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맞는 인간관계 재정립의 필요성
얼마 전, '금쪽같은 내 새끼'의 에피소드 중 6살까지 엄마 모유를 먹는 아이의 사연이 나왔다. 그 아이에게 내린 오은영 박사의 처방은, 나이에 맞게 한계점을 그어줄 필요가 있고 그 나이에 맞는 사랑방식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즉, 아이가 커갈수록 그에 맞는 방식으로 사랑을 해 주어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회사 생활의 인간관계에도 적용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 회사 내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승진 전까지만 해도 그 팀에서 다른 팀원들과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팀원들과의 불화로 매우 힘들어했다. 승진한 이후로 파트장 같은 개념으로 두세 명의 팀원들을 담당하여 팀장과 팀원 사이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았는데 그분의 말로는 예전에는 오히려 너무 친하고 사이가 돈독했었는데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더란다. 본인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팀원들에게 업무를 나눠주고, 일정을 공유해달라는 부탁을 해도 답을 잘 안 하거나 어떨 때는 반항적인 어조로 답변한다는 것이었다. 그 팀원들은 나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평소에 일을 잘 안 하거나 못된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아했었다.
관계는 점점 더 틀어져 결국은 그분은 팀장에게 이 문제를 상담하고, 임원에게도 상담한 끝에 사이가 안 좋았던 팀원 한 명이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도 스트레스를 못 견딘 끝에 다른 팀으로 (아마도 자진해서) 가게 되었다. 한 때는 사이가 좋았지만 이제는 해체된 관계를 보며, 나도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변한 게 없는데"가 오히려 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그분은 승진하고 파트장이 되었어도 변함없이 팀원들을 아껴주고 으쌰 으쌰 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도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는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했을 때 사회에서도 연령별로, 단계별로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듯이 회사에서도 직급별로 기대하는 바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임원은 임원 직급에게 기대되는 업무역량과 범위가 있고, 사원은 사원 직급에게 기대되는 업무역량과 범위가 있고 이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인간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원 때 친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과 너무 죽이 잘 맞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하더라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친하다고 하자.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날 승진을 했다. 거꾸로 내가 승진하고 그 사람은 그대로 사원이라고 하자. 인간관계는 그대로일까?
만약 같은 팀이 아니라면,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질투를 떠나서, 그 사람의 회사 내 세계와 내 세계는 미묘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한 미묘한 틀어짐이 상관없을 만큼 서로가 도움이 되고 친밀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지속될 것이고 그 틀어짐이 계속 삐걱거림으로 바뀐다면 관계는 저절로 소원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같은 팀이라면? 그 틀어짐을 인식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기에 좋은 관계가 유지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사원 - 과장처럼 직급 차이가 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보통 이 관계에서는 주로 과장이 사원의 멘토 역할을 하고, 과장은 사원에게 회사생활에 도움을 주고 사원은 과장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는 등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관계가 같은 팀 안에서 있을 가능성은? 아주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아마도 그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좋은 관계가 있더라도 같은 팀 안에서 다른 업무를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업무에 대해 갈등하고 부딪치는 일이 한두 번은 생기기 마련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틀어짐이 계속 인지가 된다면 관계가 소원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같은 팀 안에서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동일한 업무에 대해 조금씩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조금씩은 갈등이 생긴다. 다만, 같은 목표에 대해 회사에서 직급마다 다른 책임감과 다른 기대가 주어지기 때문에 기대와 책임을 분담하고 함께 실행하는 것이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같은 팀 내에서의 인간관계는 기질이 맞으면 나쁘지 않게 지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친밀함을 기대하고 편의를 봐주기를 바란다면 본인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떠맡게 되기 때문에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즉, 회사 내 인간관계는 직급 및 그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인간관계가 되어야 한다. 같은 직급인지 아닌지, 같은 직급이었다가 변화가 생긴 것인지, 같은 팀인지 아닌지, 다른 팀이어도 업무상으로 얽힌 일이 있는지 등 여러 상황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최근의 회사 트렌드는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며 직급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소통을 장려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회사 내에서는 엄연히 직급이 존재하며 승진이라는 제도를 통해 책임을 더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승진을 하게 되면 회사 내 주변 인간관계가 조금씩 변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승진을 했지만 아직 저 사람이랑 친한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지 다시 한번 평가해 볼 필요도 있다. 그전까지는 실무자 무리에서 다 같이 윗사람 험담을 하던 사람들인데 어느 순간부터 나를 쏙 빼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그럴 경우에도 그 상황에 대해 섭섭해하거나 눈치 없이 다시 그 무리에 끼기 위해 노력하는 둥, 엉뚱하게 해결하려고 들면 안 된다. 나를 갑자기 싫어해서 왕따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의 공감대가 달라지고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상황 리더십이라는 말이 있다. 리더십에는 강압적인 리더십, 공감적인 리더십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어느 한쪽이 옳은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리더십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직장 내 인간관계가 추구해야 할 방향과도 일치한다. 상황에 따라 그동안 맺어온 관계가 모두 틀어질 수 있고 나빴던 관계도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그분은
변화된 본인의 상황에 맞춰 관계를 재정립하고, 한계를 그어 줄 필요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 없이 기존의 관계를 그대로 가져오려는 것은 오히려 좋았던 인간관계마저 해칠 우려가 있다.
사랑은 변하고, 때로는 돌아온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번 정해지면 불변의 법칙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관계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소중히 대하는지, 주변의 변화에 맞춰 적응시키는지에 따라 관계의 질이
크게 개선되고 때로는 사소한 오해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