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Jul 11. 2024

육식 대체재말고, 오리지널리티의 채식

육식의 대체재가 될 때 채식이 갖는 한계.

채식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은 두 가지다. 있는 그대로의 채식을 즐길 것이냐, 육식에 가까운 채식을 할 것이냐. 한 번에 모든 육고기를 확 끊어버리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테고 식물성 원료로 육식에 가까운 맛을 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시중에 있는 수많은 비건 제품들도 이런 니즈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육고기의 맛과 식감을 그대로 구현했다는 콩고기(이름부터 '고기'가 들어가다니!), 쇠고기를 사용한 다시다와 동일한 맛을 낸다는 비건 다시다 등.


쇠고기 향을 강조한 비건 다시다.


이런 시도에 대한 궁금증 역시 두 가지다. 첫째, 정말 육류와 같은 맛을 내는가? 둘째, 해당 제품들이 비건 식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답을 내기 위해 평상시 아이쇼핑을 즐겨하는 온라인몰 몇 군데에서 비건 식료품의 상세 페이지와 리뷰를 살펴보았다. 콩고기 제품 리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 '콩고기 특유의 맛이 존재한다'는 내용이었다. 비건 다시다의 경우, 오히려 쇠고기 다시다보다 평이 훨씬 좋아(더 깔끔하다, 감칠맛이 잘 난다) 육류성 제품과 같은 맛이라 보긴 어려웠다(광고 아닙니다. 일전에 굴 소스 언급할 때 말했다시피 식물성 양념이 더 깔끔하고 맛있어요!). 그럼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요'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앞서 이야기한 콩고기와 같이 '육류에 최대한 가깝게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한' 제품들은 지속적인 소비를 희망하는 사람이 적었다. 오히려 고기에 대한 언급이 없고 식물성 원료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 제품들의 평이 좋았고, '이런 비건 제품이라면 비건이 되겠다', '비건, non-비건 상관없이 내 최애 제품이 됐다'는 등 추가 구매를 예측할 만한  리뷰가 많았다.


질문에 답을 내리며 파악한 현실은 이랬다. 비건 제품 상당수의 상세 페이지에는 '고기 대신'이라는 표현이, 리뷰에는 '고기가 안 들어갔는데도 충분히 맛있다'는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비교의 기준값이 '육식 제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오히려 육류를 식물성 재료로 대체했다고 표현한 제품들의 후기는 좋지 못했다. 육고기에 대한 언급이 '이제까지 먹어온 육식의 맛'으로 비교군을 설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애초에 비건인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채식을 시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함으로 공고해진 과거의 맛을 기대하게 해 두 타겟군 모두에게 좋지 않다. 채식 제품 모두 힘들게 연구한 결과물일 텐데, 길들여진 입맛과 대량의 육식성 시장 제품을 경쟁 군으로 앞세워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 


어설픈 추측에 의한 성급한 일반화일지 모르지만 이런 접근법이 채택된 이유는 공급자 측의 대다수가 채식주의자가 아니거나, 채식의 가치를 절감하지 않은 채 이전의 시장 방식을 답습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전까지는 시장에 나온 제품들이 모두 잡식성 제품들이었기 때문에 판매 구도를 바꾸는 일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채식은 엄연히 잡식성 제품과는 다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것의 대체재는 '어떤 것'에 대한 욕망만 키울 뿐 대체재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는 적다. 이런 식의 접근은 외려 시장 대다수를 차지하는 육식성 제품의 판매를 더욱 고취하려는 걸까 하는 의심만 불러일으킨다.


서두에 말한 대로 시장의 접근법은 소비자의 니즈에 기반하기도 했다. 육류의 맛을 잊지 못해 비건식에서 비슷한 맛이나 식감을 찾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오히려 빡빡하게 채식을 실천하다 폭발하듯 진짜 육류를 섭취하는 일보다 대체육이라도 먹는 게 현실적으로 더 낫기도 하다. 대체육을 먹다가 그 맛에 매료되거나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대체재'는 필연적으로 대체된 오리지널을 계속 떠올리게 만든다. 연결고리에 얽매이면 오리지널을 향한 갈망은 더 빈번하게, 쉽게 일어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채식을 오리지널로 소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콩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고소한 맛이 일품인 재료, 버섯은 풍부한 수분과 영양소를 함유한 식감 맛집이라는 식으로. 이런 방식이 대중화되었을 때 비건 또한 독자성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건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고요.


이전 16화 한국인의 대부분은 플렉시테리언이 아닌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