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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Jul 25. 2023

"너 어디니?. 남의 집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 안된다"

10년차 며느리의 시댁과 멀어지기 ④

코로나가 창궐할 시점 우리딸은 3년 다니던 가정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채 생애 첫 졸업이란걸 했고, 이내 3월 유치원에 입학을 했다. 입학식 또한 있을리 만무하였다. 코로나라는 보도듣도 못한 경험을 하면서 아이의 상황은 안정을 찾기가 어려웠고,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유치원 입학을 하고서도 아이는 안 가는 날이 많을 정도로 등원이 불안정했고,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던 아이는 심신으로 많이 바빴을 것이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울고, 할머니랑 떨어지기 싫다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워킹맘인 나는 시부모님께서 그 시기 불안정했던 아이를 돌봐주셔서 회사를 큰 무리없이 다닐 수 있었다.  




5살 입학년이 지나고, 6살이 되던 해였다. 유치원생활에 아이는 어느덧 적응을 하였고, 친구들을 하나둘 사귀면서 그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6세반에 올라간 어느 봄, 새학기가 시작하고 약 한두달 지날 시점이였나보다. 아이가 갑자기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학교를 가지않겠다고 하는 아이를 둔 엄마의 심정은, 같은 상황을 겪어본 엄마만이 이해할수가 있다. 매일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회사가기 바빴던 나는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한 한탄과 함께, 나도 바쁘고 힘든데 아침부터 울고불고 하는 아이에게 많은 화가 났었다. 그 화는 남편에게로 향하곤 했다. 주말부부여서 나의 이러한 일상들을 알리없는 남편에게 나의 스트레스를 퍼붓곤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스스로 감정 컨트롤 참으로 못했었다 싶다.


그러한 일상의 지속선상속에서, 유치원을 안가겠다던 아이의 결론은, 유치원생활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하원할때 아주 밝은 표정으로 귀가를 하기에 큰 문제는없어보인다는 것.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결론을 내리고 또다시 우리는 평소의 일상대로 지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이건 해야겠다! 싶었던 것이 아이에게 '친한 친구'를 만들어주자는 거였다. 외동이고, 둘이서 속닥속닥 놀기를 좋아하는 우리 모녀에게 유치원을 가고싶게 만들 친한 유치원 친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한 아이를 알게 되었다.




워킹맘에 내향인인 나는 아이친구의 엄마 전화번호를 몇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수소문을 하여 한 아이엄마의 전번을 알아냈다. 얼굴은 한번 본적이 있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엄마였긴 했지만, 엄마끼리 동갑이여서 그런지 서로가 친해지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시간이 되는대로 한번씩 만나고 같이 밥먹고 키즈카페를 다니며 시간을 공유했다. 유치원에서 매일 만남에도 불구하고, 하원뒤 만남에서의 헤어짐은 아이들에게 큰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지금은 각자 다른 학교에 서로 다른 일정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 만나도 불편하지 않을 그 친구와 그 친구엄마. 이런 계기로 나와 아이에게는 편안한 친구가 생긴 샘이다.)


이런 아이의 상황을 시부모님은 물론 알고 계신다. 워낙 가까이 지냈으니. 주말부부여서 남편은 매일 안 보지만, 시부모님은 매일 두번씩,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뵈어왔으니깐.




어느날 나는 회사반차를 쓰고 아이를 하원시켜 그 아이네 집에 놀러갔었다. 확실히 아이는 그 친구와 더 친해지고 난 뒤로부터는 그 이유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상황이였던건지 유치원 안가겠다는 소리를 적게 하였다. 나도 내일 일을 해야하는지라,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집에 와서 아이를 챙기고 있던 찰나에, 전화가 걸려 왔다.


"너 어디니?. 남의 집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 안된다"


시어머님이였다. 친구네 집에 놀러간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어머님은 다짜고짜, 집에 얼른 들어가라며 남의 집에 오래있으면 안된다며 훈수를 놓으셨다. 어머님 집의 주방에서 우리집 거실이 보이는, 우리는 바로 옆동에 살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그날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거실불을 켜지않았던 모양이다. 불이 켜져있지않으니 시어머님은 당연 우리가 친구네 집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추측하셨던 모양이다.


어디냐고 물었으면 어딘지 이야기나 듣고 말씀을 하시지. 그리고 친구집에서 놀다가 천천히 올수도 있는 일을, 이미 집에 돌아온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늘 다짜고짜 큰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고는 내 이야기는 굳이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집이예요"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뻘쭘하게 일단락되었다. 관심이라는 명목하에 손녀딸과 며느리의 동선까지 체크하시며 걱정을 털어놓는 시어머님의 모습이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우리부부가 주말부부가 아니였다면, 시부모님이 주는 관심들이 간섭들로 덜 여겨졌을까.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부모나 조부모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당시 나의 스트레스는 정말 최고조였는데, 아마 이 마음은 남편도, 누구도 모를 것이다. 운전하며 가던 출근길에서 멀쩡하게 가던 앞차를 무참히 박아버리는 바람에 무사고 타이틀을 벗을 수 밖에 없었고, 그때이후로 자동차 보험료도 한껏 올라버렸다.


심리적으로도 많이 가까웠지만, 우리가족과 시부모님은 물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웠다. 그래서 이제는 그 가까운 거리를 조금씩 넓혀나가려고 한다. 너무 가까워서, 여백이 없어서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기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한다. 다행히, 여전히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는 있지만 바로 옆옆동으로 이사를 가는 바감데 서로의 상황이 아주 가까이서는 보이지 않는 정도로 이전보다 간격이 넓어졌다. 집에 있는지, 불은 켜져 있는지 늘 살피시던 시부모님은 분명 관심이라 말할 것인데, 점차 시간이 갈수록 고된 간섭으로 느껴졌기에. 더군다나 주말부부였던 우리부부에, 딸과 며느리만 남겨진 채 살고 있는(?) 우리 모녀의 모습이 시부모님께는 더 걱정스러움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 마음을 알기에 큰 불평을 할 순 없었지만, 이제는 내 마음이 힘들다고 호소를 하고 있다. 더이상은 힘들어하는 내 마음을 모른채 넘어가면 안될 것 같은 순간에 봉착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전 글의 댓글에서처럼 부모님께 아이를 안 맡기면 될것을, 본인의 이득은 다 챙기고서는 힘들다고 말하는 못된 며느리로 나를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분명 있을터이니 마음이 편치않다. 하지만 계속 이 상태의 지속은 우리가족에게 좋을리 없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내가족, 우리남편과 우리딸. 그들에게 어떤 형태의 불편도 주고 싶지않다, 함께 행복하고 싶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시부모님과 적당한 거리, 적당한 선을 지키며 그 관계를 유지해나갈 예정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언젠가 그 정답이 불현듯 떠오르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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