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소주 한 잔
그와의 다섯 번째 데이트였던 것 같다.
늦은 오후에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들떠서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며 그 시간을 기다렸다가 몇 시간 전부터 신중하게 입을 옷도 고르고 천천히 공들여 화장도 하고 그랬다. 은은한 향수로 마무리하고 집을 나설 때, 나의 온몸에서 상쾌한 향이 발산되는 것만 같은 기분에 혼자서 실없이 웃기도 했던, 마냥 행복했던 연애 초기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그가 사는 옆 동네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오후 시간이 상대적으로 유연했고, 그의 퇴근 시간과 이동 시간을 계산해서 정한 장소였다. 식전 맥주 한 잔 마실 곳과 밥 먹을 곳 등을 알아서 정하고 데려가고 싶은 남자의 멋져 보이고픈 리더십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일 년을 넘게 한국에서 살면서 그가 보고 경험한 한국은 대부분 직장과 집이 있는 그 동네 근처였으니 그곳이 낯선 나에게 이것저것 소개해주면서 내가 '한국에 사는 외국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자각을 최소화시켜주는 효과도 있었다. 그래서 그 후에도 많은 데이트를 그곳에서 시작하곤 했다.
아무튼 겨울에 막 접어든 그 날 나는, 온몸으로 상쾌하고 우아한 향을 풍기며 그를 만났다. 그때만 해도, 페일 에일 드래프트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지나치게 시크하신 사장님이 있는 단골집에서 일단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저녁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가 문득 제안했다.
"이 근처에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삼겹살 집이 있어. 공간이 좀 좁고 사람이 많긴 하지만, 진짜 맛있어."
나는, 어머 데이트에서 고깃집은 가지 않아요, 호호- 하는 내숭 부류는 아니다. 첫 데이트에서 허름한 국밥집에서 순대국밥도 먹을 수 있다. 그냥 나는,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일 자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꼭 가야 하는 회식 자리가 아니라면 내가 먼저 "고기 먹으러 가자!" 하는 일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없는 일이었다. 채식주의도 아니고 고기 맛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바쁘게 고기를 굽고 연기를 마시고 긴 머리에 기름진 고기 냄새가 깊이 파고드는, 삼겹살 집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조금 피곤한 식사 시간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제안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곳 이외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그 날, 그래 한 번 가보자, 했다.
코너를 돌아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 또 한 번 당황했다. 열 개도 채 되지 않는 철통 드럼 테이블과 플라스틱 스툴에 이미 손님이 가득했다. 운 좋게 마지막 하나 비어있는 가운데 테이블에 앉자마자, 가게 밖으로 대기줄이 길어졌다. 묵직한 제주 오겹살과 목살에 기막히게 중독성 있는 김치찌개까지, 이미 티브이에도 여러 번 나왔던, 동네에서는 손에 꼽히는 맛집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능숙하게 고기를 굽고 자르고 흰쌀밥 위에 고기 한 점 얹고 깻잎 장아찌 덮어서 밥과 함께 집어 올리는 젓가락 기술을, 자연스러운 척 과시했다. 기름진 부위보다는 살코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껍질째 나온 삼겹살의 껍질 부분만 가위로 도려내는 신공을 펼쳐 보였다. 누군가는 "돼지 껍데기"를 돈 주고 사 먹는데 너는 지금 그걸 버리는 거냐 싶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날의 오겹살과 김치찌개가 지나치게 맛있었던 덕분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우리는 가끔씩 "코리안 바비큐"를 즐기게 되었다. 종종 둘이서, 그가 나에게 한국의 음식 문화, 예절을 가르쳐 주는 상황극을 벌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묘하게 한국인이 미국인으로부터 한국 음식을 소개받는 날들이 늘어났더랬다.
더 오래 살아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미국 생활에서 한식이 주는 안정감과 행복함을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한 달씩 해외여행을 떠날 때에도, 단 한 번도 챙겨 본 적 없었던 한식 비상식량, 예를 들면 고추장, 고춧가루, 햇반, 라면 등등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미국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데이트가 그리웠던 건지, 제주 오겹살의 구수한 맛과 서비스 찌개가 그리웠던 건지 모를 일이지만, 때로는 내가 먼저, "오늘 저녁은 삼겹살 어때?"라고 제안하기도 하는데, 그런 나에게 코리안 바비큐, 그러니까 식탁에서 전기 그릴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의 매력을 설득시킨 사람이 미국인이라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돼지고기의 삼겹살 부위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수제 소시지를 사러 가는 옆 동네 부처 샵에 가서 따로 부탁하면 덩어리 채로 삼겹살을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구이 용 삼겹살에 비해서 기름이 많은 편이다. 그것은 챠슈를 만들거나 고든 램지 레시피로 오븐에 통째 구워 내거나 해서 먹는 편이고, 한국 스타일 삼겹살은 코스트코에서 사 온다. 한 팩의 양이 어마어마 하기는 하지만, 한 줄씩 따로 냉동실에 얼려 두고, 한국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삼겹살 파티를 벌이곤 한다.
삼겹살을 구울 때, 필수 재료가 몇 가지 있다.
필수 재료라 함은, 냉장고에 삼겹살은 있지만 이 재료들이 없으면 삼겹살 파티를 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에게 꼭 필요한 재료는, 흰쌀밥과 김치와 어묵. 한국의 고깃집에서 내어주는 기본 반찬 중에서 간장에 심심하게 볶은 어묵이 나오면, 그것을 고기와 같이 구워 먹는 것을 그는 그렇게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잘 구워진 고기를 따로 한편에 모아 두었다가 김치 넣고 밥 넣고 마시던 소주 살짝 휘둘러 넣고 철판 볶음밥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주곤 했다. 물론 친절히 돌아다니며 고기 구워 주시는 직원들은 철판에 눌어붙는 김치 양념이 싫어서인지, 종종 그를 제지하고는 했다. 묘한 신경전을 무릅쓰고, 그는 코리안 바비큐의 마무리는 김치볶음밥이지! 를 실천했었다.
밥솥을 꺼내어 찰진 흰쌀밥을 짓고, 김치를 꺼내어 잘게 썰어 두고, 냉동실의 어묵을 6등분으로 자르는 일은 내 몫이다. 마늘, 양파, 대파도 썰어서 준비하고, 그 날의 냉장고 사정에 따라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새콤한 배추 겉절이를 만들거나 매실 액기스와 간장으로 상추 겉절이를 만들거나 고춧가루 팍팍 뿌려서 얼큰한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깻잎 장아찌와 명이 나물인데, 앞마당에 깻잎을 키웠던 작년에는 장아찌로도 쌈으로도 깻잎을 원 없이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전기 그릴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뒤집어 주고 잘라 주고 뒤집어 주는 일은 그의 몫이다. 자연스럽게, 삼겹살 파티의 식탁에서는 한국에서의 날들을 소환해 이런저런 추억담을 나누게 된다. "우리가 갔던 코리안 바비큐 레스토랑 중에서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야?" 라던가, "다시 한국에 가면, 어디를 제일 먼저 찾아갈까?" 라던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우리 그때 자전거 타고 반포 공원에서 만났던 날 기억나?" 라며 어느 날 어느 순간을 회상하기도 하다 보면, 어느샌가 슬그머니 한국 여행을 계획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다시 가보고 싶은, 추억이 서린 곳 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그리고 다시 신중하게 우선순위를 매기면서 당장 항공권을 살 것처럼 진지해진다.
식사가 끝나고, 남은 재료 몽땅 넣어 만든 김치볶음밥을 다음 날 점심으로 챙겨 두고, 뒷정리를 시작할 때쯤이면, 묘하게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온다. 한국이 정말 너무너무 그리운 마음과, 언젠가는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희망이 뒤엉켜서 아쉬움인지 설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 그런 기분이 들면, "우리, 정말 한국으로 휴가 가는 거야?" 하고 물어본다. "응!" 하고 0.1초 만에 확신에 찬 대답을 듣기 위해서.
한국의 길거리마다 그렇게 흔한 삼겹살 집의 기름때 내려앉은 테이블이, 사람들 북적이는 소란스러움이, 몹시 그리운 날들이 있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가 아닌, 조용하고 한적한,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가 없던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지켜졌던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리움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과, 말로 뱉어내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천천히 배우는 중이다. 혼자 마음에 그리움을 눌러 안고 표현하지 않으면, 한숨이 많아진다. 힘이 빠지고 자신감과 긍정적 태도를 서서히 잃게 된다. 그럴 때, 좀 귀찮게 징징대더라도, "아아아- 육개장 먹으러 가자!"라던가, "한국 가고 싶다고오!" 라던가 뱉어내고 나면, 아이러니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그다지 절망 적이지는 않다고 느껴진다. 메아리처럼 "나도 너무 그리워!"라고 맞장구 쳐주는 그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 진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제안이 얼마나 달콤한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