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고등어 사이
동네 파티 스토어 주차장에 시푸드 트럭이 왔다.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의 집으로 이사를 들어오고부터, 싱싱한 해산물을 마트에서 시장에서 마음껏 살 수 있는 동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다 보니 그것도 금세 익숙해져서 내가 한우 구이보다 생선회 초밥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은 채 살고 있다. 그래도 가끔, 샌디에고같은 바닷가에 가서 삼시세끼 해산물이 들어간 메뉴를 앞에 두고 세상 행복해하는 나를 볼 때면, 한국에서의 풍요로왔던 식탁이 떠올라 아련해지곤 한다.
언젠가, 온갖 해산물을 싣고 하루에 한 마을 씩 찾아다니는 씨푸드 트럭을 우연히 만났을 때, 호기심에 샀던 관자 scallops 가 어찌나 달콤했던지, 그냥 팬에 구웠을 뿐인데 따로 소스가 필요 없을 만큼 황홀했지- 하고 회상할 때마다 우리는 입안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아쉬워했더랬다. 그런 씨푸드 트럭이 집 근처에 다시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머리를 맞대고 홈페이지의 상품 목록을 천천히 정독하면서 신중하게 쇼핑 리스트를 미리 작성했다.
상품 목록의 "진공 포장 뼈 바른 고등어 5조각"을 보는 순간, 나는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고갈비에 소주 한 잔"이라는 오래된 로망을 소환해냈고, 처음으로 내 손으로 고등어를 구워보는 상상을 했다.
"나 고등어 먹고 싶어."
여느 미국인들처럼 생선 껍질은 쳐다보기도 힘들어하고, 가느다란 생선 가시 하나 조차 용납할 수 없는 잘 손질된 필레 fillet 로만 생선 요리를 즐기는 그에게서부터,
"그래, 고등어도 사자."
라는 대답을 곧바로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대답을 듣고서도 믿기지 않아서,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지만, 주방 한 가득 진동할 생선 비린내를 당신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평생에 처음으로, 고등어를 사들고 들어온 날이었다.
그 날은 브런치로, 마트에서 산 바게트와 집에서 만든 사워도우 브레드를 썩둑썩둑 썰어서 치즈 퐁듀를 먹었더랬다. 퐁듀의 정석은 심플하게 빵, 치즈, 화이트 와인이라 믿는 우리에게는 치즈 퐁듀가 라면보다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끼 식사인데, 사실은 그것을 핑계로 나는 오후 내내 와인잔을 손에 쥐고서 나른한 주말을 보내려는 큰 그림이 있었다.
소주는 없지만, 와인이 남아 있었으니, 소금을 툭툭 뿌리고 레몬을 얇게 썰어 얹은 고등어 반 마리를, 프라이팬에 구웠다. 오븐에 구우면 냄새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처음인데 제대로 기름 튀겨가면서 구워보고 싶었다. 챠르르- 고등어가 구워지는 소리에 잔뜩 불안해진 그는 이미 2층으로 대피해 있었고, 나는 혼자서 고갈비에 와인 한잔을 우아하게 즐길 준비를 마쳤다. 그때, 그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맛을 보겠노라 한다.
젓가락을 쥐어주었더니, 세상에, 반 토막 가까이를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혹시나 생선 가시를 씹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Actually, I like it!"
그 날 저녁, 폰 카메라 사진첩을 열어보는데, 꼬리한 치즈 냄새 가득했던 퐁듀 테이블과 생선 비린내 가득했던 고등어구이 테이블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어쩐지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어울린다. 가만히 두 사진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굳이 의식하지는 않으려 했던, 그렇다고 애써 모른 척하지는 않으려 했던, 두 사람 사이의 공간과 그것을 채우던 공기가, 어느샌가 스르륵 자연스럽게 뒤엉켜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 졌다.
어쩌면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씩 되새겨 보아도 괜찮을 것만 같다.
미국 남자와 한국 여자, 그 사이에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던 어쩔 수 없는 "다름"을 담담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치즈 퐁듀와 고등어구이 사이의, 얼핏 보면 어지럽고 대충 보면 엉뚱한, 그럼에도 다시 보면 진득한, 그런 이야기들을 기록에 남겨두고 싶어 졌다.
세상 끝까지 늘어져있었던 3월 첫 주의 휴가, 그 달콤한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집 안에 갇혀버리게 된 통행제한 명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배달의 민족도, 동네 치킨집도 없는,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매일매일 오늘은 뭐 먹지?로 아침을 시작하고, 내일은 뭐 먹지?로 밤을 마무리하는, 코로나 셧다운 생존기를 써보려고 한다. 둘 뿐인데, 마치 요리 대회에라도 나갈 것처럼 뭐든 "제대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와 함께 보낸 주방에서의 시간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