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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un 20. 2024

마음을 다잡고 싶을 때 야채를 먹는다.

일상을 정돈하는 수단으로써의 채식.

요 며칠 일상이 엉망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루틴대로 사는 일에는 자신 있다고 했지만 자신감이 자괴감으로 쪼그라들 만큼 되는대로 살았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 없이 주문하고 딱히 할 일이 없다면 유튜브와 OTT 서비스를 오가며 멍한 시선을 둘 곳을 찾았다. 운동은 저 멀리 제쳐두고 피로하면 거실이건 방이건 자리를 불문하고 드러누웠고 한 문장도 온전히 읽히지 않으니 책도 재미가 없었다. 알람 시계처럼 모든 걸 때에 맞춰 해내긴 힘들다 하지만 일상을 지탱하던 블록 하나가 빠지며 애초에 시계가 없던 것처럼 살았다.


가장 영향을 크게 받은 건 식습관이었다. 운동을 할 땐 위장에 부담이 안 될 정도의 양을, 영양소 배분을 생각하며 챙겨 먹었다. 하지만 일상이 무너지면 제일 먼저 치고 들어오는 게 패스트푸드, 특히 육류 가공식품이다. 졸졸 새어간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먹은 건 튀김류였다. 냉동만두, 돼지고기 튀김, 치킨을 꼭 한 번씩은 먹었다. 둘째는 내게 없어서 안 될 유제품 디저트. 크루키, 케이크, 요거트, 아이스크림, 과자 등. 마지막은 대놓고 육류. 닭볶음탕과 소고기도 한 번씩 먹었다. 이렇게 연달아 식사를 하니 식후 당이 올라 쉽게 피로해지고 더운 날씨에 몸은 배로 무겁고 처졌다. 유튜브에서 둔감해진 혀를 일으킬 무언가를 찾느라 신경을 쏟다 자세를 고치면 부은 다리가 유난히 무거웠고 성난 방귀는 뿔뿔거리며 아우성을 쳤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의식적으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인 양 시간을 싸잡아 버리게 생겼구나 싶었다. 다행히 모든 게 흐트러져도 정리벽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었기에 주위에 정돈할 것은 없었다. 제일 먼저 집은 건 야채였다. 며칠 전 냉채류가 먹고 싶단 언질에 냉장고엔 엄마가 사다 놓은 야채가 풍년이었다. 오이, 파프리카, 당근, 양파, 복숭아 등 가지런히 정돈된 야채 통에서 입맛에 맞는 재료들을 골라 샐러드를 만들었다. 한입 넣으니 처음 채식을 해볼까? 마음을 먹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 했던 생각도. 그저 주어진 대로, 되는대로 먹는 것이 아닌 내 몸과 마음을 고려해 신중히 선택한 음식을 신경 써먹는 순간의 소중함을 느꼈었지. 자극적인 양념으로 버무려 원재료의 맛을 찾기 힘든 음식들을 먹다 그대로의 야채를 먹는 기쁨도 있었어. 다시 느껴보니 누군가 잔뜩 헤집어놓지 않은 깨끗한 빙판 위를 마음껏 달리는 기분이었다. 기다렸단 듯 몰려오는 경쾌함과 산뜻함. 그날 이후 며칠간 끼니는 샐러드로, 간식은 최대한 과일로 통일했다. 이렇게 먹으니 몸이 가벼워지고, 몸이 가벼워지니 움직일 마음이 들고, 움직이니 땀이 나서 야채가 더 땡기고. 다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최근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채식 이야기를 하다 '채식이 환경오염을 줄이고 좋은 일인 건 알겠는데, 개인에게 좋을 건 대체 뭐냐'는 질문을 다수 받았다. 잡식하던 입장에선 채식하란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와닿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데 당뇨나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혈액 순환을 방해하지 않아 운동 효과에 그만이라고 하는 얘기는 빤하다. 상식적인 답변은 오히려 내게 답을 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요 며칠 잡식에서 거의 채식으로 전환해 살아본 결과, 새로운 답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익숙하고, 쉽게 닿을 수 있고 무의식으로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선택지를 거부함으로써 나를 정돈할 수 있다는 것. 어지러이 산만해진 일상을 다잡는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들은 우리가 몰랐던, 채식이 주는 큰 개인적 효용이 아닐까. 마음이 무너진 후 며칠을 보내도 그저 고꾸라져 허공만 보게 될 때, 야채를 권해본다. 스트레스가 샤워로 씻길 수용성이라면, 씻긴 자리에 야채를 채워 공허함을 달래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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