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5. 도서관 책의 자부심 - 지식의 바다에서 노닐다

3부: 지식과 기술의 목소리

나는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한 권의 책이다. 내 등에는 '세계사 산책'이라는 제목이 씌어 있다. 나는 수천 년의 인류 역사를 담고 있는, 지식의 보고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내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오늘은 누가 날 집어갈까?



매일 아침, 도서관이 문을 열 때마다 나는 설렘과 함께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옆자리의 얇은 참고서나 시험 대비용 문제집들이 자주 대출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난 단순한 지식의 집합체가 아닌데... 내 안에는 인류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동시에 자부심도 느낀다. 내가 담고 있는 지식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와 경험, 그리고 교훈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주기를 기다린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내가 있는 서가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나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길에서 나는 설렘을 느꼈다.


"아, 이 책... 대학 시절에 읽었던 건데."


그의 중얼거림에 나는 더욱 기뻐졌다. 그는 나를 대출해 갔고, 나는 오랜만에 도서관 밖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의 집에 도착해서, 나는 그가 나를 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때로는 미소 짓고, 때로는 깊은 생각에 잠기며 나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반응을 보며 나는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담고 있는 지식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아들아, 이리 와봐.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줄게."


어느 날 저녁,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불러 나를 펼쳤다. 그리고 내가 담고 있는 역사 속 이야기들을 아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와, 아빠! 그게 정말이에요?"


아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키우는 창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서가에 꽂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도 충분히 가치 있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비록 매일 대출되지 않더라도,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세상은 점점 더 디지털화되어 갔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 주는 특별한 감각, 종이를 넘기는 촉감,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기대감은 디지털 기기가 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을.



"안녕하세요, 세계사 관련 책을 찾고 있는데요."


어느 날,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이 사서에게 물었다. 사서는 그녀를 데리고 내가 있는 서가로 왔다. 그리고 나를 건네주었다.


"이 책이 가장 종합적이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희망을 느꼈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도서관의 책이다. 


나는 지식의 바다에서 노니는 작은 배와 같다. 때로는 잔잔한 호수에서, 때로는 거친 파도 속에서 항해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달한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이유이고, 나의 자부심이다.


앞으로도 나는 이 자리에서 누군가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 도서관 책의 사명이자 자부심이다.


오늘도 나는 여기 서가에서 기다린다. 언젠가 나를 필요로 할 그 누군가를. 그리고 그때 나는 기꺼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전 16화 에필로그, 2부 공간의 속삭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