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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l 20. 2020

흔한 직장인의 커피력

 직장인 잡문집

  나는 (한때) 카페인 취약형 인간이었다.


  카페인이 들어간 모든 식음료에 취약했다. 커피는 물론이고 홍차나 녹차에도 심장이 발랑 발랑 나대고 엉덩이가 들썩거릴 만큼. 커피는 늦게까지 놀고 싶은 날 각성하기 위해 마시는 각성용 음료 정도였다. 따라서 대체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마셨다.


  직장인이 된 이후 자주 커피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쩌면 직장인들에게 커피란 일종의 예의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첫인사를 나눌 때, 회의를 할 때, 식후에 약속이나 한 듯 커피를 권했고, 마셨다. 카페인에 약하다는 이유로 매번 다른 음료를 주문하는 것은 사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Non coffee 나 Beverage로 분류된 음료들은 커피 류보다 비싸고, 제조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른 선택으로 주목을 받거나 질문을 받는 건 피하고 싶은 파워 'I'인 나는 결국 커피를 마시는 것을 선택한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나도 몰래 커피력이 늘어왔다.


  어느새 매일 아침 커피를 마셔야 업무를 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페인에 약했던 때가 아득한 옛날만 같다. 몽롱하고 멍청한 아침의 나에게 카페인 세례를 쏟아붓는다. 커피맛이라곤 하나도 모르지만 그 각성 효과는 간절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게으른 밤, 인스타에서 직장인이 모닝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출근한 게 믿기지 않아서'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댓글의 사람들은 ㅋㅋㅋㅋ을 찍으며 웃었지만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이라는 것을. 이렇게나 아름다운 날에 친하지 않은(그리고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이 사람들과 향후 9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오늘도, 나는, 믿기지, 않는다.


  취업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2잔의 커피를 마시고, 한 달 커피 지출 비용은 평균 12만 원에 이르며, 응답자의 25% 잠을 깨기 위해 마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이 평균에 대체로 수렴하는 커피 드링커가 되었다. 아침에 디폴트 값으로 한잔을 마신 다음, 오후 즈음 혈중 카페인 농도가 옅어져 가면 때에 따라 한 잔 더 수혈해 준다. 


  이렇듯 직장인과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커피 복지는 기업의 중요한 복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인스턴트커피와 캡슐머신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커피 복지에 진심이라면, 에스프레소 머신을 설치하기도 하고 사내 카페를 갖추기도 한다. 카페인 농도 항상성 유지는 생산성과 직결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제공하는 커피는 왜인지 잘 마시지 않게 된다. 커피만큼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대로 마실 수 없다는 소심한 노동자의 더 소심한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러한 사유로 나에겐 사무실 지근거리에 괜찮은 커피전문점이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식후에 잠시 들릴 수 있는 거리, 혹은 출근 시에 잠시 들릴 수 있는 거리커피전문점이 있어줘야 마음이 평화롭다.


전 직장 근처의 '포도나무'라는 다소 예스러운 이름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참 좋아했다. 훨씬 저렴한 사내 카페가 있었지만 굳이 굳이 포도나무에 갔다. 포도나무 사장님은 손이 좀 느렸는데, 그만큼 정성스레 커피를 내려주셨다. 큰 사이즈의 컵에 우유와 얼음을 가득 담고 천천히 눌러 내린 에스프레소를 조심스레 부어 넣은 후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내어 주셨다. 그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은 대체로 싫었지만 포도나무 사장님이 내려주시던 커피는 향만큼이나 대체로 좋았다. 사장님의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면, 하루가 기어가는 듯 텐션이 떨어졌다가도 금세 기분이 돋아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슬슬 졸음이 밀려오는 바로 지금, 특유의 느릿한 손으로 만들어 라떼가 간절하다.


난 라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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