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직하게 보내는 시간은 어떻게든 의미가 있다

어떤 업무에든 최선을 다 한다면

by KEIDY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내게, 회사에서 가장 가고 싶던 부서는 홍보였다. 전공과 제일 연결고리가 있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홍보 TO는 적었다. 내가 첫 입사했을 때만 해도 실무자는 고작 1명이었으니까. 그런데 거짓말처럼 입사 후 1년 정도 지나서 정기 인사발령에 홍보담당이 되었다. 처음에는 원하는 부서에 갔기 때문에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웃어넘기며 일을 배웠다. 그러나 업무를 계속하다 보니, 회사에서 홍보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곱지 못함을 알았다.


첫 번째는,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사무직군에 비해 홍보는 외근이 많고(기자와 외부 관계자들의 미팅이 매우 잦다.) 상대적으로 페이퍼 워크는 적다.(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적을 뿐...) 과장해서 말하면, 찾을 때마다 없다. 그때마다 자리를 비우기 일쑤라는 것이다. 하지만 홍보담당도 할 말은 있다. 사실 홍보 업무의 반 이상이 기자, 매체와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관계에서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위 홍보담당은 낮에 술 마시고 들어오고(요새는 김영란법, 코로나 유행 이후로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 것으로 안다), 찾으면 없고(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업무를 맡기면 시간 내에 못하는(이건 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외근이 많기 때문에 납기를 맞추기 힘들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납기를 맞춰야 한다면 그건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꼭 한다!) 그런 이미지가 박힌 것이다.


두 번째는, 일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는 홍보담당의 업무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데에 있다. 홍보담당의 주요 업무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회사의 좋은 일을 널리 널리 알린다.(긍정 기사를 매체에 많이 나오게 한다)

- 회사의 나쁜 일을 가능한 알리지 않는다.(부정 기사를 매체에 최대한 나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렇다면, 긍정 기사가 몇 개 나와야 잘한 것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데 그 많음의 기준은? 또한 부정 기사를 최대한 안 나오게 막는다는데, 원래 얼마나 나올 예정이었는데 막은 것인가? 그 과정에서 홍보가 한 역할은? 1개라도 안 나오게 해야 잘한 것 아닌가?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홍보담당은 일을 해도 욕먹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해도(매체와의 관계를 열심히 만들어 놓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되는 사항에 대해서

열심히 해명하고 설명해도) 자극적인 기사를 선호하는 매체의 특성상 부정 기사는 어김없이 쓰인다. 부정 기사 10건을 1건으로 줄였다면 칭찬받을 일인데 회사에서는 왜 그 1건이 나왔냐며 그것마저 없앨 수 없냐고 푸시하는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세 번째는, 업무가 너무 쉬워 보인다고 한다.


보통 홍보담당의 업무를 대부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 술을 먹는다(+매체 미팅을 한다)

- 보도자료를 쓴다

- 회사의 정보를 알리고, 문의사항에 답변한다


즉, 그저 술 잘 먹으면 홍보일 잘하겠구나 라고 오해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홍보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보도자료를 쓰고 회사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얕지만 폭넓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많은 부서의 업무들이 대부분 깊고 좁은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홍보의 얕지만 폭넓은 지식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폭넓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회사 내, 회사 외부, 그리고 회사가 속해 있는 산업군의 시장 상황까지 고려해서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콘텐츠업계에서 홍보 업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콘텐츠 정보를 들으면 대략 제작사와 유통사가 어디일지 어디일지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는 콘텐츠업계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홍보 업무를 하면서 많은 기자들을 만나고, 많은 시사회를 다니고, 비슷한 시기에 공개하는 다른 콘텐츠들을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지식이다.


처음에는 그때그때마다 검색해가면서 콘텐츠 정보를 얻고 그러한 과정에서 실제로 맞는지를 검증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검색하지 않아도 "아, 이 영화는 혹시...?" 하면서 추측이 가능해졌고 실제로 그 추측이 맞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진 적이 있다. 홍보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일하면서도 그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 동안에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얕고 폭넓은 지식이 생긴 것이다.


보통 홍보 업무를 오래 하면 다른 부서로 옮기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회사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 홍보에서 마케팅으로, 그리고 앱 론칭 프로젝트로, 또 신사업으로 업무를 변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낸 홍보담당에서 얕고 폭넓은 지식을 쌓아왔기에 다른 부서에 가서도 너무 당황하지 않고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보낸 시간은, 결국 나중에는 어떻게든 의미가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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