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행복'을 배우다

by omoiyaru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오랜 시간 철학과 종교를 찾아다녔다. 직접 찾아다닌다기보다는 영상과 책을 통해서 행복을 설파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정처 없이 쫓아다녔다. 마치 그곳에는 행복은 무엇이다 하는 명쾌한 정의 혹은 답이 나와있을 것만 같았고, 그 답이 너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 벗고 '행복'을 찾아다닌 이유는, 현재의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행복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왜였을까?


바로, 내 안에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나만의 높은 정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허들이 높은 행복의 정의 덕분에 내 인생에 주어진 대부분의 상황이 나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생각했던 행복한 삶의 정의는 아래와 같았다.


나와 사랑하는 가족들의 정신과 몸이 건강하며, 빚이 없이 상태로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에 주위의 일이 잘 풀려서 고민걱정이 없고, 표정은 밝고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삶에 여유로움이 넘치기에 베풀며 살아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상태에 있는 것, 그리고 동식물을 사랑하고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이리저리 치이지 않고 남 눈치를 보지 않으며 편안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


왠지 이런 삶이어야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되돌아보니 나는 TV 브라운관에 나오듯 나의 인생이라는 TV에 오직 아름답고 훌륭한 장면만을 송출하며 살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 같았구나 싶다. 인생의 다양한 면이 아닌 오로지 한 면만을 보고 그런 것만이 좋은 삶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저렇게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하면 정말 나는 아무런 고민걱정이 없을까?

아마 지금하고 있는 걱정이나 고민의 수와 양이 덜해질 수는 있지만, 그때가 되면 그때만의 또 다른 고민과 걱정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저기에는 적혀있지 않는 (현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 어떤 문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발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평면이 아닌 다면적인 것이니까.


내가 내린 행복의 정의가 틀렸다고 한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도대체 언제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행복한 삶도 결국은 하나의 단어로 종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편안함'이다.


주위 환경이 산만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로 흘러가는 상황.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도 요동치지 않는 고요한 상태에 있는 상황.

그런 고요한 물과 같은 상황에 가벼운 몸으로 적당한 물의 흐름을 타며 둥둥 떠다니는 상황.


지금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히 자립을 하기 위하여, 또 나만의 보금자리인 집을 사기 위하여, 고군분투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삶의 여러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다 보니 몸이 가벼울 수가 없다. 피곤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에 뛰어들면 행복해질 것이다. 잠시동안은.


나라면, 잠깐의 달콤한 행복을 누리며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채우고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되었을 때 아직 못 가본 그 어딘가의 길을 향하여 잠시 내려놓았던 짐을 들고 다시 걸어 나갈 것이다. 축축해진 몸을 말리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한 치 앞을 모르는 그 길에 발을 내딛을 것이다.


마치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인생처럼 말이다.

인생은 그렇기에 모험과도 같고 여행과도 같다.


배낭여행을 할 때 우리는 내 한 몸에 걸칠 수 있는 최대치의 것 외에는 가지고 가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다.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갈 수 없다. 인생도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더 오래 멀리 가려면 덜 가져야만 한다. 최소한으로 가지고 가다 정말 필요할 때가 되면 그때 채우면 된다.


이런 간단한 진리를 알면서도 왜 쉽게 행하지는 못할까?


바로, '욕망'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비교적 짧은 시간이기에 잠시동안은 불편함도 감수할 수 있다. 잠시 그렇게 사는 것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평생에 걸쳐 계속해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라고 한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살아보면 이제는 또 반대로 편안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살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인생이 생각보다 길다고 가정을 했을 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여행자와 같은 삶의 모습은 '편안함' 보다는 수많은 '위험성'을 동반하게 된다.


여러 일에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치 인생의 모든 욕망을 내려놓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현실에 순응하고 만족하라는 것보다는 당장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설렘을 갖고 사는 것. 그리고 오늘보다는 조금씩 발전하는 내일을 사는 것. 그런 것들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마치 우리 집 아기 고양이가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가고, 몸이 성장함에 따라 활동성을 갖춰 나가듯이 말이다.

아기 고양이는 점프를 뛰다 떨어졌다고 슬퍼하고 좌절하지 않는다. 조금 있다가 다시 도전한다.

배부르게 먹고 따듯하고 편안한 곳에 누워 스르르 잠에 취한다.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잔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현재 있는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잠을 잔다.


고양이가 나에게 알려주는 행복의 의미는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전해지는 것 같다.

진정으로 내가 행복한 순간은, 고생만 하는 때가 아닌 여러 고생 끝에 결국 편안한 곳에서 그간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내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때이다.


결국 행복한 순간이란, 아무것도 안 하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내고 난 이후에 맛볼 수 있는 '달콤한 꿀맛 같은 휴식' 즉, '노력의 결과물'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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