데, 때문에 욕을 하기도 응원을 해주기도 애매해져 버린다. 어쩌면 회사생활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 물론 나를 포함한 - 모두 빛나 언니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보면 착한 것 같기도 한데, 저렇게 보면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그런 것. 모두가 애매하게 착하고 애매하고 못돼먹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회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5,000 (축의금 대신 먹은 밥값) - 13,000 (내가 청첩장 주면서 산 밥값) = 12,000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 원을 내면 만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