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절대 선인 사람과 절대 악인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한 사람을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할 수 있을까요? 고전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특히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작품으로, 극과 극의 성향인 지킬과 하이드를 배우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지킬은 의사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한 연구를 지속하며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마침내 그 약을 거의 개발해 내고 그에 대한 인체실험을 하기 위해 정신병원의 이사진들에게 허가를 받고자 하지만, 이사진들은 지킬의 실험이 너무나 무모하고 말도 안 된다며 승인을 거부합니다. '지킬'은 똑똑하고, 부유하고, 아름다운 약혼자도 있지만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이 실험의 성공이 매우 절실했죠. 약혼식 날 친구들의 성화로 술집에 끌려간 '지킬'은 루시를 보고 그녀를 안타깝게 여겨 명함을 건네는데, 이후 술집에 가서 낭비한 시간만큼 밤새서 실험실에서 연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지킬은 눈앞의 성공을 앞두고 인체실험을 할 수 없게 되자 좌절하는데, 그의 머릿속에 섬광과도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즉, 본인을 실험체로 삼는 것이죠. 직접 약물을 몸에 주사하고 실험 결과를 기록하는데, 그는 고집은 다소 세지만 선량하고 성실했던 '지킬'이라는 인물에서 갖은 충동과 피해의식, 악으로 똘똘 뭉친 '하이드'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이드'로 변해버린 본인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숨기고, 특히 가장 친한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과 약혼자 엠마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실험을 계속하면서 점차 '하이드'로서의 욕망이 '지킬'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실험을 반대했던 이사진들을 위선자라고 욕하며 모조리 죽이고 정숙한 약혼녀 엠마 대신 밤거리의 여자 루시를 찾아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죠. 그러나 지킬로 잠시 돌아왔을 때 치료를 요청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루시로부터 '하이드'가 그녀를 상처 입혔다는 것을 알고는 당황합니다. 지킬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하이드의 검은 마음과 강력한 의지를 이겨내기엔 힘겹습니다.
이대로는 루시의 신변이 위험하다고 느낀 지킬은 친구 어터슨에게 부탁해 루시에게 여기를 떠나라는 편지를 전달하고, 루시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지만 그녀는 하이드에게 붙잡혀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지킬은 하이드를 없애려 하지만, 이미 하이드가 지킬의 마음속을 너무나 많이 지배해버렸기에 그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이드를 일시적으로 누른 상태에서 지킬은 엠마와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혼식 도중 튀어나와버린 하이드 때문에 결혼식은 엉망이 되고 마침내 자신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하이드를 없애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킬은 어터슨의 손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스스로의 욕망을 숨기고 억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인지를 보여주줍니다. '지킬'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촉망받는 의사이자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사람이었지만 내면에는 들끓는 욕망이 있었죠. 정숙한 엠마 대신 관능적인 루시를 탐하고, 자신의 실험을 승인하지 않고 위선자라고 생각한 주위 사람들을 다 살해했으며 친구인 어터슨에게 거친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함부로 대했습니다.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인정하고, 그러한 충동을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승화시키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어야 하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계속 숨기고, 욕망을 눌러 담고 숨기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개념으로 보면 하이드는 id(원초아)를 대표하고 지킬은 superego(초자아)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id가 너무 강력해지면 온갖 욕망과 충동에 굴복하는, 비사회적인 인간이 되며 superego(초자아)가 너무 강력해지면 본인의 모든 행동과 이념을 도덕적 잣대로 통제하려 들기에 마음이 병듭니다. 지킬은 superego를 너무 강화한 나머지, 그 반대급부로 결국 id의 강력한 힘에 굴복해버리고 말았죠. 이 둘을 중재하는 ego(자아)가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인 "지금 이 순간"은 자기 자신을 실험체로 삼으면 된다는,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순간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넘버의 제목인 "지금 이 순간"은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파악해서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는, 그러한 교훈을 뜻하는 중의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