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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l 23. 2020

인수인계의 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너무 아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인수 : 별거 안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내가 받자니 빡치는 것

 인계 :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것


누군가가 조직을 떠나게 되어 업무 공백이 생긴다고 쳤을 때 그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1) 후임자를 뽑는다.

2) 남은 사람들이 나눠서 가져간다.


1)의 방식은 너도 나도 우리 모두 평화롭다. 운 좋게도 직전 퇴사를 앞두고는 후임자를 맞이할 수 있었다.


퇴사를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나는 더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인수인계서와 매뉴얼을 던져줌으로써 인계 업무를 시작했다. 업무 숙련도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니, 천천히, 상세하게, 꼼꼼히 알려주었다. 이런 나의 과한 친절함은 실은 퇴사 후에 연락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리 알려줘도 퇴사 후 짧게는 수주, 길게는 수개월까지 연락 오는 게 싫었다. 마치 어제까지 내가 업무를 본 것처럼 '지난 매출자료 어딨어요?'라고 물어본다면 정말 곤란할 것 같았기 때문. 나의 설명력이라는 것을 끌어모아 후임자에게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 후에 연락은 왔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2)의 방식은 때에 따라 큰 분란을 낳기도 하는데, 불운하게도 내가 속한 조직이 그랬다.


황이 나빠지며 동료들의 이직 러시가 이어졌고, 그 빈자리를 회사는 도무지 채워줄 생각이 없었으며, 남은 자들은 인수인계의 난에 시달려야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인수인계계의 명언이다)고, 업무는 듬성듬성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업무 재분장의 대환란이 시작되고야 말았다. 네가 하냐 내가 하냐, 네가 해라 네가 해라 유의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이 나 같은 조직 순응형/순종형 인간이다. 업무분장의 주체인 팀장도 사람인지라 대체로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했다. 목소리가 크고 센 사람에게는 좀처럼 업무가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코스트 담당이던 내가 인사업무 일괄 인수한 적도 있었다. (매우 유감) 그래도 다행이었던  업무분장이 확정되면 다들 잘 배우고 잘 알려주자는 마인드가 있었던 이랄까. 인터넷에 떠도는 낭설, 이를테면 자료를 다 삭제해버리고 퇴사한다든 하는 케이스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으니까.


혹시 오늘 인수인계에 치여 하루가 진이었다면 힘내, 앞으로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길 바랄 뿐이다.


넌 개운하고 난 찝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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