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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n 18. 2020

클럽 배추가게

망한 가게 살리기

‘평생 먹어 본 중 가장 맛없었던 음식은 뭔가요?' 라고 누가 묻는다면, 1998년 봄,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는 작은 아버지와 마주 앉아 먹던 철판 순대 볶음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작은 어머니의 표현을 정확히 빌자면, 마귀 소굴이나 다름없는) 클럽을 접고, 차기 사업 아이템으로 순대 볶음이 어떨지? 조심스러운 제안을 하기 위해 작은 아버지를 뫼시고 신림동 순대타운에 간 것이다.


신림동 즉석 철판 순대볶음이 얼마나 만들기 쉽고, 마진이 높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인지 프리젠테이션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 가지 실수였다면 평일 오후 3시.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가서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다는 거.


잠깐 브레이크를 취하고 계셨는지 머리가 한쪽으로 눌린 아주머니가 나른하게 올려두고 가신 순대와 야채를 쉴새없이 뒤집으며, 나는 ‘건대 앞에 닭갈비 집만 있고 순대볶음집이 없는 것이 정말 이해가 안 간다’고 떠들어댔다. 작은 아버지는 '그래 순대 맛있지...'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시며, 소주 한 병 콜라 한 병을 시키셨다. 나는 소주를 마시고, 교회다니는 작은 아버지는 콜라를 드셨다.


2호선을 타고 건대 앞으로 돌아오는 길. 작은 아버지는 일이 피곤해졌다는 표정으로 내내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몸 둘 바를 모르며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지,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신뢰를 만회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건국대 학교 학생들은 어디서 술을 먹나?부터 찬찬히 생각해봤다. 닭갈비집, 막걸리집, 호프집, 캠퍼스 내 호숫가 옆.... 주머니가 가벼운 많은 수의 학생들은 편의점에서 술을 사다가 학교에서 몰래 술을 먹는다. 대 놓고 마실 수는 없으니 학교 관리인의 눈을 피해 호숫가 주변 나무 밑에 몰래 숨어 마신다.


갑작스럽게 앗!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위해 술을 편의점과 똑같은 가격으로 팔면 어떨까? 편의점 물건도 마진은 있을 테니까. 단, 주변 편의점들이 항의할 수도 있으니 1인당 2,000원씩만 입장료를 받자. 그리고, 입장료에 대한 서비스로 락 밴드를 불러 공연을 하는 거다.


재미있게 공연도 보고 춤도 추고, 편의점 가격으로 술을 마실 수 있다면 1인당 2,000원은 매우 저렴하다. (당시 홍대 라이브 클럽의 맥주 한 병을 포함한 입장료는 5,000원 이었다.) 나라도 갈 것 같다. 문제는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와 시스템을 갖추는 일.


다행히 나에겐 인맥이 있었다. 대학 입학 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라이브클럽에서 만난 음악하는 오빠들. 그 중 한국 기타의 살아있는 전설로 알려진 JS 오빠. (지금은 60대에 접어드셨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 락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분인데 나는 그 분의 위엄을 정확히 알 지는 못했다. 그저 신기한 삼촌처럼 여기며 가끔 만나 합주실이나 음악인들 모이는 자리에 따라다니곤 했다. 그 분께 부탁하면 도와주시지 않을까?


눈을 감고 있는 작은 아버지를 깨워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아무리 미심쩍은 탕자의 목소리라도 사업에 관한 것이라면 일단 귀 기울여 들으시는 작은 아버지가 곰곰이 생각 끝에 입을 여셨다.


"내가 이 가게에 투자한 돈이랑, 월세를 감당하려면 하루에 40만 원이 내 주머니에 들어와야 되거든? 내가 한 달 정도 말미를 줄테니까, 그 안에 하루 40만 원씩 입금할 자신 있으면 해 봐. 나머지는 얼마가 됐든 다 네 수익으로 하고."


배추가게의 탄생


무슨 생각으로 그런 조건을 받아들였을까. 40만 원씩 입금을 못 해도 조카니까 봐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잘 된다. 무조건 잘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싸고 재미있고 새로운데 왜 안 오겠어?


내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루 40만 원만 벌자’ 작은 아버지는 분명 속으로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내 능력을 보여주고 잃어버린 신뢰를 만회하고 싶었다. 목표는 하루 100명. 입장권 수입 20만 원, 1인 평균 술 값과 안주 매출 x 100명 = 100만 원. 편의점 마진이 20% 정도니까 술과 안주를 팔아 20만 원을 버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여기저기 돈을 빌려 약 2,000만원을 마련했다. 락음악을 연주하는 라이브 클럽을 운영하려면 그에 맞는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이브클럽 사장은 본인이 뮤지션인 경우가 많다. 음악을 사랑하지 않고 사업성만 따져서는 유지하기가 힘든 업종이다. 특히, 대학가 라이브 클럽의 젊은 손님들은 음악만 듣고 술은 별로 안 마신다. 공연이 끝나면 밑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래서, 밴드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조차 어려워하는 가게가 많다. 사장이 어느 정도 인맥을 가지고 있어야 공짜 맥주 정도로 후배들을 불러 공연을 꾸려갈 수 있다.


뮤지션이 아닌 내가 실력있는 뮤지션들을 끌어 들이려면 ‘장비빨’을 세우는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사운드를 구현해 줄 훌륭한 장비와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그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전설의 기타리스트 JS 오빠의 도움 덕분에 나는 2,000만원으로 최고의 장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꽤 유명한 공연 예술팀이 사용하던 조명 장비 풀세트도 이 분의 도움으로 저렴하게 인수했다. ‘빚 내서 하는 장사인데, 망하면 어떻게 하지? 망하면 다시 이 가격으로 되팔 수 있으려나?’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 때는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이, 스물 두살이니까.


배추가게라는 클럽 이름도 JS 오빠의 아이디어였다. 사람들은 배추하면 배춧잎, 만원짜리 지폐를 연상하지만, 그것은 오직 순수한 아티스트의 즉흥적인 영감에서 탄생한 이름이다. “싱그럽잖아”   


장비를 갖추고 세팅하는 동안 락음악 동호회에 가입해 오디션 할 밴드를 모집했다. 초대형 배추색 간판을 새로 매달고 오픈일을 정했다. 아르바이트 생들을 고용하고 배추색 전단지를 무차별 살포했다. 오픈기념 공연 밴드도 JS 님이 섭외해주셨다. 헤비메탈계에서 꽤 이름을 날리는 팀이라고 했다.


헤.비.메.탈.이라니….


'후배 중에 좀 그냥 귀엽고 잘생긴 펑크 락밴드는 없으신가요? 이를테면 크라잉넛 같은...’이라고 묻고 싶었지만, 수고비도 없이 가게 세팅을 도와주시는 거물급 인사에게 토를 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픈 당일. 오후 4시부터 오픈 직전 6시까지 나는 길에 나가 미친 듯이 전단지를 돌렸다. 인스타그램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다. 당시 유일한 홍보 수단은 오직 전단지. 8시 공연 전까지 아르바이트생을 교대로 돌려가며 마지막 한 장까지 최선을 다해 전단지를 살포하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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