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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ul 04. 2024

한국인의 대부분은 플렉시테리언이 아닌가요?

한국식 반찬이 익숙한 당신, 채식에 일조하고 계셨군요!

업무 차 방문했던 지방의 한 음식점. 가게 주인인 할머님이 내어주신 반찬들을 받아 들며 "맛있겠다!"를 연발하던 그때, 뜻밖의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애써 채식을 하지 않아도 우리 곁에 채식은 이미 존재했던 아닌가?'. 가지나물, 깻잎지, 감자조림, 순두부찌개 등등.. 의식하지 못했을 뿐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온 반찬들은 하나 같이 채소가 주인공이었다. 어쩌면 난 오래전부터 플렉시테리언(*채식을 위주로 하되 가끔 고기나 생선을 먹는 사람)이었을 수도?


달걀말이는 빼고 봐주세요. 큼.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식탁을 보고 "한국인들은 다 비건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유인 즉, 반찬의 대부분이 채소를 활용한 장아찌, 나물 혹은 무침이 많고 콩나물국, 미역국, 김치찌개(물론 고기가 안 들어간 것이겠지) 등 국물류도 채소가 주가 되는 것이 많으니 얼핏 보면 비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양념을 하는 과정에서 소고기가 함유된 다시다나 장, 육수 등을 사용할 수 있기에 완전 비건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제철 나물이 가득 담긴 비빔밥을 국가 대표 음식이라고 소개하는 나라로서, 그들이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이런 상황을 보면 채식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로 '채식이 맛이 없어서', '접근하기가 어려워서'를 이야기하는 건 핑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지 않는 한 한국인이라면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을 이런 식단으로 먹어왔을 텐데. 시도가 어렵기보단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채소 반찬은 더 이상 지겨워서 못 먹겠다!'라는 생각이 드신 걸까. 하지만 우리는 낙지볶음을 먹으러 가면 콩나물 무침에 자연스레 손을 뻗고, 고기를 먹어도 시원한 오이냉국 혹은 물김치로 기름기를 씻어 내리지 않는가. 본인은 의식하지 않아도, 오랜 시간 쌓인 먹데이터와 채소에 대한 선호는 무시하기 어렵다. 당근을 먹으라는 소리에 안 먹겠다 떼를 쓰지만 당근을 잘게 썬 볶음밥은 감쪽같이 속는 아이처럼 우리의 채식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글을 쓰다 잠깐 점심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다. 분명 며칠 전과 같은 반찬인데 다시 보니 채소 밭이다. 양배추 쌈, 알배추, 김, 오이지무침, 김치. 알배추와 같이 먹을 갈치속젓을 제외하면 비건 식탁이라고 해도 손색없을만한 구성이다. 의식을 하면 입맛이 없어질까 의심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꼭꼭 씹어 한 끼를 먹었다. 여러분이 별생각 없이 지나친 오늘의 식탁 중 하나쯤은 이와 비슷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당신 역시 플렉시테리언이 아닙니까? 여기에서 조금 더 채식의 비중을 늘린다면 비건 역시 안될 것, 못할 것도 아니다. 천천히, 자연스레 나아가봅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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