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법사가 방문한 불교 8대 성지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지난 편에서는 불교사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말해지는 4대 성지로 싯다르타가 태어난 룸비니(Lumbini),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igaya), 첫 설법의 장 사르나트(Sarnath), 열반에 이른 쿠시나가라(Kusinagara)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8대 성지 중 나머지 4대 성지인, 대신변을 보인 스라바스티(Sravasti), 술에 취한 코끼리를 제압했던 라자그리하(Rajagrha), 원숭이에게 꿀을 보시받았던 바이샬리(Vaisali), 도솔천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설법을 한 후 다시 내려온 곳인 상카시야(Sangkasya)를 살펴보려한다.
스라바스티(Sravasti)
현장은 '사위성의 신변[참고]'의 배경인 스라바스티에 도착했다. 하지만 붓다가 그렇게 화려한 기적을 보였던 코살라국은 완전히 망한 뒤였다. 현장은 프라세나지트(Prasenajit) 왕의 어전과 왕이 지은 법당이 완전히 폐허가 된 모습을 둘러봤다. 하지만 사위성의 신변이나 왕국이 황폐해진 모습에 대한 감흥을 따로 남기지는 않았다. 불경이나 불교사에 빠삭했던 현장인 만큼 특별한 감정이 들었을 법도한데, 자세한 기록이 없다는 점의 다소 의아스럽다.
대신 스라바스티국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붓다의 이모이자 최초의 비구니 승려인 프라자파티를 위해 건립한 법당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붓다가 승단을 이끌 당시 여성도 성불할 수 있는가, 여성도 출가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붓다는 자신의 이모인 프라자파티의 출가를 받아들이면서 일종의 사회적 변혁을 이끌었다. 이 법당지는 프라세나지트 왕이 프라자파티를 기려 건립한 장소였다.
그리고 기원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부처님이 활동하던 당시 코살라국에는 덕이 높기로 유명한 '수닷타(선시)'라는 대신이 있었다. 그는 늙고 외로운 사람들을 특히 열심히 도왔기 때문에 '급고독(給孤獨, anāthapiṇḍada) 장자'이라 불렸다.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의 공덕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사를 지어서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설법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이에 적합한 땅을 물색하였는데, 오직 한 곳 터가 높고 땅이 건조한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그 땅은 제타 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땅이었다.
수닷타 장자는 태자에게 이 땅을 팔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태자는 이 땅 전체에 황금을 깔아주면 팔겠다고 하였다. 난처해할 줄 알았던 수닷타 장자는 오히려 기뻐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들여 금을 깔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이 부족하여 다 깔지 못했다. 태자는 수닷타 장자의 아낌없는 모습에 감명받아 수닷타 장자에게 금을 더 이상 깔지 안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숲의 나무를 주어 정사를 같이 지어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와 제타 태자의 마음을 받아 이 장소를 '제타림급고독원'이라 칭하고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기원정사 모습 ⓒ Wikipedia(Public)
라자그리하(Rajagrha)
왕사성이라고도 말해지는 라자그리하는 부처님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마가다 왕국의 중심지이며 부처님께 귀의한 빔비사라 왕의 궁성이 있었다. 또한 이곳은 부처님이 술 취한 코끼리 '날라기리'를 굴복시킨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현장도 이곳을 방문하였고, 이 이야기에 대해 짧게 기록을 남겼다.
부처님을 시기하던 사촌동생 데바닷다는 부처님을 해하기 위해 어김없이 계략을 꾸몄다. 이번에는 난폭한 코끼리 날라기리에게 술을 먹여 부처님이 가는 길에 풀어 둔 것이었다. 날라기리는 부처님의 무리가 나타나자 화가 나서 달려들었는데, 부처님이 날라기리를 쓰다듬자 얌전해졌다.
이 이야기는 중국이나 동아시아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특히 많이 알려졌다. 아마도 코끼리의 무서움을 아는 나라의 사람들이 잘 받아들인 듯하다.
코끼리 날라기리를 복종시키는 붓다 (찬디가르 박물관)
바이샬리(Vaisali)
바이샬리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한 원숭이가 부처님의 발우에 꿀을 공양했다. 부처님이 이를 제자들과 나눠 먹자 원숭이는 기뻐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10개월 후 원숭이는 한 바라문의 아들로 환생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집안의 그릇들이 모두 꿀로 가득 찼다. 그래서 이름을 '밀승'이라 지었다. 성장한 밀승은 출가를 하였고 수행을 거듭해 아라한이 되었다. 이 이야기와 관련된 장면은 시크리 출토 스투파에서도 볼 수 있다.
시크리 출토 스투파에 조각된 원숭이가 꿀을 보시하는 모습
현장은 바이샬리와 관련된 다양한 설화를 기록했다. 석가 열반 후 만들어진 근본팔탑 중 한 탑이 바이샬리에 만들어졌는데, 아쇼카 왕은 이 탑을 해체하여 9 말 중에 8말을 꺼내어 사용했고, 나머지 한 말은 그냥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붓다가 3개월 후에 입멸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는 기록을 남긴다. 또한 붓다 열반 후 110년 뒤 700명의 승려들이 모여 결집을 한 곳이라는 이야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상카시야(Sangkasya)
상카시아는 도솔천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설법을 마친 붓다가 다시 지상에 내려온 곳이다. 부처님이 내려온 계단은 황금, 수정, 은으로 삼 열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처님은 황금, 범천은 수정, 제석천은 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고 한다. 또한 과거에는 계단이 있었는데 사라지고, 후대의 왕들이 복원한 계단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도솔천에서 내려오고 있는 부처님(미얀마 바간)
또한 붓다가 도솔천으로 떠난 후 3개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붓다를 그리워한 우다야나왕은 붓다의 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붓다가 도솔천에서 내려왔을 때, 이 불상이 벌떡 일어나 세존을 맞이했고, 붓다는 불상에게 하여금 대중을 교화하는 데에 수고가 많다고 불상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맞다면 첫 번째 불상은 간다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설화에 나오는 이 불상라고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불교의 팔대성지에 대해서
'불교의 8대 성지'라 하니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거나, 관련된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부처님 사후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장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장소들을 둘러보았을까?
현장이 대당서역기에서 '8대' 성지라는 단어를 기록에 쓰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중에 8대 성지라 부르는 장소들을 모아서 묘사한 것이 있다. 구법승들이나 타지에서 온 불자들은 부처님의 성지에 대한 갈망이 있었음이 짐작된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부처님 사후 천년 뒤인 현장의 마음이나 이천 오백 년 뒤인 우리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사르나트 박물관 소장 부처의 8대 성지 조각상 ⓒ 사르나트 박물관
필자는 인도의 성지들을 직접 가보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 반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정리를 하면서 더욱 답사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언젠가 인도의 성지들을 직접 둘러보고 부족한 글을 보완하겠다는 뻔뻔한 약속을 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자료
현장 저, 권덕주 역, "대당서역기", 올재, 2012
혜립 저, 김영률 역,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동국대학교한글대장경
신소연, 김민구 역, 샐리 하비 리긴스 저, "현장법사", 민음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