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쉬울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그 선택을 내리기 위한 고민을 한다.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우리가 고민하는 이유는 어떤 선택이 나에게 더 옳은 판단일지, 더 구체적으로 풀어내면 어떤 선택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지를 따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최근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일이 있다.
그 마음을 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 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그 선택으로 1도 손해 보고 싶지 않아!'
'혹시라도,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최소한으로 보고 싶어.'
'가능하면 좋은 선택을 해서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싶어!'
'나는 하나의 선택으로 또 다른 하나를 잃고 싶지 않아.'
'내가 선택한 일로 힘든 일을 겪고 싶지 않아'
'나는 그 일을 경험해 보고는 싶지만, 혹시라도 닥칠 안 좋은 일은 책임지고 싶지는 않아!'
내 마음은 내가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 이런 식으로 외치고 있다.
이것이 현재 고민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이유이다.
내 마음속에는 위와 같은 상반되는 마음, 그리고 욕심이 감춰져 있다.
그렇게 나는 대립하고 있는 마음들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판단을 계속해서 유보하고 있다.
나는 어떠한 손해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어떠한 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선택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이미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손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이 명쾌한 질문에 대하여 나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고민이 거듭되는 나는 다시 예전의 나처럼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다녔다.
하지만, 타인은 타인일 뿐. 그들의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만을 해줄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살아가는 내 인생이기에, 내 삶에 펼쳐질 일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주체는 '나'이다.
타인은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공감해 줄 수는 있을지 모르나, 나에게 '답'이라는 것을 줄 수 없으며 나 또한 그들의 말에 따라 행동에 옮길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물어야 한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뭐가 두려운 거야?'라고 말이다.
사실 나는 선택을 하지 못해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이 주는 즐거움은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이것은 차라리 아무런 행동도 안 하니만 못한 일인 것 같다.
한다면 제대로 부딪히며 즐길 것이고, 안 할 것이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판단을 미룰 것이 아니라 결심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선택이 주는 어떠한 결과도 말이다.
그 결과가 슬픔이건 기쁨이건 아쉬움이건 안타까움이건 홀가분함이건 그 무엇이건 간에 말이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끊임없는 Choice라고 하던데, 실로 그 말이 맞다.
어쩌면, 덜 후회하는 선택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Choice에는 후회가 때로는 미련이 남을 것이다.
조금 덜 후회하는 방향으로 조만간 나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보다 현명한 판단을 위해 여러 책도 빌려 읽는 중이다.
나는 결국 나의 고양이만큼이나 나 자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