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간절한 날에 읽는 철학 이야기 中
고양이와의 접점이 생긴 이후 자연스럽게 내 삶에 고양이가 차지하는 영역이 늘어가고 있다. 내가 검색하고 찾아보는 대부분의 정보들은 고양이와 관련된 것들로 바뀌었고, 빌려 읽는 책이나 영상에서도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아마 내가 고양이에 관심이 생기니 그런 부분에 자연스럽게 더 주목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참으로 신비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나는 아직도 고양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고양이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대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은 애기가 조금만 이상해져도 불안해진다. 시간이 아주 오래 흐른 뒤에는 누군가 고양이에 대해 걱정할 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시간은 참으로 마법 같은 존재이다. 시간은 만병통치약이다.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영원한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없는 이유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시간'의 힘을 빌리면 언젠가는 능숙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두려워지면 '시간의 힘'을 믿어보자고 결심한다.
한편, 시간은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좌지우지할 수 없다. 그래서 현재 이 순간을 놓치면 그 순간은 끝인 것이다. 지난 일은 기억이나 기록으로 남아 연속성은 유지되지만 그 순간 자체는 이미 흘러버린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가끔은 무섭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자마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흘러가는 시간의 무서움이 더욱 와닿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시간은 공평한 존재이다. 모든 생명체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환경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집 길고양이처럼 길에서 태어나게 된 생명체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고양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저 그런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닐까? 이 아이의 전생이 있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라 그저 모든 것은 우주의 탄생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흐름에 의해 태어나고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신이 있다고 해도 신조차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사고를 보면 왜?라는 물음표가 드는 사건들이 많다. 어려서부터 평범한 학교 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생겨야 하고, 나쁜 일은 생기면 안 된다는 사고가 자리 잡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이런 윤리의식이 덕분에 우리는 사회 규율을 잘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교육받은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교육에서 가르치는 윤리를 실제 사회를 살아가면서 적용시키다 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도 무수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실에는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 일일이 화를 내며 살다 보면 화병이 나 제명에 못 살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삶에 확실한 것,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인생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진리인 것 같다. 물리학적으로 보아도 만물은 흔들리는 파동으로써 존재하는 원자들의 집합체일 뿐인 것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도 이 논리에 따라 무수히 쪼개 보다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흔들리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멈춰있다는 것은 곧 죽어있는 상태,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살아있는 모든 것은 흔들리고 있다, 곧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딱 떨어지는 정답'이란 우리 인생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완전한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걱정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러한 사고에서 나아간다면, 우리 삶 중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의 존재이다. 흔들리는 원자들의 집합체인 생명체들에게는 유한한 삶의 모습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오직 무한한 시간의 흐름만큼은 만물의 존재여부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대하고 아껴 써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일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진정으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유용하게 사용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우리들은 외부에 시선이 빼앗겨있다. 보이는 것들. 남들처럼 혹은 남들만큼 잘 사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시간을 소중히 하기보다는 돈, 평판, 명예, 권력 등에 시선을 빼앗긴 채 그러한 것에 시간을 쏟고 흘려보낸다. 보이는 것들은 삶을 살아가며 나를 표현하는 데 좋은 지표 또는 수식어가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것들은 현생에서만 통용되는 것들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 전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소중하고 유한한 시간을 무한한 시간으로 착각하는 과오를 멈추고 싶다. 우리는 때때로 유한한 존재인 것들의 '주어진 시간'을 무한하다고 착각하기에 수많은 번뇌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한다.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예쁜 존재도, 누구보다 밉고 악한 존재도, 그것이 무엇이든 때가 되면 소멸하게 되어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소중한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다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고 길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에게서 멈출 시간의 흐름의 연장선을 만드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새로운 생명의 잉태와 탄생은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난 자의 사명이자 숙명이 아닐까 싶다. 한동안 나는 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고양이는 왜 이렇게 많은 아기 고양이를 낳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그게 생태계의 원리라는 것이다. 생태계에서는 상위 포식자일수록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행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고 한다.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1년에 평균 1명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먹이사슬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피식자(포식자의 반대말)들은 생존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잉태하는 생명의 개체수가 많아진다고 한다. 고양이는 생태계적으로 살아남기 힘든 피식자에 속하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의 아이를 잉태하는 것이었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생태계와 자연, 그리고 이 지구, 더 크게 보면 우주는 이런 식으로 조화롭게 흘러갈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존재도. 나의 아기 고양이의 존재도. 우리 모두의 삶은 수많은 삶과 죽음이라는 우주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 살아남은 소중한 운명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간의 흐름이 소중한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을, 당연하지 않게, 소중히 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