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사업을 한다는 것

스타트업 간접체험, 지원과 의지의 중요성

by KEIDY

회사생활 8년 차에 신사업 팀으로 발령 난 적이 있다. 말이 신사업 팀이지, 대략적인 사업 아이템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고 실무자 2명, 팀장 1명으로 초기 세팅이 되었으나 팀장은 팀을 4개나 맡고 있었기 때문에(담당이 4개가 아니고 팀 4개...) 실질적인 1명분의 전력이 되진 못했다. 그리고 4개 팀 중 우리 팀을 포함한 3개 팀이 TF였고 그중 2개 팀은 그 해 안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하는 마감기한이 정해져 있는 곳이었기에 팀장의 자원과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쏠렸다.


나와 같이 실무를 담당했던 팀원과 그 시기에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팀장이 담당하는 4개 팀을 A팀, B팀, C팀, D팀(우리 팀)으로 나눈다면 각각의 관심도가 50%, 30%, 15%, 5%쯤 되지 않을까 하며 씁쓸하게 웃곤 했다. 그 해에는 정말이지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 대략적인 사업 아이템이 정해져 있는 것을

실제 그 사업이 가능한 지부터 검증하고 초기 사업 세팅을 하라는 업무가 떨어졌는데 그 사업 아이템이라고 하는 것이 조사하면 할수록 우리 회사의 현재 역량에서 가능한지, 우선순위로 둘 만한 사업인지, 조금 투자하고 많이 벌 수 있는지(?) 모든 차원을 놓고 따져보니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업 아이템은 굉장히 매력적인 사업이었고 미래 성장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그러나 이 사업을 우리 회사가 한다는 것은 굉장히 다른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핵심적인 부분을 우리 회사가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또한 팀이 세팅되기 전 보고되었던 소요금액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비단 투자규모가 커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비용(인건비 등)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검토를 마치고, 필요한 인력을 내/외부에서 뽑아 초기 멤버를 구성했다. 심지어 팀장도 이 업을 잘 아는 전문가로 외부에서 새로 채용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마치 스타트업을 모의 체험하는 기분이었달까. 담당할 업무마다 딱 한 사람씩만을 채워갈 때마다, 회사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이 돈이 왜 필요한지 일일이 서류를 작성하고 설명할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정말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며 기가 차겠지만, 그때를 묘사하면 그 말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스타트업 체험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긍정적인 면은 파도 파도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재미와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차피 내부에 그 업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판단에 대한 자율성이 높아지고, 그 과정에서 업무에 대한 애정과 잘해봐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을 뽑을 때 초기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을 뽑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당 업무에 관심도가 높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사무실 내에 공간이 부족해 우리 팀만 따로 별도로 작은 사무실에서 론칭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별도의 공간에서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회의하고,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마련해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을 적기도 했다. 그리고 새로 오신 팀장님은 마음이 넉넉한 분이어서, 개인 돈을 털어 자주 간식을 사 오시곤 했는데, 특히 아침을 먹고 오지 않는 팀원들을 위해 빵이나 김밥 등을 사 오시는 일이 많았다. 다 같이 간식을 먹으며 간단하게 아침 회의를 하고 업무를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단합력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창이 큰 대신 난방이 잘 되지 않는 공간이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집에서 미니 난로, 가습기 등을 챙겨 와 사무실 안을 쾌적하게 꾸몄다. 음성인식 스피커도 공수해서 오후 시간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이나 음악을 들으며 업무를 했다. 항상 정해진 업무를 정해진 공간에서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업무를 독립된 공간에서 하니 뭔가 기분이 색달랐다.


그리고 이 체험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본사의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원은 물질적인 지원과 정서적인 지원이 있는데, 물질적인 지원은 전반적인 예산, 그리고 업무를 할 때 필요한 부수적인 물품들과 기타 서비스 등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팀 단위로 쓰는 기본적인 예산은 어차피 회사 내부적으로 대략 정해져 있어서 크게 문제 될만한 것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신규 업무다 보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특정한 물품이 필요한 것에 대해 관리부서에서는 왜 이게 필요한지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기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설명하고 물품을 구입하는 예산을 추가로 받거나 했는데 최소 인원으로 론칭 기간이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그러한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에 대해 시간이 소요되어 힘들었다. 일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게 왜 필요한지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내 돈으로 사고 말지, 하면서 자잘한 것들은 청구 안 하고 개인 돈으로 처리하거나 집에서 필요한 물품을 가져와서(?) 업무를 진행한 적도 있다. 초반까지만 해도 아직 회사에서 이 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까 하고 감안하며 넘기려 했는데 일하는 시간보다 행정적인 처리에 시간을 뺏기는 것이 아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적인 지원 부족보다는 정서적 지원 부족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정서적 지원이란, 회사 차원에서 신사업에 대한 배려를 해 주고 팀원들을 격려해 주는, 그런 비물질적인 지원을 의미한다.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일 상처 받았던 것은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거의 모든 보고 때마다 앵무새처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이 신사업 아이템을 처음부터 기획했고, 아이디어를 냈으면 이 부분에 대해 상처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왜냐하면 아이디어를 낸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으니까) 회사는 마치 이 사업을 하기로 했으니 너희 팀에서 알아서 논리를 짜 와라,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현타가 오곤 했다. 보고가 끝난 다음에는 항상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안고 팀원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그래도 오늘 이 업무는 끝내야지, 라며 의지를 다졌던 기억이 난다.


신사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또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맨 땅에서 헤딩하며 얻은 그 업에 대한 산업구조, 인맥, 자잘한 세부 지식들은 지금까지도 큰 자산으로 남는 것 같다. 고생하며 배웠기에 더 소중했고,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업무를 맡거나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을 때 살아남는 방법, 태도에 대해 배웠다고나 할까. 실제 스타트업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는 굉장히 일천한 경험이겠지만 업에 대해 A부터 Z까지, 스스로 습득한 경험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무의 축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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