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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Jul 21. 2023

아버님은 아이의 할아버지이지, 아빠가 아니잖아요.

10년차 며느리의 시댁과 멀어지기 ➁


세살부터 지금 아이가 여덟살이 된 지금까지, 우리딸의 양육은 시어머님이 도맡고 계신다. 지금은 아이가 제법 크기도 했고, 학원을 갔다가 할머니집에 가면 저녁시간이기에 어릴때보다 손가는 일과 시간적으로 많이 줄긴 했다. 하지만 어디 아이 하나 보는게 쉬운 일이랴, 매일 꼬박 밥을 챙기는 것만해도 쉽지 않을 터이다.


그렇게 시어머님은 매일 아이를 챙겨주셔서 우리 부부는 편하게 일을 하러 나갈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어머님께 맡기는 아이 양육은, 며느리인 나에게 마냥 쉬운것만은 아니였다. 기본적으로 손주들을 여럿 키워내신 어머님은 자신의 양육방법과 태도가 아주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시는 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부부의 아이돌봄이 무척이나 미흡해보였을테고, 하나씩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하였다.



아래의 글은, 내가 메모장에 적어둔 것이다. 남편은 양육에 대해 주말에만 오고간터이고, 크게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건지, 이런 말씀들을 해도 감흥이 없더라. 온전히 내가 다 받아내어야 하는 말들이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의 관련된 일들에 나의 부족함을 이야기를 했고, 나에게는 딱히 수용이 되지 않는 조언들을 늘어놓으셨다. 그래도 존중하려했다. 아이를 맡아주시는 그 정성이 고마워서라도 아무 말을 하면 안된다 생각했다. 때론 기분이 좋지않아 얹짢은 표정을 보인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아이를 돌보는 어머님이 알아서 하시도록 하게끔 내 마음을 내려놓자 수도없이 컨트롤 하며 지내왔다.


그렇게 그럭저럭 잘 지내온 내 마음에도 불을 지피는 순간은 여럿 있었다. 남편과 나, 어머님 기준에서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를 불공평하게 대한다는 순간에는 너무 기분이 상하였다.


어느 날, 아이가 열이 나서 병원을 가야하는 순간이였다. 시부모님께 여러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주셨었지만, 매번 부탁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고, 나는 그 날 너무 바빴기에 타지에 있는 남편에게 반차를 쓰고와서 아이를 케어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 다음날 나는 시아버님께 불려갔고, 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우리가 불편하냐 ?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거기까지여야 했다. 사실 다 맞는 말이였으니깐. 시부모님께 부탁하는게 불편했기에, 멀리 있는 남편을 소환한건 사실이였다.


"멀리 있는 애(자신의 아들), 일하는데 신경쓰이게 왜 전화를 하니?

 필요하면 우리한테 이야기를 하지. "



네? 일하는데 신경쓰이게 전화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건 나로선 너무 화가 나는 말이였다. 아이가 아프면 아이의 아버지가 알아야 할 일이고, 엄마가 바쁘면 아빠가 휴가를 내서라도 아이를 케어해야하는건 당연지사. 내가 느낀 시댁은, 아이를 누구보다 정성스레 봐주셨지만, 엄마의 역할을 온전히 나에게 맡기고, 멀리있는 아빠의 역할을 온전히 자신들이 해내려하셨다. 마치 아빠는 없고, 아빠의 역할을 하려는 시부모님만 계신 형태였다.


'아버님은 아이의 할아버지이지, 아빠가 아니잖아요.'


맘속 깊이 외치고 있었지만, 결코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였다. 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 딱 그만큼의 선만 지켜 아이를 돌봐주었으면 좋겠는데, 마치 아이의 부모인냥 넓고 깊게 확장하여 아이와 우리가족의 영역에 손을 펼치는 시부모님을 보면서 때론 속상하고 때론 기분이 나빴지만 나아질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며 지냈다. 어차피 내가 부모님을 바꿀수도 없을테고, 내 생각이 다 맞다고도 볼 수 없으니깐.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며, 한해 두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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