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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l 22. 2020

일할 때야 울지 않으면 다행이고.

ㄴ ㅏ는 ㄱⓡ끔 눈물이 난ㄷr

회사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나 울어봤는가?


나는 가끔 남들 몰래 울었다. 성향 검사의 도드라진 지표가 '비주장성'과 '순종성'인 나는 할 말을 뱉어내기보다는 삼키는 쪽에 가깝다. 어떤 때는 삼킨 말이 감당이 안 되어 기어이 눈물이 터지곤 했다. 딴에 남들 앞에선 울기 싫다는 개똥 같은 자존심에 종종 화장실이나 회의실에 들어가서 혼자 꺽꺽 울곤 했던 기억이 난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나쁜 기억은 잘 까먹는 선택적 긍정성 덕에 지금은 대부분의 눈물의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열이 챘거나, 누군가에게 모함을 당했거나, 억울한 이유로 꾸중을 들었거나 뭐 그런 거겠지.


대체로 다 까먹었다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응어리진 눈물바람이 딱 한번 있다.


이 부서장은 해외대를 졸업한 한 사원을 유난히 예뻐하며 지방대 출신인 나와 은근히 차별하곤 했다. 한 사원의 보고서가 훌륭한 건 해외대를 나와서 그렇다며 추켜세운다든지, 지방대 출신들의 문제점들을 언급한다든지 하는 방식이었다.  사원과 나는 각기 다른 프로젝트에서 똑같은 업무를 수행 중이었기에 비교하기 딱 좋았을(?) 터. 당시 양 프로젝트 사이에는 묘한 알력이 형성되어 있었고, 애석하게도 이 부서장은 내가 속한 프로젝트를 매우 고까워했다. 어떻게든 평가절하하고 싶었을 에게 처진 내 학벌은 물어뜯 좋은 먹잇감이었을 거다.


이미 졸업해버린 학교를 가지고 트집이라니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애초에 데려오질 말던지!) 업무 이해도의 문제라거나 성실성의 문제였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욱이 아이러니컬했던 건 이 부서장이 고졸이란 점이었다. 아주 솔직하게는 '지가 뭔데'라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실력으로 부서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니 인정해주자 싶으면서도 부아가 치밀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지난하게 괴롭혔을 가방끈 잣대를 부하직원에게 굳이 굳이 대물림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자주 그리고 빈번하게 미웠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가던 어느 날, 감정이란 게 폭발해 버렸다. 빈 회의실에 들어가서 혼잣말로 중언부언 쌍욕을 하면서 울었다. 내가 그렇게나 컬러풀하고도 센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약간 놀라기도 하면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신비롭게도 눈물이란 게 자정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민망해질 만큼 울고 나니 '이제 그만 울어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슬쩍 가뿐해졌다. 빨개진 눈과 코를 식히고 짐짓 멀쩡한 척 회의실을 나서던 어색한 발걸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엔 좀 할 말을 했었던가? 사람 바꿔 쓰는 거 아니라고 그렇진 못했고 여전히 그러지 못하다. 그래도 눈물이 터지는 역치는 조금 올라가서 웬만해서 잘 울지 않는다. 점점 강력해지는 건지 무뎌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엄청나게 심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찌질하니 귀엽기도 하고 약간은 부끄러운 흑역사이기도 하다.


ㄴ ㅏ는 ㄱⓡ끔 눈물이 난ㄷr....☆



* 제목은 정소장님의 브런치 글 <그냥 웃어보자>에서 가져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저 문장에 치여서 쓰게 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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