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대신 주방에서 마음을 달래다

떡볶이 테라피

by TwoHearted


3월의 어느 날.

한참 동안 더디게, 천천히, 하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들이기는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모자란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밍그적 밍그적 진전이 느린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던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중간 피드백을 받았을 때 휴우-하고 내 쉬었던 한숨이 얼마나 길고도 깊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선포되면서, 6월 말에 계획되어 있었던 모든 프로그램이 취소 및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따라서, 그 프로그램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나의 프로젝트 역시 취소 및 연기되어야 할 거라고.




한 시간 정도,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수정되고 미뤄져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도미노처럼 하나하나 떠올라서,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붙들어 대책을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실로 내려가 청소를 시작했다. 창틀의 먼지를 닦아내고, 마룻바닥을 걸레질하고, 청소기로 카펫의 결을 살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두어 시간을 그렇게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동실 한 구석에서, 지난번 한국에서 들어올 때 엄마가 싸주셨던 귀한 가래떡, 네모진 부산 어묵을 발견했다. 그래, 떡볶이를 만들자. 아주 아주 맵게.




"나 뭐라도 만들어야겠어, 저녁으로 떡볶이 괜찮겠어?"

이 세상 모두가 똑같이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 닥친 문제가 얼마나 막막하게 느껴질지, 아마도 그는 알고 있는 듯했다. 너무 지나치지도 않게 너무 무심하지도 않게 미소와 함께 격려를 해준 뒤에는 내가 나의 시간과 공간을 보낼 수 있도록 살며시 물러나 조용한 오후를 보내주었다. 그래서, 내가 떡볶이가 아니라 그 무엇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들, 그는 말없이 재료만 도마 위에 가지런히 챙겨주고 주방을 나설 것이다.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을 우려내 육수를 끓이는 동안, 소스를 만든다. 간장 : 고추장 : 고춧가루 = 2:1:1로 넣고, 마늘, 생강, 설탕, 후추, 카레가루를 조금씩 내키는 대로 흩뿌려서 휘저어 둔다.

옆 동네 정육점에서 한 꾸러미씩 사다가 냉동실에 떨어지는 날이 없도록 쟁여두는 이탈리안 소시지 하나를 꺼낸다. 순대 모양으로 썰어 작은 팬에 지지직- 굽는다. 주방에 온통 기름진 소시지 냄새가 차오를 동안, 떡, 어묵, 파, 양파를 준비한다.

큰 팬을 꺼내어, 양파와 파를 볶고, 떡과 어묵을 넣어 볶는다. 갈색 빛 바삭함이 눈으로 보이면, 소스와 육수를 넣고 끓인다. 깻잎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기름지게 잘 구워진 소시지를 넣어 섞어준다.



고춧가루와 고추장에서 샘솟는 묵직한 힘, 그 깊은 매운맛을 입안 가득 느끼면서, 어묵 국물의 부재를 아쉬워하면서, 커다란 팬을 통째로 식탁에 가져다 놓고, 위로의 저녁 식사를 했다. 어차피 다 먹지 못하니 남겨둘 부분을 대충 스윽 한쪽으로 몰아두었지만, 결국엔 에라 그냥 다 먹어버리자! 하면서, 깨끗하게 팬을 비웠다. 자신의 일 인분 치 배를 채우면, 그릇에 남아 있는 음식에 전혀 미련이 없어서 잔반으로 버리기도 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그가 "이거 소스 남은 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 담아둘까?" 라며 싱크대로 가져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모습에, 나는 그만 푸하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쿠킹 테라피

요리를 잘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자신 있게 하지도 못하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재료를 하나씩 다듬고, 불 위에서 지지고 볶는 그 시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복잡한 마음에 안정을 준다는 것. 내 힘으로 무엇도 어떻게 할 수 없이 좌절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긍정의 마음 가짐일 것이다. 한두 시간의 청소 시간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한 시간 정도 오로지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부정적으로 무너져내리는 자괴감을 털어낼 수 있게 된다. 요가나 명상에서 얻곤 하던 마음의 안식을 떡볶이 국물 휘젓는 손끝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로 가끔씩,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마음이 괜히 무거운 날에는, 산책을 나서는 대신 주방에 들어가곤 한다. 때로는 에어팟으로 아침산책용 노래를 들으면서, 때로는 스피커로 재즈를 들으면서, 대체로 평생에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한식 요리에 도전한다.



비빔밥도, 찜닭도, 고등어조림도, 채 썬 애호박 전과 비빔국수도, 쿠킹 테라피의 부산물이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어!"라는 황홀한 기분은 아직 느껴본 적 없지만, 아마도 그건 비현실적으로 음식 솜씨가 좋으신 엄마의 요리가 기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게 무슨 요리야 싶은 표정으로 식탁에 앉지만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서 입맛을 다시는 그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테라피의 부산물들이 맛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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