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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un 13. 2024

여름이 왔다, 채식 치트키 복숭아가 왔다.

여름 내내 복숭아만 먹어도 좋다고요.

해가 더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올해 여름은 정말 심상치 않다. 6월 초부터 열대야와 폭염이란 단어를 듣다니.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기후(사실 잘못은 인간의 몫이지만)에 심란한 마음으로 마트를 방문했다 오랜 동지의 얼굴에 얼굴이 절로 폈다. 그대 이름은 복숭아. 우리 1년 만이야, 잘 있었어?


오랜만에 봐도 너는 여전히 예쁘구나.

몇 년 전부터 복숭아 종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급증해서 수많은 품종들이 쏟아져 나왔다. 겉은 천도복숭아지만 속은 백도인 신비 복숭아, 유럽에서 즐겨 먹는다는 납작 복숭아, 작고 귀여운 매향 복숭아 등등. 맛에 원체 까다로운 사람이지만 복숭아는 뭔들 좋다. 다만 물렁해서 잡았을 때 과즙이 질질 새는 '물복'보다는 단단해서 아삭한 '딱복'을 선호하는 딱복파다. 딱딱한 복숭아는 무 맛과 다름없다며 소고기 뭇국에나 넣어먹으란 끔찍한 공격을 받는대도 딱복만이 갖고 있는 청량함과 기분 좋은 산미는 무엇과도 바꾸기 싫다고요.


햇볕이 유난히 따가운 오후 4시, 천도복숭아 한 박스를 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들어섰다. 같이 사 온 건 바로 오이. 서늘한 툇마루에서 주걱으로 석석 섞어 먹을 법한 가볍고 신선한 샐러드를 먹고 싶었다. 이럴 때는 드레싱도 최대한 간단히 하는 게 포인트. 잘 익은 복숭아와 오이를 한입 크기로 깍둑 썰고, 소금, 후추, 레몬즙, 올리브유를 넣어 섞으면 끝이다. 여기에 옥수수를 넣고 조금 차가워지도록 냉장고에 잠깐 두었다 먹으면 금상첨화. 오이의 상쾌함과 침이 절로 고이는 복숭아의 시고 단 맛이 입 안에서 어우러지며 '이게 바로 여름이구나' 싶다. 참고로 너무 오랜 시간 두고 먹으면 복숭아와 오이가 드레싱을 다 빨아들여 뻑뻑한 질감이 되니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먹길 권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디저트도 만들어볼까. 더 익은 물렁한 복숭아를 골라 잘게 자르고 컵 안에 넣고 수저로 짓이겨 단물이 나오게 한다. 여기에 얼그레이 같은 홍차를 냉침하여 얼음과 함께 부어주면 복숭아의 달큰함과 홍차의 풍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아이스티가 완성된다. 시중에 나온 립톤 아이스티를 넣어도 상관없는데 개인적으론 그런 제품들은 자체의 단맛이 너무 강해 복숭아의 단맛이 가려진다는 게 흠이다.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간식도 있다. 일명 '오나오(오버나이트 오트밀)'에 복숭아를 넣는 것. 오트밀 3스푼 정도에 오트밀이 잠길 정도로 드링킹 요구르트를 붓는다. 그 위에 복숭아를 잘라 올리고 3시간 이상 냉장고에 두면 완성. 복숭아의 과즙과 요구르트가 오트밀에 흡수되어 포만감이 크고 산뜻한 간식이 된다. 요구르트가 산미가 있기 때문에 초코 파우더나 잼보다는 복숭아처럼 신 맛이 있는 과일이 깔끔하고 잘 어울린다.


매해 복숭아 철이 되면 오로지 복숭아에만 집중하게 된다. 과일이지만 채소 못지않게 여러 군데 활용이 가능하고, 데코로 조금만 올려도 제철 과일답게 여름 풍미를 한껏 높이는 것 같아 쓰임이 즐겁다. 글을 쓰며 복숭아의 효능도 찾아봤는데(역시 한국인은 식재료의 효능에 진심이다) 변비 개선, 수분 공급, 면역력 증강, 체내 독성 제거, 발암물질 생성 방어에 효과적이라니 안 먹을 이유가 더더욱 없겠군. 다만 여름철 보양식인 장어와 함께 먹으면 설사를 유발한다고 하니 이점은 주의. 이번 여름도 복숭아와 함께, 무덥지만 즐겁게 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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